[국내뉴스]
[정이현의 해석남녀] <하나와 앨리스>
2004-12-10
글 : 정이현 (소설가)
친구위해 사랑을 버린 기억의 상자 봉해버린 소녀에서 여인으로

소녀는 연기(演技)한다. 단짝친구를 위해 거짓기억을 연기하고, 오디션 장의 심사위원들 앞에서 쭈뼛거리며 연기한다.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순간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려보라는 심사위원의 요구에 소녀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소녀는 잊은 것일까? 바로 전 장면에서 그 아이는, 함께 살지 않는 아빠와 잠깐 만났다가 헤어졌다. 이별을 연기(延期)하려는 듯 “사랑해”라고 외치는 소녀에게 아빠는 “그럴 땐 ‘안녕’이라고 해야지”라고 교정해주었다. 전철에서 내린 아빠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바삐 플랫폼을 떠나지만, 떠나는 열차 안에 남은 소녀는 차창 밖을 그저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심사위원은 다시 주문한다. “재채기를 해보세요. 재채기를 한다고 상상하면 눈가가 젖어오지 않나요?” 소녀는 이마를 한껏 찡그리며 애써보지만 재채기는 쉽게 튀어나오지 않는다.

소녀의 연기(演技)는 아직 내면과 자의식을 품고 있지 않다. 아이는 모른다. 제가 지금 왜 이 오디션 장에 나와 앉아있는지. 세상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자신이 세상에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열여섯, 열일곱. 그때는 누구나 그랬다. 내 욕망과 친구의 욕망을 분리시키지 못했고, 소중한 ‘하트 에이스’ 카드가 두개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알지 못했고, 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친구를 위해 ‘사랑’을 포기하면서 동시에 소녀는 자신의 기억을 찾는 여정을 통과했다. ‘아빠의 딸’ 로서의 유년시절은, 되찾은 ‘하트 에이스’ 카드와 함께 남자아이의 서랍 속에 밀봉되었다. 이제 소녀는 비밀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마지막 오디션 장에서, 소녀는 토슈즈 대신 종이컵을 테이프로 발에 칭칭 동여매고 춤춘다. 종이컵 속에 갇힌 그 열개의 발가락들처럼 소녀는 공중을 향해 꼿꼿하게 떠올랐다 낙하한다. 아이가 생애 최초로 세계와 정면으로 마주한 몰아의 시간이다. 시계가 멈추고 소녀의 발레 독무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순간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찰나도 결국은 지나가버리고 현실은 다시 이어진다.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집안은 그대로이며, 일요일에 남자친구가 집에 오기로 했으니 자리를 피해 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받고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은 다음 소녀는 홀로 목욕탕 욕조 속에 들어가 앉는다.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채로 크게 재채기한다. 소녀는 비로소 눈물을 흘린 것일까?

사람들은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소녀 앨리스는, 앞으로 적어도 네 철학이 뭐냐고 묻는 아저씨에게 “철학이 뭔가요?”라고 순진하게 되묻지는 않을 것이다. 새까만 눈동자를 생기 있게 반짝이지도 않을 것이다. 오디션을 통과한다는 것은 연기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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