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싱싱한 여인의 종횡무진, <역도산>의 아야 역 나카타니 미키
2004-12-16
글 : 김수경
사진 : 정진환

나카타니 미키의 연기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투수의 변화구다. 아웃코스인 듯하면 가슴 서늘하게 안쪽을 파고들고, 오픈스탠스로 안쪽을 노리면 보란 듯이 밖으로 휘어져 나간다. 따라서 그녀의 필모그래피도 종횡무진. 일단 나카타 히데오의 <링1, 2>, 이다 조지의 <라센>으로 호러퀸의 아성을 쌓았다. 이후 <카오스>의 사오리, <게이조쿠>의 시바타로 대담하게 변신하며 스릴러물에서도 괴력의 연기력을 보여줬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프로듀스한 정규 앨범만 9장이 넘고, <한여름밤의 크리스마스> <게이조쿠> <여의사>로 이어지는 드라마들도 전방위적 엔터테이너로서의 그녀를 입증한다. 유례없는 <역도산>의 대규모 시사로 인해 하루종일 강행군으로 진행된 무대인사와 인터뷰로 녹초가 된 그녀를 극장에서 만났다. 하얀색 샌들과 하늘거리는 파란 원피스로 의자에 몸을 맡기고 “죽겠다”라는 한국말을 내뱉을 정도의 상황. 그러나 인터뷰에 들어가자 이내 스크린의 빈틈없는 모습으로 돌아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상대를 뚫어져라 보며 방긋거리는 얼굴로 말을 건넨다.

<역도산>의 아야는 세상을 물어뜯고 사방으로 달려드는 역도산을 ‘안심’시키는 유일한 ‘신경안정제’다. “그것은 말하자면 인간관계의 밸런스다. 음과 양이 있는 것처럼. 아야가 있기 때문에 역도산이 그렇게 내키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녀는 전한다. 대체로 ‘장사님’이라고 다소곳이 역도산을 어르거나 북돋우는 고전적인 ‘여인’이 그녀의 주된 몫이었다. 반면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 “단 한번만 져주세요”라고 목놓아 오열하는 모습은 작은 비중과 짧은 순간에서도 자신을 폭발시키는 그녀의 연기력을 느끼도록 한다.

변화무쌍한 필모그래피나 활동영역과는 달리 그녀 자신이 설명하는 작품 선택의 기준이나 연기에 대한 철학은 싱싱한 어깨에서 뿜어나오는 직구를 연상케 한다. 시대물 <역도산>을 택한 배경을 말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 현대물이 당연히 더 익숙하지만 나는 간단하고 쉬운 역할보다는 도전하는 역을 택한다”라는 취향이나 “개인적으로 남성적인 작품을 선호하고 허진호, 곽경택, 박찬욱 감독과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한국 감독들에 대한 적극적 구애는 그녀의 직선적이고 똑 부러지는 성격을 엿보게 한다. 가장 작업하고 싶은 감독은 임권택 감독이라고. 상대역 설경구에 대해 “가슴속에 서랍이 여러 개 있는 사람 같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해낸다”고 평하며 설경구가 말하는 “현장에는 아무것도 안 갖고 간다”라는 원칙을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로프트>에서 하루쯤 흉내내다가 낭패를 본 경험을 그대로 전할 만큼 그녀는 담백하다. 합작영화나 한국영화보다는 좋은 일본영화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도 이러한 솔직한 성격의 발로일 터.

오랜 상대역이자 선배 배우인 와타베 아쓰로의 이야기를 꺼내자 한국어로 “그 사람, 나의 스승”이라며 통역이 나서기도 전에 반색하는 기분파인 그녀는 <호텔 비너스>에서는 한국어를 통해, <역도산>에서는 한국 스탭과 설경구에 둘러싸여 우리에게 한발한발 걸어오는 중이다. 죽어가던 역도산의 마지막 회상이 꽃잎이 흩날리는 신사에서 그녀와 함께 꿈꾸던 미래였던 것처럼 나카타니 미키의 한국영화 첫 나들이는 조용하지만 관객의 기억 속에 꽤 오래 머물 것이다. 이제 그녀의 발걸음은 차기작인 사부 감독의 <질주>에서 맡은 야쿠자의 애인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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