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과 결혼해 평생 행복하게 해로하다 한날한시에 죽는다? 영화 <노트북>은 이런 낭만적 사랑의 환상이 ‘현실에 있다’고 말하는 영화다. 때는 1940년대의 한여름 밤. 시골 청년 노아는 예쁜 소녀 앨리를 보고 말 그대로 첫눈에 반한다. 얼마나 ‘뿅 갔느냐’ 하면,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데이트 중임에도 전혀 거리낌 없이 작업을 걸 정도다. 겁이 없다고 해야 할지 엽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남자, 아무래도 스포츠신문의 여자 심리 공략법 따위를 너무 열심히 읽었나 보다. ‘여자의 노는 예스의 다른 표현이다’ 라는 조언을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품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공중에 매달려 돌아가는 놀이기구에 덥석 뛰어오를 생각을 했겠는가. “안 만나주면 떨어져 죽는다.” 오 마이 갓. 앨리는 노아의 열정적인 구애에 마음을 열고 둘은 곧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이 젊은 연인의 티 없이 순수한 사랑을 갈라놓는 것은, ‘돈’이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앨리는 부자인 아버지를 가졌고 노아는 그렇지 않다. 앨리의 부모는 한 시간에 40센트를 버는 벌목공을 제 딸의 남자친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아가 일년간 매일 써 보낸 365통의 편지가 중간에서 사라지는 등등의 우여곡절 끝에 둘은 변치 않은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의 완성’ 이라고 일컬어지는 결혼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십 여년 뒤, 할머니가 된 앨리는 치매에 걸려 그 절절했던 사랑의 기억마저 잃어버렸고, 노아는 망각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정성껏 노력하고 있다. 앨리가 기억을 되찾아 노아의 얼굴을 알아볼 것인가! 노부부가 손을 맞잡고 나란히 누운 마지막 장면, 극장 안의 관객들이 흘리는 눈물콧물소리가 귓전을 에인다. 그러나 나는 풀리지 않는 궁금증 때문에 도저히 그들을 따라 울 수가 없다. 아아, 역시 문제는 그놈의 ‘현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 광고를 보니 의문은 더욱 증폭된다. 노부부가 머무는 호숫가의 요양원은 언뜻 봐도 한달 입원비가 만만찮을 만한 고급시설이고, 곱게 늙은 노부부에게서는 궁핍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저 남자는 대체 무엇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번듯하게 키웠단 말인가.
그들의 재산이라곤 손수 지어올린 이층집이 전부였는데, 그동안 그 동네 부동산 가격이 폭등이라도 한걸까? 아니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부잣집 영양으로 자라온 앨리가 대박 피아노 학원이라도 차렸던 걸까? 뜬금없이, 1960년대의 한국영화 <맨발의 청춘>이 떠오른다. 비극적 죽음으로써, 봉합되지 못할 계급적 현실의 차이를 역설한 두수와 요안나 커플. 내게는 그들이 노아와 앨리 커플 보다 열 배는 더 ‘실화’에 가까운 진짜 청춘영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