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데니스 퀘이드 주연의 재난영화 <피닉스> LA 시사기
2004-12-22
글 : 이종도
40년 만에 부활한 ‘사막의 기적’

사막 한가운데서 불타오르는 비행기, 이 절망의 잿더미 위에서 희망이 솟아오른다는 이야기인 <피닉스>(Flight of the Phoenix)는 어찌 보면 고전적인 재난영화일 수 있다. 사막 위에 지어진, 이제는 낙관주의적인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자리한 LA의 샌타모니카 불러바드에 자리잡은 AMC극장에서 <피닉스>의 시사회가 열렸다. 이십세기 폭스사가 40년 만에 다시 손을 대 만든 리메이크작 공개다. 이미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막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인지를 1965년 원작 <사막의 기적>(The Flight of the Phoenix)에서 지켜본 탓인지 궁금증보다는 리메이크가 만들어진 배경과 원작과의 차이가 더 궁금했다. <캐스트 어웨이>의 떼버전 또는 <15소년 표류기>나 <파리 대왕> 어른판 같은 이 재난영화는 1965년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 작품이 원작이다. <그리솜 갱단>이나 <키스 미 데드리> <더티 더즌>처럼 <사막의 기적>도 알드리치만의 호흡이 느껴진다.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살아남으려 바둥대고 서로 다투고 갈등하는 인간세계의 축도 또는 사막에 버려진 인간집단 탐구라 할 만한 깊이와 짜임새로 성큼 마음을 파고드는 수작이다.

원작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아들이 제작자로

제작자 윌리엄 알드리치는 아버지 로버트 알드리치의 <사막의 기적>을 이십세기 폭스사에 리메이크하자고 제안했다. 1965년 원작의 리메이크 판권은 폭스사와 윌리엄의 회사인 알드리치 그룹의 공동소유. 1997년 양쪽이 리메이크를 합의했고, <에너미 라인스>를 만들던 감독 존 무어는 이 소식을 듣고 메가폰을 잡기를 자청했다. 알드리치는 13년 만에 다시 프로듀서를 하면서 아버지의 유품에 뛰어들었다. 13년 전 작품도 아버지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의 TV 버전이다. 아버지가 만든 <그리솜 갱단>에 프로듀서로, <베이비 제인…>에서는 연출부로, <베이비 제인…>과 <사막의 기적>에선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리메이크는 원작의 다소 무거운 인간탐구 대신 사막의 비행기 추락과 이를 벗어나는 과정에 더 집중한다. 사막 로케이션, 특수 모델 비행기, 비행기 추락장면 등은 원작의 다소 밋밋해 보이는 재난적 성격을 강화했다.

리메이크는 몽골의 유전 석유 시추 사업 실패를 악몽의 서장으로 열어젖힌다. 피닉스라 불리는 화물 비행기의 프랭크 타운즈(데니스 퀘이드) 기장은 사업을 정리하고 철수하는 정유회사 직원 켈리 존슨(미란다 오토) 등을 태우고 베이징을 향해 출발한다. 그러나 모래폭풍을 맞아 비행기는 고비사막에서 추락하고 무전기 한대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열기와 모래폭풍 목마름과 싸우며 탈진해간다. 도대체 어디서 탈출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절망과 피로가 엄습할 때 승객 중 한명인 엘리어트(지오바니 리비시)가 농담처럼 비행기 잔해를 모아 새로운 비행기를 만들자는 제안을 한다. 숨쉬기도 벅찬 마당에 비행기를 만들자고? 물 한 모금과 땀 한 방울이라도 아껴가며 구조를 기다리자는 현실주의자 타운즈와 무모한 과학주의자 엘리어트는 생존자의 유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원작보다 훨씬 선명한 대결구도, 무게있는 문어체 대사를 다 덜어낸 속어들, 비행기 추락의 악몽을 현실화한 박진감 넘치는 추락장면 등은 피닉스가 시간이 흐르며 더 날렵해졌다는 증거다.

리메이크는 인간보다는 사막을 더 깊게 파헤친 작품이다. 존 무어 감독은 고비사막이 던져주는 철저한 고립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원작의 무대였던 사하라사막은 나미비아사막으로 바꿨다. 제작진은 아무도 안 사는 광활한 오지, 누구도 들어가기 어려운 완벽한 고립의 땅을 원했지만 모로코, 호주의 사막 등 어느 후보지에서도 전신주와 도로가 없는 사막은 없었다. 자라던 나무와 풀도 다 없애가며 물 한 방울, 희망 한줌 얻을 수 없는 이미지를 나미비아사막에서 얻어냈다. 데니스 퀘이드는 시속 80km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맞으며 하루종일 모래 위를 걷는 건 너무 힘든 경험이었다고 토로했다. 1965년 원작에서 폴 맨츠(스턴트 파일럿)가 사망한 것을 보지 않더라도 사막에서의 촬영이 악전고투임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인공인 비행기가 있다. 1950년 제작된 군용항공기 C-119라는 희귀한 항공기를 구하느라 제작진은 애리조나주의 비행기 묘지부터 케냐까지를 훑고 다녔다. 사막 한가운데 추락했다가 다시 일어서기까지 비행기가 나오지 않는 장면은 없다고 과언이 아니다. 4대의 C-119 비행기를 모두 분해해 배에 싣고 나미비아사막까지 공수하는 수고를 마다할 수가 없었다.

재난적 성격 강화, 캐릭터는 다양화했으나 허약

그런데 왜 느닷없이 몽골에서의 석유 시추 사업 실패 이야기가 나올까. 이런 점에서 <피닉스>는 부시의 이라크전 침공을 읽는 데 곁들일 참고서처럼 보인다. 사막(또는 이라크)이라는 오지(미국식 문명이 아닌)에서 석유를 얻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젊은이들이야말로 지금 미국에서의 현실이자 또 하나의 진행형 신화가 아닌가. 전혀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 재난어드벤처영화 속엔 희미하게나마 미국의 정치적 무의식이 배음처럼 흐르고 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원작과 리메이크를 가르는 큰 지점이다. 왜 40년 만의 리메이크가 나왔을까. 냉소적인 시선으로 이데올로기의 허울을 걷어내고 인간을 발가벗긴 알드리치 감독의 원작은 사소한 갈등만으로도 스크린에 긴장감을 드리웠다. 사막이 일으키는 정신적인 공황, 무질서해지는 군대,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둘러싼 싸움, 먼저 자기부터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다툼, 최악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은유가 풍부했다.

베테랑 기장과 젊은 과학자 그러니까 타운즈와 엘리어트(원작에서는 독일계 도르프만)의 자존심 대결이 축을 이룬다는 건 마찬가지다. 신기술과 구기술, 구세대와 신세대, 어리석을 정도로 우직하게 자신의 직감을 믿는 사나이와 잔인하면서도 냉정한 합리주의가 맞선다. 원작에서 과묵하고 치밀하며 독선적인 도르프만의 캐릭터는 조금 더 우스꽝스럽고 유치하고 자아도취적인 엘리어트가 된다. 누가 대장이냐를 놓고 티격태격,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승리를 확인하고 기뻐하는 비열하기까지한 성격을 놓고 보면 리비시의 캐릭터 해석은 단순함과 코미디가 두 가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1965년 원작의 배우진은 당대 최고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제임스 스튜어트, 어네스트 보그나인, 리처드 애튼버러가 운명의 싸움에서 피로함 가득한 연기를 보여줬다. 원작이 군인과 비행원 사업가 등 남성만으로 진용을 짰다면 리메이크는 민간인과 여성 유색인종으로 좀더 밝고 다채롭게 승객 명단을 꾸몄다. 화상과 열기가 쓸고 지나간 지친 얼굴로 대사를 뱉던 원작의 배우들에 비하면 개정판 <피닉스>의 배우들은 복숭아 통조림을 먹으며 사막에서 골프를 치고 카세트로 힙합을 즐기며 사막의 두려움을 미국적 낙관주의로 넘어선다.

아마도 시대적 반영이라 할 이 변화가 긍정적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남자들을 압도하는 대찬 기질을 뽐냈던 에오윈 역의 미란다 오토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원작에서 기장 타운즈와 부기장 루 모란(리처드 애튼버러) 사이의 두터운 우정도 희미해졌다. 부기장 AJ(<패스트 앤 퓨리어스2>의 타이레스 깁슨)는 타운즈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한다. 데니스 퀘이드말고는 모두 모래폭풍에 휩싸여버린 것 같다. 데이비드 린의 광팬으로 알려진 데니스 퀘이드를 위해 알드리치식 소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원작에선 아랍 또는 낯선 이방인(정말 이방인은 이들 불시착한 백인들이나)에 대한 편견은 탈수증에 걸린 남자의 환상 속에 잠깐 등장한 아랍 여자의 춤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낙타를 몰고 다니는 도적단도 잠깐 등장하고 사라진다. 그건 마치 사막이라는 지옥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투다.

그러나 개정판은 대담하게도 도적단과의 결투를 치밀하게 묘사하며 미개하고 잔혹한 아시아 마적단과 백인 승객과의 싸움에 큰 비중을 둔다. 고비사막이라는 무대는 아시아인데 영화는 아시아의 지형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건 그저 벗어나야 할 지옥일 뿐이다. 엘리어트가 숨겨둔 복선의 뇌관이 이런 정치적 무심함을 상쇄할지도 모른다. 부러진 날개가 다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를 때의 희열이 모든 것을 덮는다면 2005년 2월4일 개봉할 <피닉스>의 비행계획은 그렇게 무모한 것만도 아니다.

배우, 데니스 퀘이드, 지오바니 리비시 인터뷰

“원작과 차이? 그건 기자들이 알아볼 일이다”

애초에 데니스 퀘이드와 지오바니 리비시 그리고 <에너미 라인스>와 <피닉스>의 감독 존 무어가 인터뷰장에 나오기로 했다. 데니스 퀘이드와 지오바니 리비시는 정열적이고 지칠 줄 모르는 존 무어 감독을 칭찬했지만 정작 존 무어는 몸이 아파 나오지 못했다.

-원작을 보았나.

=데니스 퀘이드 l <피닉스> 원작은 어릴 때 아주 좋아한 영화였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가운데 하나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하디 크루거가 원래 역을 맡았는데 실제 해보니 어떤가.

=데니스 퀘이드 l (제임스 스튜어트 목소리를 흉내내다가) 정말 좋은 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했겠지만 이건 정말 리메이크하기 좋은 작품이고 테크놀로지의 발전도 보여줄 수 있고 액션 시퀀스도 더 뛰어나게 만들 수 있다. 인간의 감정 그리고 희망을 잘 다룬 좋은 이야기다.=지오바니 리비시 l 엘리어트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다. 수줍어하는 성격이지만 또 한편으로 사이코다. 다른 영화라면 한니발 렉터 같은 역할이랄까. 하지만 꼭 악역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영향을 받을까봐 나는 원작을 보지 않았다.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 더 신경을 썼다.

-원작과 비교한다면 어떻게 차이가 나는가.

=데니스 퀘이드 l 그건 기자들이 할 일이다. 이 작품에 비판을 한다고 해도 기자들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지는 않을 거다. (웃음) 그게 내 모토다.

-실제 파일럿이라고 들었는데 하늘을 날면 기분이 어떤가.

=데니스 퀘이드 l <필사의 도전>(1983)의 고든 쿠퍼 역을 할 때부터 비행기를 몰기 시작했는데 직접 경비행기를 몰고 라스베이거스를 다녀오기도 한다. 운전석에 있으면 어둡고 무섭다. 하지만 하늘을 날면 자유를 만끽하는 기분을 느낀다.

-사막에서 찍는다는 게 힘들지 않나.

=데니스 퀘이드 l 바람이 거세고 매일 방향이 바뀐다. 촬영장 모습이 뒤바뀔 정도다. 아주 신비스런 곳이지만 정말 너무 거칠고 힘들다.=지오바니 리비시 l 낡은 커다란 강풍기 두대에서 바람이 불어오는데 얼굴이 날아갈 것 같았다. 나미비아사막에서 첫날 일몰장면을 찍는데 말로 못할 정도로 아름답더라. 존 무어 감독도 찍다 말고 바라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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