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조승우 주연의 <말아톤> 막바지 촬영현장
2004-12-27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정진환
언어 대신 달리기로 소통해요, 우리.

노란색 티셔츠와 초록색 반바지를 입은 아이들이 식판을 들고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자폐아들을 가르치는 육영학교의 식당. 패스트푸드점과 비슷한 탁자와 의자가 아기자기한 이곳에서, 육상 코치 정욱(이기영)과 자폐아 청년 초원(조승우)은 서로에게 다가서고 서로를 튕겨내는, 작은 순간을 만나고 있었다. 모처럼 옆자리를 내주는 정욱을 본 체 만 체하는 초원.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드러낼 줄을 모르는 두 남자는, 42.195km의 마라톤 코스를 함께 완주하면서 새로운 삶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TV다큐멘터리에서 소재를 얻은 <말아톤>은 자폐증 때문에 다섯살 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스무살 청년 초원이 한없이 달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이야기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경숙(김미숙)은 큰아들 초원이 달리기만은 누구보다 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초원은 마음 내키는 대로 달리기 때문에 호흡 조절이 필수인 장거리 코스는 완주할 수가 없다. 꾸준하게 아들을 훈련시키던 경숙은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육영학교 코치로 온 전직 마라토너 정욱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자 한다. 오래전에 달리기를 포기한 정욱은 초원 모자를 한사코 내치지만, 끈질긴 설득이 귀찮아서 초원의 코치가 되어주고, 그와 함께 달라진 자신의 에너지를 발견한다.

단편영화 <기념촬영> <동면>을 만들었던 정윤철 감독은 그 자신이 마라톤을 해볼까 싶던 시기였던 탓에 배형진씨의 분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몇 차례 각색을 거치면서 <말아톤>은 마라토너의 인간 승리보다는 언어 대신 달리기로 소통하는 사람들의 관계에 눈길을 주게 됐다. “경숙은 아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말아톤>은 그런 두 사람과 정욱이 진심으로 소통하는 순간, 달리면서 존재의 희열을 느끼는 순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다큐멘터리와의 차이다.”

짧게 깎은 머리와 불안하게 오르내리는 손가락 놀림이 꼭 자폐아처럼 보이는 조승우는 아마도 <말아톤>의 첫 번째이자 최상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날 남들보다 한발 앞서 마지막 촬영을 한 조승우는 “마라톤을 완주하듯 숨가쁘게 달려왔다. 처음엔 완벽하게 계산된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다섯살 아이처럼 순수하게 세상을 보고 느낀 그대로 연기하고 싶다”고 추위 속에 마친 촬영을 돌아보았다. 12월 중순 촬영을 마치는 <말아톤>은 내년 1월 말에 개봉할 예정. 문법에 맞지 않는 제목은 맞춤법을 잘 모르는 초원이 일기에 ‘오늘 할 일은 말아톤’이라고 적는 장면에서 따왔다.

△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육영학교에 부임한 육상코치 정욱은 자폐아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내가 주는 건 먹지도 않고, 맛있는 게 있어도 혼자만 먹는” 아이들이라며 조금 서운해하고, 앉는 자리에만 앉는 습관이 붙어 모처럼 내준 옆자리를 모른 척하는 초원 때문에 무안해하기도 한다.

△ 초원은 엄마가 입원해서 텅 빈 집에 혼자 앉아 다이어리를 들여다본다. 엄마는 훈련을 멈추지 않도록 스케줄을 적어두고 입원했다.

△ 카리스마 있는 악역을 주로 맡아온 이기영은 “사실 코미디 연기가 가장 편하다”고 한다. 밥먹는 장면을 찍으며 NG가 거듭될 때도, 그는 “계속 다시 찍자. 저녁까지 아예 먹어버리게”라며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곤 했다. (왼쪽 사진) △ 정윤철 감독은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아련한 추억처럼 담은 단편 <기념촬영>으로 기억되는 신인감독이다. 그가 생각하는 <말아톤>은 “결국엔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이다. (오른쪽 사진)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