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1월2일(일) 밤 11시50분
2005년 새해 첫 한국영화는 감독, 출연자, 영화 모두가 한국 영화사에서 각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시작한다. 우선, 감독. 이장호 감독은 지난해 12월 특별전으로 방영된 신상옥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다.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하자마자 이른바 대박을 터뜨린 이장호는, 그러나 1976년 대마초 혐의로 활동이 정지되었다가 해금된 이후 이 작품으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 이장호 감독은 80년대 후반까지 가장 잘 나가는 감독으로 활동한다.
다음은 배우. 남자주인공 3명 중 특히 안성기에게 이 작품은 그의 연기 인생을 재개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의미를 지닌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의 아역으로 데뷔한 그는 학업과 군복무로 한동안 영화 활동을 중단했다가 다시 배우로 복귀했는데 이 작품으로 부활에 성공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59년 이후 21년 만에 대종상 신인상을 받는다. 또한 이발소 조수 춘식 역의 이영호는 이장호 감독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여관 종업원 길남 역의 김성찬은 TV 탤런트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이 작품에서 그의 배우로서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그는 99년 모 방송프로그램의 오지탐험 중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해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외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의 한축이었던 유지인, 하이틴 스타 출신의 임예진, 김보연 등 당시엔 청춘스타였고, 지금은 중견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의 모습이 대거 보인다.
하지만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한동안 맥이 끊겼던 한국 리얼리즘영화 계보를 되살린 신호탄이란 점에 있을 것이다. 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는 이른바 3S정책으로 대중을 우민화하려는 유화정책을 썼고, 그 결과 영화계에선 에로영화 제작이 성행하는 한축과 이장호, 배창호로 이어지는 사회의식과 작품성을 담보하며 제작되는 한축으로 양립하고 있었다. 이 경향은 80년대 말의 한국영화 뉴웨이브 시기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