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내게 계속 두려운 존재였다”
의외였다. 20여년간 영화를 하지 않았으면서도 <씨네21>을 6년째 정기구독하고 있다고 했다. “<역도산>을 못 봤다. 궁금한데. 최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봤고, <말아톤>을 찍으면서 우리 영화도 많이 봤다. <썸>과 <주홍글씨> 같은 영화들.” 오랫동안 영화를 하지 않았지만 연극이든 영화든 뮤지컬이든 짬짬이 보아왔다고 했다.
김미숙이 22년 만에 영화로 나들이를 했다. <말아톤>(감독 정윤철)에서 자폐아의 어머니 역으로 나온 그를 만나 삶과 영화 얘기를 들었다. 연인이 아니라 이제 어머니 역을 맡아 돌아온 그를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를 먼저 망설였다. 김미숙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제 어색하지 않다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선생님 연배가 된 거 같다.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라고 말은 하면서도 그게 어색해.” 18년간 라디오를 진행해와서일까. 마치 라디오 앞에 바싹 앉아 친숙한 DJ에게 편하게 귀를 맡겨놓은 기분이었다. 턱을 괴었다가 풀었다가 하면서 그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야기 실타래를 풀었다.
-<타인의 둥지> 이후 22년 만의 영화 출연 느낌은 어땠나. 필모그래피를 보니 <우산 속의 세 여자>처럼, 예전에 출연한 영화들은 처음 듣는 낯선 이름이다.
=<말아톤>을 처음 시작할 땐 담담했다. 연기는 늘 하는 일이었고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했으니까. 다만 오랫동안 영화를 하지 않은 이유는 맞는 역할이 없어서였다. <말아톤> 시나리오를 받아들었을 때는 긴장감이 없었는데 막상 현장에 가니 스탭들이 영화에 대해 목숨을 건다고 할까, 대단하게 여기고 있어 긴장했다. 한편으로는 시니컬한 생각도 들더라. 세상 일이란 게 목숨을 건다고 해서 다 얻어지는 게 아닌데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열정적일 수가 있을까.
-그동안 일부러 영화를 멀리 한 건 아닐 듯하다.
=어려서 영화를 잘 모를 때 작품을 했다. 그때는 나만의 선택기준이란 게 없었다. 세월이 지나니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알겠고 내가 만들고 싶은 이미지를 알겠더라. 마음에 썩 드는 역할이 없기도 했지만 여러 이유가 있어 영화를 하지 않았다. 80년대 후반에 엎어지긴 했지만 <여명의 눈동자>에서 여옥 역할을 제안받았는데, 역할은 매력적인데 감당을 못하겠더라. 정신대의 고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 거절을 한 뒤 영화는 내게 계속 두려운 존재였다. 영화를 하면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적나라하게 모든 것이 드러났으니까. 대신 TV는 베드신도 없고….
-뒤늦게 아이를 둔 것도 영화 선택의 이유가 되었을까.
=글쎄. 두 아이를 키우기는 하지만, 보통 엄마의 모성애하고 장애아를 둔 아이 엄마하고 같을까. 감히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까. 아이가 있어 더 잘할 거란 생각은 아니지만, 아이가 있으면 진짜 다르니까. 영화 시나리오가 2년 전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 하고픈데 투자가 안 돼 엎어진 것도 있었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있었다. 세 번째 들어온 게 <말아톤>이었다. 이건 보통 엄마의 범주를 넘어선 역이었고, 좋은 어머니상(실제 모델도 훌륭하고)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역할도 주인공 엄마에 그치지 않는, 말하자면 깍두기 같은 역할이 아니라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다. 시나리오도 마음을 흔들었다. 혼자 읽으며 많이 울고 웃었다.
-자폐아 아들로 나오는 상대역 조승우 때문에 작품을 골랐다는 얘기도 있다.
=승우씨 몫도 컸다. 연기란 늘 상대방을 고려하게 되는 거니까. 평판이 상당히 좋더라. 어떤 배우인지 자료도 찾아보고 작품도 봤는데 이미지가 깨끗하고 착하게 생겼더라.
-영화 속에서는 자폐아인 아들에게 비를 가르치기 위해 아들을 빗속에 세워놓고, 산 정상까지 아이를 이끌기 위해 초코파이로 아이의 발걸음을 이끌기도 한다. 마라톤 선수 출신의 코치를 모셔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코치님은 왜 뛰셨어요? 깝깝해서요? 아님 엄마가 만날 조졌나요?”라는 대사가 귀에 콱 박혔다. 의지 넘치는, <나의 왼발>에서의 엄마처럼.
=<나의 왼발>의 그 정도 중증장애아라면 하지 않았을 거다. 영화를 보기가 힘들었다. <오아시스>도 잘 봤지만 비슷했다.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고픈 기분이랄까. 영화의 메시지는 알겠지만 그들의 아픔을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더라. 오래전 봤는데 너무 우울했다. <말아톤>은 그 영화와는 조금 종류가 다른 것 같다.
-실제 그런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나라면 그래도 그 실제 모델의 엄마 못지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성격으로 보면 말이다. 감히라는 말을 꼭 붙여 얘기해야 할 듯한데, 영화 찍으며 내내 아팠다. 나와 승우씨는 30초든 몇분이든 연기를 하고 그 바깥으로 나오면 행복한 정상인이다. 하지만 그들 모자는 늘 똑같다. 굉장히 미안하고 아프고 감당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찍을 때보다 찍고 나서가 더 힘들다. 혹시 아이가 있나? 아이가 정상이란 것, 그것보다 큰 축복은 없는 것 같다. 진짜로 그렇다.
-얼마 전 끝난 TV드라마 <사랑을 할거야>를 봤는데 보기 좋더라. 머리에 스카프를 하고 다니는 만화가의 캐릭터가 발랄해 보였다. 기존의 이미지 말고 여러 모습이 있을 텐데 왜 진작 보여주지 않았나.
=아무도 내게 그런 색깔이 있다고 생각을 안 하나보다.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다. 1998년 SBS <사랑해 사랑해>라는 드라마에서, 이름만 들어도 상상이 될 듯한 봉자라는 역할을 해본 적이 있다. 예고편을 찍고 나서도 망설여져서 이장수 PD 앞에서 엉엉 울 정도로 푼수 역할이었는데, <사랑을 할거야>보다 더 파격적이었다. 많은 분들이 보지 않아서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런 역을 할 수 있었던 건 아기 엄마가 되면서 편해져서 그런 것 같다. 싱글일 때 잘난 척하던 걸 털어냈고,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니니까.
-자식을 낳고 난 뒤 인생과 연기에 변화가 있었나.
=아무래도 아이라는 존재는 또 다른 세계다. 나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할 정도의 세계다. 삶이 변화하니까 당연히 연기 표현도 달라지겠지. 기본적인 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하나의 우주고, 내 분신인 아이도 또 하나의 우주이니까 그만큼 넓어지는 거겠지.
-뒤늦게 유아교육을 전공했는데, 영화나 방송과는 상관없는 전공을 공부한 계기가 궁금하다.
=배우란 직업은 선택되는 거다. 누가 날 선택하지 않으면 가치를 잃는 게 연예인이다. 한창 바쁠 때 앞날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언제까지 배우를 할 수 있을까. 이 이미지로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다. 자신이 없었다. 연기를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동생이 유치원 교사였는데 교재를 만들면서도 스크랩을 하면서도 늘 깔깔거리고 행복해 보였다. 내가 해도 될까 물어봤더니 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랑유치원을 하기 시작했는데, 유치원을 꾸려가는 일이 내게 긴장과 보람을 줬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
=아이답게 키우겠다는 거다. 정말 고민은 많다. 내가 하고픈 걸 시켜야 하나, 애가 하고픈 걸 시켜야 하나 이런 거다. 결론은, 우리 아이들이 부모를 봤을 때 내가 존경할 만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내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거고. 좋은 엄마 노릇을 하자, 그리고 아이들이 엄마 아빠만큼만 잘살아주기를 바라자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부터 변하는 것 없이, 늘 한결같은 얼굴을 보여줬다. 그 얼굴은 책을 읽거나 성형을 해서 생길 수 없는 얼굴 같다.
=라디오를 사랑하는 이유가, 라디오가 나를 다듬기 때문이다. 연기자는 만들어진 캐릭터를 연기한다. 라디오는 내 본모습이 보여져야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러려면 사물에 대해 남다른 시각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40살이 넘으면 자기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링컨 얘기는 정말 맞는 얘기다. 주변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니까 얼굴이 편해 보이는 게 아닐까.
-분위기와 지성이 당신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키워드일 텐데 그런 면에서 당신은 많은 걸 갖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열등감을 느낀 적은 없는가.
=눈도 작고, 열등감 많다. 손도 안 예쁘고. 열등감이라기보다는 나는 나의 한계를 안다. 안 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포기하면 편하지 않을까. 너그럽게 인정하고 이건 내게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내 한계는, 이야기하기 구차한데, 표독스럽고 앙칼진 캐릭터를 못한다는 거다. 그런 역이 들어오면 그래서 포기한다.
-당신 목소리엔 모성애가 깃들어 있다. 당신의 결혼도 거기에 기반한 건 아닌가.
=남편에게 내가 어디가 좋으냐고 한번 물어는 본 것 같은데,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은 것 같지는 않다. 사물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는 내 태도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남편이 나를 좋아한 이유 가운데 모성애가 없지는 않았겠지. 남자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모성애를 원하지 않나.
-분위기 있는 얼굴, 교양미, 우아함…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일지는 않나.
=<언페이스풀> 도입부만 봤는데, 바람난 유부녀의 행각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기가 무서워서 그랬다. 도입부만 보면 저런 영화 찍을 만한데, 그 다음을 진행할 자신이 없다. 그게 내 한계다. <말아톤> 스탭과 밥을 먹으면서 농담으로 ‘이번엔 엄마를 했으니 빨리 끝내고 다음엔 진한 멜로를 해서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어디 <데미지> 같은 거 없을까. (웃음)
-그러니까 퇴폐적이고 정념으로 가득한 영화도 찍고 싶다는 얘기인가.
=그럴 수도 있겠지. 될까? 나이 더 먹기 전에 해야 하는데.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이 함께 만든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같은 영화도 좋지. 잘 아는 방송작가도 그러더라고. 몸매 관리만 하면 그런 영화 찍을 수 있다고. 그런데 내가 바람 피우는 영화 하면 대한민국 여자들이 다 피우는 거 아닐까.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오래 했고 플루트도 한때 즐겨 불었다고 들었는데 무슨 곡을 좋아하나.
=풀루트를 왜 좋아했냐 하면 바흐의 작품번호 BWV 1031부터 시작하는 플루트소나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너무 명료하고 예쁜 음색이어서 반했다. 음대생에게 배웠는데 너무 바쁘고, 이 악기가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한다. 연습을 하면 골이 띵해지니까 20분 쉬어야 하고. 20대 중반에 배우다가 말았다. 음악이란 게 묘해서 분위기와 시간, 장소에 따라 적절한 감흥을 일으키지 않나. 친구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 가사의 절절함도 좋고 재즈나 클래식도 좋고.
-미숙동 사람들이라는 팬클럽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오나.
=두 사람으로 시작해 어느덧 700명으로 불어났다. 회원들이 거의 서른살이 다 넘었다. 700이란 숫자는 턱도 안 되는 숫자지만 그러나 모두 골수팬들이다. 영화나 방송을 새롭게 할 때마다 와서 격려해준다. 고등학교 3학년이 제일 어리고, 환갑을 넘기신 분도 있다. 지난 일요일에 함께 송년회를 했다. 올해는 미숙동 사람들이 유난히 활동이 많았던 해다. 지금 하는 드라마 <토지>를 보러 원정대까지 꾸려 하동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현장에서 의아해하며 팬클럽이냐고 그러더라. 그래서 그랬지. ‘내가 5만원씩 주고 풀었어.’ (웃음) 가족 단위가 많다. 엄마와 아빠가 좋아해서 딸까지 좋아하기도 하고. 사실 내가 이 안에서 무슨 역할을 맡아서 이끌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부담감도 있다. 쉬고 싶을 때도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이분들이 힘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제대로 쉬기도 어렵다. 농담으로 그런다. 팬클럽에게 활력을 주기 위해서라도 내가 일을 해야지, 하고.
-여러 일을 하고 있는데 가장 큰 애착이 가는 건 뭔가.
=내가 오래 하고 있는 일은 모두 내가 애착을 많이 갖고 있는 일들이다. 라디오를 18년 넘게 해오고 있으니 애착이라고 할 수 있다. 데뷔 이후 25년 넘게 연기를 하고 있으니 애착을 가질 만큼 했다. 사랑유치원도 18년을 했다. 이젠 엄마를 조금 더 오래 하려고 한다. 그걸 가장 잘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