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DVD]
2004 DVD에 생긴 일
2005-01-07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글 : 조성효
글 :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2005년 DVD의 대중화를 기대하며, 지난 2004년 DVD시장을 결산한다. 최고의 국내외 타이틀과 수많은 타이틀에 파묻혀 제 빛을 못 낸 숨겨진 타이틀 6편을 모았다.

2004 DVD 타이틀 베스트 10

1. <스타워즈 트릴로지>
2. <반지의 제왕 확장판>
3. <아이, 로봇 SE>
4. <매트릭스 얼티미트 컬렉션>
5. <알라딘 플래티넘 에디션>
6. <헬보이 특별확장판 디렉터스컷>
7. <스파이더 맨2 SE>
8. <올드보이 UE>
9.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SE>
10. <태극기 휘날리며>

DVD도 한국영화 휘날리며

올해의 베스트 타이틀은 매체의 특성상 DVD 타이틀로서의 완성도가 우선이다. 그래서 선정 기준은 화질, 음향, 부록에 의해 좌우되며 이를 적용한 결과 2004년도 변함없이 잘 만들어진 타이틀의 대부분은 할리우드영화의 몫이다. 철저한 기획과 준비과정, 자본과 기술력이 뒷받침이 되니, 이는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이런 독식에 가까운 상황에서 잘 만든 한국영화 타이틀이 3편이 나온 것은 큰 소득이다. 비록 순위에는 들지 않았지만, <아라한 장풍대작전>도 <올드보이> <태극기 휘날리며>에 견줄 만한 완성도를 지녔다. 올해의 베스트 타이틀은 <스타워즈 트릴로지>다. 황홀한 정도의 우수한 복원력 덕분이다. 사실 1, 2위는 누가 더 좋은 타이틀이란 의미가 없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확장판 역시 말 그대로 ‘제왕’의 타이틀이 아니던가. 복원의 우수함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에서도 적용되었고, <알라딘>은 유일한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올드보이 UE>는 가격 논란이 있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올해의 한국영화 타이틀로 선정했다. 또 하나의 성과는 <태극기 휘날리며>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뒤지지 않는 역대 한국영화 DVD 최고의 화질을 보여주었다.

2004 외화 베스트 타이틀

30년 전 영화 맞아? 디지털 복원의 ‘제왕’ <스타워즈 트릴로지>

좋을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했겠지만, <스타워즈 트릴로지> DVD 타이틀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면 벌어진 입을 다물 길이 없다. 이 박스 세트에 포함된 에피소드4, 5, 6은 현대 디지털 복원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실로 놀랄 만한 성과물이다. 그 누구도 이 타이틀을 보면서 곰팡내 풀풀 나는 20∼30년 전의 영화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최신 블록버스터 타이틀과의 절대적 비교 평가에서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 오히려 더 섬세한 화질을 구현, 자본과 기술의 만남이 일궈낸 최상의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복원 작업의 1등 공신은 라우디 디지털사. <선셋대로> <로마의 휴일>과 같은 고전영화의 훌륭한 복원으로 찬사를 받았고, <인디아나 존스>에 이어 <스타워즈 트릴로지>는 디지털 복원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이처럼 뛰어난 화질과 더불어 주목을 끄는 것은 이전 버전과는 다른 화면이다. 당시 기술적 한계로 매끄럽지 못했던 장면들의 손질이 돋보인다. <제국의 역습>에서 모습이 또렷하지 않았던 얼음괴물 왐파가 제 모습을 갖추었고, <제다이의 귀환>의 자바 더 헛의 지하감옥에서 루크를 위협하는 괴물 랭커와의 어색했던 합성이 말끔해졌다. 또한 시리즈 통일성을 위한 과감한 시도도 있다. <제국의 역습>에서 모습을 드러낸 황제의 얼굴을 지워버리고, 에피소드6의 이안 맥디아미드로 대체했다. 이와 함께 <돌아온 제다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세바스천 쇼가 아닌 헤이든 크리스텐슨으로 교체한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팬들의 원성을 산 ‘옥에 티’로 거론된다. 하지만 감탄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화질과 정교한 음향, 국내 발매된 <스타워즈> 시리즈 최초로 코멘터리까지 모두 한글자막를 한 것은 단점을 가릴 만한 성과다. 별도의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는 <꿈의 제국>이란 메이킹 다큐멘터리는 팬들을 위한 멋진 부록이다. 이 부가 영상은 <스타워즈 트릴로지> 박스를 위해 새롭게 만든 것으로, 에피소드4, 5, 6 제작과 관련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2004 한국영화 베스트 타이틀

서플먼트 구성의 새 기준, <올드보이 UE>

잘 만들어진 한국영화 DVD 타이틀을 보면 감탄스럽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시장이랄 것도 없는 작은 규모지만 그것이 무색할 정도로 정성스럽게 만든 타이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4년 한해 많은 한국영화 타이틀이 쏟아졌지만, 그 가운데 작품성과 화질, 음향, 부록의 종합적인 평가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올드보이 UE>. 4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DVD는 모범이 될 만한 서플먼트 구성이 으뜸이며, 화질과 음향도 꽤 수준급이다. 물론 색 보정을 거친 화면은 개인적 취향이 많이 좌우가 되겠지만, 양과 질을 모두 만족시키는 서플먼트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한마디로 “<올드보이>의 모든 것”이 수록된 것이다.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록은 5개의 코멘터리와 박찬욱 감독과 조영욱 음악감독이 들려주는 영화음악 이야기. 코멘터리가 유난히 돋보이는 것은 영화를 만든 이, 영화평론가, 영화광의 입장을 균형있게 담아낸 것이다. 음악 이야기도 단순 인터뷰가 아닌 삽입된 곡 하나하나에 대한 해설을 시도한 것이 다른 타이틀과의 차별되는 점이다. 이외에도 박찬욱 감독의 단편영화 <심판>, 김민석 감독의 <올드보이의 추억>, 촬영 회차별로 접근한 제작과정도 주목할 만하다.

2004 숨겨진 타이틀

속사포 개그의 연속, <몬티 파이톤의 삶의 의미 특별판>

몬티 파이슨 무리는 자신들의 영화가 DVD 리뷰에서 빠진 걸 알면 ‘리뷰는 다시 시작돼야 한다’고 했다가, 리뷰가 나올 걸 알게 되자 ‘진짜 리뷰는 이제부터다’라고 환호할 것이며, 리뷰를 읽고 나선 ‘쳇, 별거 아니잖아’라고 투덜댈 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냥 제목과 출시소개만 해둬야겠다. 잘못 말했다간 그 무정부주의자들에게 매를 흠씬 맞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래도 한마디. “전작처럼 흥겹고 정신없으면서 전작보다 더 끔찍해진 뮤지컬코미디의 DVD다.” 두 번째로 출시된 <몬티 파이톤과 삶의 의미> 특별판은 향상된 화질, DTS 사운드, 별도 수록된 감독판을 자랑한다. 그리고 영화만큼 재미있는 음성해설, 용도가 의심스런 ‘고독한 자를 위한 사운드트랙(?)’ 등 메뉴부터 부록 하나에까지 2장의 디스크에는 장난기와 재기가 끝없다.

이보다 더 유쾌할 순 없다, <춤추는 무뚜>

오우삼도 울고갈 슬로션 액션에 <벤허>를 능가하는 마차 추격장면, 딸꾹질을 코믹스럽게 군중무로 끌고가는 뮤지컬과 가슴아픈 러브스토리, 거기에 왕자와 거지의 우화까지. <춤추는 무뚜>는 98년 일본을 강타하고 국내까지 진출해 화제를 뿌린 발리우드산 100% 오락영화다. 개봉 당시 국내에선 132분의 러닝타임으로 개봉되었으나 DVD는 완전판을 담았다. ‘채식주의 학’에서부터 ‘틸라나 틸라나’와 ‘구루바리 마을에서’까지 흥겨운 가락에 어깨를 들썩이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인생의 소중한 두 시간 반을 이보다 더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줄 영화도 없으므로 곁에 두고 자주 볼 일이다.

로버트 알트먼의 필름 느와르 고전, <기나긴 이별>

1973년, 오래도록 잠자던 사립탐정 필립 말로가 깨어났다. <빅 슬립>(1946)의 각본을 쓴 리 브래킷과 누아르 스타 스털링 헤이든이 도착했고, 로버트 알트먼은 주인공을 맡은 엘리엇 굴드를 ‘립 반 말로’로 부르곤 했다. 돌아온 필립 말로에게 우수에 찬 느낌은 덜했다. 그러나 말로를 재창조하려던 알트먼의 의도는 들어맞아서 비정과 순수와 고독이 결합된, 그러면서도 좀더 현실적인 모습에 가까운 필립 말로=가 탄생할 수 있었다. 수없이 변주되는 주제곡처럼 <기나긴 이별>의 매력은 보면 볼수록 더 드러난다. 감독과 배우 등이 들려주는 영화의 뒷이야기, 알트먼의 초기 걸작시대를 함께한 전설적인 촬영감독 빌모스 지그몬드가 회상하는 <기나긴 이별>, 예고편 모음으로 만나는 레이먼드 챈들러 등 부록 또한 풍성하다.

뇌리에 박힌 알랭 들롱의 죽음, <암흑가의 두사람>

알랭 들롱의 이미지는 비스콘티에 의해 비로소 빛났지만 그의 프로필은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중절모 그늘 아래 가려졌을 때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장 피에르 멜빌은 어둠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알랭 들롱을 암흑가의 꽃미남으로 등극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을 가장 기억할 만한 것으로 만든 영화는 멜빌의 것이 아닌 조세 지오바니의 <암흑가의 두사람>이었다. 주말의 명화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 주인공마냥 시청자와 단두대를 바라보는 알랭 들롱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한동안 시름시름 앓았던 분도 많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기억 속에 계속 밟혀왔던 그 영화가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어 있으니 다시금 그 죽음을 바라보시라.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못지않은 전쟁 공포, <핵전략 사령부>

<내일이 오면>(1959)에 이어 공개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핵전략 사령부>는 핵전쟁의 공포가 냉전의 시간을 살던 사람에게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보여준다. 후유증을 염려한 미국 정부는 두 영화의 앞뒤에 ‘이런 일은 발생할 수 없다’는 의견을 붙여놓았지만, 미국 폭격기가 ‘우발방지기구’(Fail-Safe)에도 불구하고 소련을 향해 핵폭탄을 투하한다는 설정을 본 관객은 불안감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런데 <핵전략 사령부>의 비극은 다른 곳에도 있었다. 시드니 루멧과 헨리 폰다의 이름을 본 스탠리 큐브릭은 <핵전략 사령부>의 내용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고소했고, 그 결과 개봉이 늦춰진 <핵전략 사령부>는 흥행 참패를 겪어야만 했다. DVD엔 음성해설과 제작 뒷이야기 등이 있으나 한글자막은 없다.

작지만 울림있는 6편 모음, <스펙트럼 뉴웨이브 시리즈 Vol. 4 & Vol. 5>

스펙트럼의 뉴웨이브 시리즈는 국제영화제 수상 경력이 있는 작지만 울림있는 영화들을 선택하여 스펙트럼이 발매하고 있는 박스 세트다. 볼륨4에는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이자 ‘구원’의 시네아스트 할 하틀리의 대표작 <심플맨>과 뽀사시를 걷어낸 영국식 <하나와 앨리스>인 <홀리와 마리나> 그리고 테렌스 데이비스의 <환희의 집>을 담았고 볼륨5는 5회 부산영화제 화제작이었던 <인간의 피부, 짐승의 심장>과 신예감독인 안네 소피 비로와 밈모 칼로프레스티의 작품들이 담겼다. 당신을 둘러싼 적막이 견딜 수 없거나 사랑이 더이상 믿기지 않는다면 <심플맨>을 보며 막춤을 추거나 비인간화되어가는 사회에 진절머리가 난다면 <인간의 피부, 짐승의 심장>을 보며 함께 고함쳐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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