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전부터 아무도 모르는 마을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던 듯하다. 둥치에 이끼가 자란 정자나무 주위로 십여채의 집이 둘러앉은 동막골. 돌멩이로 눌러놓은 너와지붕, 방 한구석에 벽난로처럼 달린 화로, 겨울을 대비해 옥수수를 말리는 마당이 옛날이야기처럼 다정한 곳이다. 이처럼 세심하게 50년 전 기억을 재현한 <웰컴 투 동막골> 세트는 강원도 평창 율치리에 자리잡고 있다. 탄광 지역이었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경사를 깎고 나무를 새로 심는 공을 들인 세트 제작비는 10억원. 대나무밭을 찍기 위해 담양으로 떠났다가 이날 세트로 돌아온 제작진은 동막골을 북한군 진지로 오인한 연합군이 잔치 중인 마을을 습격해오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제작자 장진 감독의 연극을 각색한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을 모르는 산골 마을에서, 작은 전쟁이 평화에 이르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한국전쟁이 절정에 달한 1950년 가을, 북한군 리수화(정재영) 일행과 국군 표현철(신하균) 일행, 비행기가 추락해 부상당한 미군 스미스는 외딴 산골 동막골에서 만난다. 이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면서 총을 들이대지만 거짓말처럼 순박한 마을 사람들과 지내며 전쟁으로 다친 마음을 치유한다. 그러나 연합군이 스미스의 비행기 잔해를 발견하면서 동막골도 전쟁에 휘말린다.
이 영화로 데뷔하는 박광현 감독은 옴니버스영화 <묻지마 패밀리> 중에서 첫 번째 <내 나이키>를 연출했다. 연극보다도 더 판타지에 가까운 공간으로 동막골을 연출했다는 박광현 감독은 “폭력과 무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를 그리고 싶다. 전쟁에 찌든 이들이 동막골이라는 여과기를 통과해 순수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었던 여섯명의 군인은 마을을 구하기 위해 적과 나의 구분을 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웰컴 투 동막골>의 가장 큰 적은 해가 지면 영하 10도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강원도 산간지방의 추위다. 작은 마을 하나를 이룰 만한 많은 배우들은 한복 저고리 아래로 내복 두세벌을 껴입고, 매운 추운 날에는 석고까지 두르지만, 잠깐 쉬는 시간엔 모닥불 주위를 떠나지 못한다. 마침 마을잔치 장면을 찍고 있던 탓에 모닥불을 피워야만 했던 게 다행이다.
<웰컴 투 동막골> 제작진은 평창에서 닷새 동안 촬영을 끝내고 체감온도가 영하 40도라고 소문난 횡계로 이동할 예정이다. 수화와 군인들이 연합군 비행기를 공격하고, 비행기가 다시 그들을 폭격하는 마지막 장면이 넘어야 할 큰 산이지만, 정재영은 “영화를 준비할 때는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지금은 몸만 힘들어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10% 정도 촬영을 남겨놓은 <웰컴 투 동막골>은 2005년 봄에 바깥 손님을 맞아들이는 개울 위 다리를 넘어 관객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