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영화, 시트콤으로 영역 넓혀가는 배우 안내상
2005-01-20
글 : 이영진
사진 : 정진환
“나도 내 속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배우 안내상(40)은 지난해 연말을 잊을 수 없다. 몸이 두개라도 버티지 못할 만큼 스케줄이 빡빡했기 때문이다. 주간 시트콤 <혼자가 아니야>를 촬영하면서 도중에 <드라마시티>를 2편 했고, <광기의 역사>라는 영화아카데미 작품을 포함해서 단편영화도 2편 찍었다. <불멸의 이순신>쪽에서도 섭외가 와서 3회 정도 출연했다. 갑자기 밀려든 제의에 응하느라 해프닝도 많았다. 단편영화 밤샘 촬영하고 나서 한숨도 못 자고 아침에 시트콤 찍으러 갔다가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외워둔 대사가 기억나지 않아 난생처음 당황했다. 강행군을 거듭한 끝에 몸무게는 7kg이나 줄어들었다. 지지리 못난 동생 종두를 벌레처럼 여기는 <오아시스>의 큰형, 베트남 전장의 광기와 원혼에 사로잡힌 <알포인트>의 소대원, 도둑질했다고 오해하여 초등학생에게 손찌검하는 <아홉살 인생>의 선생,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 눈에 핏줄이 선 <시실리 2km>의 조폭 등 1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안내상은 어느새 방송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시트콤에서 상관에겐 굽실거리고 후배들에겐 가혹한 탓에 항상 뒷다마 1순위에 꼽히는 패션잡지 편집장 역할을 맡아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15년차 배우 안내상을 만났다.

-피곤해 보인다. 스케줄 때문인가.

=그것도 있고. 사실 인터뷰 있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폭음하고 결국 외박했다. 집이 경기도 파주라 늦게까지 술 마시면 서울에 사는 친한 형 집에 가서 잔다.

-코디는 물론이고 매니저도 없는데.

=매니저를 둔 적이 두번인가 있었는데 누군가 날 위해서 뭘 해준다는 게 껄끄럽고 불편해서 못하겠더라. 그때는 한적하게 영화하고 있을 때라 굳이 필요할까 싶기도 했고. 그래서 혼자 다니게 됐는데 방송하다보니까 이게 아니더라. ‘헤쳐모여’가 반복되는데 쫓아다니질 못하니까.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겠다.

=<혼자가 아니야> 5회 촬영 때였나. 버스 타고 가던 여학생들이 창문 열고 “편집장님!” 하는 바람에 촬영이 중지된 적 있다. 다들 알아보니까 뻘짓도 못한다.

-시트콤은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처음에 캐스팅 제의받았을 땐 사람 잘못 봤다고 했다. 사실 시트콤 출연하는 배우들 보면서 욕 많이 했거든. 그런데 기획안을 받아보니까 막가는 시트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망가지지 않고도 내 연기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시스템이 영화와 달라 애먹지 않았나.

=3, 4회 촬영할 때까지는 적응을 못했다. 다들 느긋한데 나 혼자 대사를 빨리 치고 있더라니까. 여유가 없었던 거지. 다행히 술을 다 좋아하는 멤버들이라 매주 회식하면서 말도 트고 친해졌다. 사람들하고 가까워져서인지 이젠 카메라 앞에 서도 전보다 편안하다. 나도 모르게 애드리브를 날리는 거 보면.

-영화 출연은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1997)가 처음이다.

=<지하철 1호선>에서 행려 역할을 했는데 조감독들이 보러 와서는 같이 영화하자고 했다. 감독이 누구냐고 했더니 장선우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환장할 정도로 좋아했거든. <우묵배미의 사랑>을 수십번 봤을 정도니까. <경마장 가는 길> 보고는 문성근 말투 흉내내기도 하고. 시간 되면 서울역 노숙자들하고 좀 어울리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건 나한테는 명령이나 다름없는 거지. 3개월 동안 공연 끝나면 서울역 가서 행려들하고 술먹고 놀았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감독님이 “너 주인공 한번 해볼래?”라고 했을 정도다. 5개월 내립다 찍고 결국 영화에 나온 건 서너컷이지만 첫 경험이라는 점에서 소중하다.

-이후에 <공포택시> <불후의 명작> <공공의 적> 등에 출연했지만 단역이었다. 실질적인 데뷔작은 <오아시스>(2002)라고 여겨진다.

=맞다. 이창동 감독님이랑 한다고 해서 많이 떨렸다. 그래서 촬영 직전까지 두달 동안 연습 무지하게 했다. 첫 촬영 때 감독님이 “안내상씨 연습했죠?” 하시더라. 그래서 “예, 당연하죠” 했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현장에서 잘 안 고쳐진다고 했다. 지문도 다 잊어버리라고 했는데 그게 쉽나. (설)경구야 시나리오도 안 보고 놀고 있었는데 <박하사탕> 때 해봐서 알고 있는 거지. 미리 좀 일러주지.

-생뚱맞은 질문이지만, 안내상이 본명인가.

=본명이다. 7, 8년 됐나. 내 딸 이름 지으려고 작명소에 다녀오신 장모님이 이 이름 계속 쓰면 죽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안태건으로 바꿨다. 그때 같이 연극하던 친구들이 그 이야기 듣고 나 죽인다고 “내상아, 내상아” 많이들 불렀지. 난 제발 태건이라고 불러달라고 그러고. 어쨌든 안태건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창동 감독님이 <오아시스> 크레딧에 안내상이라고 박아버렸다. 그게 더 좋다면서. 그뒤로 다시 안내상이 됐다.

-10년 가까이 연극 무대에 섰다.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 다닐 적에 지하생활을 너무 많이 해선지 졸업하고 나서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즐겁게 살고 싶더라. 뭐가 좋을까 하다가 어릴 적 교회 다니면서 성극 하던 기억이 떠올랐고, 얼마 뒤에 우연히 공연예술아카데미 앞을 지나다 즉흥적으로 원서를 적어냈다. 오디션 보던 날 대사도 못 외워갔는데 최형인 선생님이 뽑아주었다. 돌아보면 오디션 때 말을 재미나게 해서 뽑힌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1년 동안 연기 공부하면서 개안했다. 최형인 선생님은 ‘너, 한번 죽어봐라’ 하는 식으로 몰아치는 스타일인데 정말 새 세상이 열리더라. 그 다음해에 최 선생님에게 애걸해서 한양레퍼토리에 들어갔고 <춘풍의 처>부터 2001년 <라이어>까지 무대에 섰다.

-대학 시절 지하생활이 뭔가. 신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아는데.

=어릴 적 꿈이 목사였다. 온갖 부흥회 다 쫓아다니면서 할레루야, 아멘 했다.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도 받고 다녔고 망설임없이 신학과를 가게 됐다. 근데 막상 대학 가니까 회의가 들었다.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거다. 사실 시대 분위기가 그렇기도 했고. 처음에는 선배들이 던져주는 사회과학책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을 내가 변호하겠다”고 맘먹었다. 근데 내가 점점 빠져들더라. 유물론자가 된 거지. 하나님 버리고 마르크스를 섬기게 됐다.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술, 담배도 그때 입에 댔다. 이른바 언더서클에서 운동하면서 나중에 미 대사관 점거 사건으로 8개월 정도 복역하기도 했고.

-무대에 서는 동안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같이 연극했던 친구들이 내가 쏘나타Ⅱ 몰고 다녀서 처음엔 재벌집 아들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 사실은 부업을 좀 했다. 연극하는 친구들 보면 꼬장이 말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난 돈은 좀 있어야겠다 싶어 연극하면서 대학로에서 호프집도 하고 인사동에서 카페도 하고 그랬다. 처음 5년은 잘됐는데 나중에 다 까먹고 지금은 빚만 남았다.

-장사를 할 만큼 호주머니에 여유가 있었나.

=대학 졸업하고 나서 노동현장에 갈 생각으로 돈을 모았다. 지방에 가면 방값은 있어야 하니까. 처음에 한 건 당구장이었다. 당시 외대 앞에 400만원에 매물로 나온 게 있었는데 집에서 받은 돈으로 그걸 인수했다. 근데 6개월 지나니까 2400만원에 팔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 그런 거 보면 수단이나 운이 좋았던 듯싶다.

-결국 공장엔 들어갔나.

=부산의 한 공장에서 3개월 정도 있었는데 이 길이 아닌 것 같더라. 몇달 동안 머물렀는데 그 사람들하고 섞이지 못하고 벽이 있었다. 그들의 삶은 내 머릿속에 있는 것과 다르더라. 그러면서 사실상 운동을 접었다. 그러고나서 1년 정도 술로 지내다가 연기를 만난 거지.

-연극에선 코믹한 연기를 많이 했는데. 영화에서는 대부분 심각한 역할들이다.

=이문식 이미지가 안 나서 그러나. (웃음)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어서 코믹호러 <시실리 2km>를 택한 건가.

=그런 건 아니고. 우연히 시나리오를 보게 됐는데 너무나 재밌어서 프로듀서한테 내가 전화해서 어떻게든 참여하게 해달라고 했다.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이 없다면서 처음엔 퇴짜를 맞았는데 나중에 시나리오가 개작되면서 할 수 있게 됐다. 시나리오는 처음에 읽은 게 더 재밌었는데.

-최근작 중 가장 만족스러운 영화는 뭔가.

=<아홉살 인생>. 성격 탓인지 몰라도 두발 내디뎌야 하는데 반발만 내놓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감독한테 지적당하면 또 움찔했었고. 그런데 이 영화는 윤인호 감독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해줬고, 그래서 촬영하는 동안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애착이 간다.

-<말아톤>에서 조승우 아버지로 나오는데 역할이 크진 않다.

=다들 나보고 그런다. 역할이 너무 적어서 죄송하다고. 그런 괜한 걱정 때문에 캐스팅 제의가 더 줄어든 것 같다. 내 기준은 역할의 비중이 아니다. 과장하지 않고 일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말아톤>은 일단 시나리오가 맘에 들었고, 등장이 많지 않지만 시나리오 곳곳에 아버지가 숨어서 지켜본다는 느낌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한 거다. 음, 촬영이 끝나고 나니까 신이 좀더 많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긴 하더라. (웃음)

-차기작은 뭔가.

=3월쯤에 들어갈 것 같은데 아직 말할 순 없고. 언젠가 영화 안에서 점점 변화하는 인물의 심리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살아온 이력이 지그재그다. 어떤 우연한 계기를 만나 배우 말고 또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 속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궁극적으로 무위도식하면서 살고 싶다. 안 되면 말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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