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소통으로 다가가는 치유, <말아톤>
2005-01-25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얼룩말을 좋아하는 자폐아 청년, 얼룩말처럼 초원을 질주하다.

초원(조승우)은 다섯살짜리 지능을 가진 스무살 자폐아 청년이다. 초원의 엄마 경숙(김미숙)은 아들을 남들과 다를 바 없이 키우려고 애쓰고, 의지를 키워주는 마라톤을 그 방법으로 선택한다. 달리고 있을 때만은, 힘든 일도 참고, 똑바로 앞을 바라볼 줄도 알게 된 초원. 그러나 풀코스를 완주하기 위해선 페이스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경숙은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육영학교 체육교사로 온 전직 마라토너 정욱(이기영)에게 초원의 훈련을 부탁한다.

<말아톤>은 2002년 8월 방영된 TV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다. 장애를 극복한 마라토너, 쯤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정윤철 감독은 극복이나 승리를 위한 싸움보다는 소통으로 다가가는 치유에 초점을 맞추었다. 초원은 남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감정과 호오(好惡)를 표현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그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그 아이를 내 마음속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 어쩌면 <말아톤>은 단 한 가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여정일지도 모른다. 초원은 정말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인가. 그 답을 찾으면서 이 영화는, 초원의 어머니를 지옥으로 내몰았다가 평화로운 천국으로 들어올리고, 삶의 박동을 잃어버린 한 남자에게 벌떡거리는 심장소리를 돌려준다.

<기념촬영>으로 서울단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정윤철 감독은, 죽음을 한이 아닌 정서로 기억했던 그 단편처럼, 독한 마음이 맺힐 수도 있었을 <말아톤>의 42.195km를 다소 순한 걸음으로 쫓아간다. 모정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정욱의 사연과 순탄할 수만은 없는 초원의 가족사가 영화 도중 증발하는 것도 이 영화에서 끈질긴 근성을 걷어낸다. 그러나 초원이 엄마의 손을 놓고 마라톤 코스를 향해 홀로 달려가는 뒷모습은 슬픔뿐만 아니라 어느 경지를 넘어선 벅찬 순간도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주연 조승우는 특별히 드라마틱한 부분이 없는 이 영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촬영 도중 “언제인가부터 계산을 버리고 그저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기로 했다”고 말했던 조승우는 거의 변하지 않는 표정 아래서도 솔직하고 물결처럼 변화하는 숱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너무 찰나여서 좀처럼 손에 쥐기 힘든 경계 위에 서 있다. 그를 보고 있으면, 관객 또한, 그의 진심을 알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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