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9시30분부터 시작된 스틸 촬영은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꼼짝없이 수많은 스탭에 둘러싸인 채 스튜디오에 갇혀서 쉬지 않고 웃고, 포즈를 잡고, 옷을 몇 차례나 갈아입고, 렌즈를 의식해야 하는 피곤한 일이다. 그런데 <그때 그 사람들>의 백윤식 선생, 한석규 두 남자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입가에 머금은 웃음은 떠날 줄 몰랐고, 스튜디오를 나설 무렵엔 소풍을 떠나는 소년처럼 활기까지 넘쳤다. 두 사람이 육체의 경계선을 거꾸로 월경하고 있다고만 말하는 게 아니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지금 영화의 이력서를 다시 쓰고 있지 않은가.
오랜 사진 촬영이 끝난 뒤, 한석규의 오랜 단골이라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백 선생은 자신의 성이 영어 B자로 시작하기 때문에 BMW와 벤츠가 어울린다는 농담으로 좌중을 웃겼고 한석규는 와인병 안에 들어간 코르크 마개 뽑는 법과 비틀스의 저작권 대부분이 마이클 잭슨에게 있다는 이야기로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한석규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음식을 앞 접시에 골고루 나눠주면, 백 선생이 맞춤한 고명을 뿌리듯 농담을 던졌다.
촬영장이든 스튜디오든 늘 차분하게 자신의 에너지를 잘 모아뒀다가 일할 때 폭발시키는 집약수렴형 한석규, 언제 어디서든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어가는 ‘알 선생’(백 선생은 자칭 타칭 알 파치노로 불리는데 그 알 파치노의 약자)의 만남은 TV드라마 <서울의 달> 이후 10여년 만이었지만 그 공백은 길어 보이지 않았다. 정권 ‘수술’에 나선 남자와 그의 오른팔 역으로 호흡을 나눠서였을까. 식사시간은 한없이 늘어났고 인터뷰는 자정이 되어서야 끝낼 수 있었다.
백 | 윤 | 식
유연한 카리스마, 화양연화를 맞다
“원 보틀!” 술이 들어가면, ‘한잔 더’를 외치는 여느 사람들과 달리 백윤식은 통이 크게도 ‘한병 더’를 외친다. 그날도 그랬고, 그게 시작이었다. 임상수 감독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필’이 통한 백윤식은 영화보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대낮에 시작된 술자리는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이 임상수 감독에게 연출 수업을 받은 후배라는 것도, 그날 새벽 무렵 호출된 최 감독의 얘길 듣고서야 알았다. 임상수 감독이 우수한 인재이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믿음은 들었지만, 10·26을 재조명한 영화에 출연해주십사 하는 부탁에는 선뜻 응할 수가 없었다. “팍 접근할 수가 없는 입장이었죠. 다큐 개념의 영화에서 배우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그런데 이 민감한 사안을, 작품적으로 잘 소화했더라고요. 어디에도 치우침 없이 객관적인 시야로, 간결하게.” 그래서 응했다. 언제나처럼, 그를 움직이게 만든 건 ‘책’이었다. <서울의 달> 이후 10년 만에 재회한 한석규가 “선생님, 안아도 되겠습니까?” 하면서 환대할 때, 좋은 예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세상은 변하는 거야. 인생도, 사람도, 다 변해. 오늘, 변한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 ‘그날’의 거사를 주도하는 김 부장은 시나리오에 ‘외골수 마초 사무라이’라고 표현돼 있다. <지구를 지켜라!> <범죄의 재구성>의 캐릭터가 워낙 독특하고 강렬했기 때문에 그가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증이 인다. 예고편에 비친 그는 비장하기도 하지만 코믹하기도 했다. “담백하고, 진솔하고, 담담하게 그렸어요. 관직의 굴레에 있는 인간 군상의 원초적인 심리들을 보여주려 했다고 할까. 그렇게 기본을 잡고 가면, 디테일은 지남철에 쇠 붙어가듯 스르륵 딸려와요.”
12시간 동안 긴박하게 사건이 전개되지만, 김 부장의 ‘동기’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배우로서 답답하기도 했을 터. “오리무중이죠. 감독한테 물어보니까,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이 영화를 찍는 거 아닙니까, 그러더라고요.” 실제 인물과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지만, 다큐멘터리나 전기영화가 아닌 만큼, 하나의 ‘창작품’으로 봐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동시대 사람으로서, 겸허하게 임했어요. 그때 그 일로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가신 분들께 명복을 빌고, 상처받으신 분들 앞에 살포시 옷깃을 여미는 마음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백윤식은 벌써 몇편의 영화에서 ‘구애’를 받고 있다. 두어편, 마음에 둔 영화가 있다는데, 전에 했던 것과는 다른 색깔의 작품들이다. 그처럼, 뒤늦은 백윤식의 등장은, 장르와 캐릭터의 다양화를 꿈꾸는 젊은 감독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사건으로 보인다. 지난 해 <범죄의 재구성>으로, <담백하라>의 뮤직비디오로, 포털사이트와 화장품 CF로 ‘젊은 오빠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는, <씨네21> 송년호에서 기자와 평자들이 선정한 ‘올해의 배우’로 뽑히기도 했다. 문근영과 나란히 표지를 장식한 지 한달이 채 못 돼 이번엔 한석규와 짝을 이뤄 표지 촬영을 하고 있다. 기분이 어떠세요? 라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촬영 짬짬이 흥얼거리는 콧노래, 휴대폰 벨소리로 울려퍼지는 <담백하라>가 날아갈 듯 경쾌했으니까.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날 원하는 분들과 일일이 한배를 못 타드리는 게, 미안할 뿐이죠.”
그야말로, 백윤식의 화려한 시절. 지난 연말 SBS 방송연기대상 2부 오프닝 무대에서 그는 드라마 여주인공들을 ‘나의 옛사랑들’이라고 소개하며, 캉캉과 블루스와 람바다 등을 곁들인 뮤지컬 콩트를 선보였다. 그는 그때 ‘옛사랑’이라는 단어가 맘에 들지 않아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바꿔 말했다고 했다. 과거완료가 아닌 현재진행의 사랑, 권위와 다른 차원의 카리스마, 편견이 없는 유연한 관록. 그에게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한 | 석 | 규
차분한 남자, 오늘, 폭발한다
조용히 뒷짐지고 가사를 음미하듯 부르는 장발 청년(1984년 강변가요제)의 모습이 겹쳐서 보였다. 스튜디오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앉아 눈을 감은 채 <호텔 캘리포니아>를 따라 흥얼거리는 모습이 그런데 오히려 더 젊어 보인다. 짧은 머리칼 때문일까. 밥은 늘 먹던 데서, 머리도 늘 깎던 데서, 사진도 늘 찍던 데서 하는 이 배우에게선 늘 한결같은 모습이 보인다(<닥터 봉>부터 함께해왔다는 오형근 사진작가와 함께한다면 인터뷰를 하겠다는 게 그가 내건 조건이었다). 오직 영화만이 매번 다른 듯하다.
한석규의 앞에서는 시간의 격랑도 멈춰 서 있을 것 같다. 술 한잔 하지 않고, 괜한 과잉의 격정을 발하지도 않으며, 항상 늘 일정한 체온으로 있을 것 같은 배우다. 그러나 영화 현장에서 그는 장전된 탄환처럼 언제라도 튕겨나와 과녁을 향해 날아갈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의리나 인맥, 감독의 이름 같은 외부요인이 아니라 오직 시나리오만으로 작품을 고르고, 영화 바깥으로는 자신의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 그런 모습이 이런 집중력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의 얼굴은 어떤 별다른 정보를 보여주지 않는, 그저 이정표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정상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다가 잠시 휘청거린 흔적조차 읽어내기 힘들다.
스포츠 가방에 신과 옷을 챙겨넣고 스튜디오를 내려 서는 모습은 혼자 운동을 마치고 가는 복싱선수의 이미지였다. 함께 타고 가자는 그의 말에, 매니저도 없이 혼자 운전하고 다닌다는 그의 애마인 SM5에 올랐다. “운전하기 힘들면 제작부 막내에게 부탁해서 함께 묻어가도 되고, 이제 극장에서 영화 혼자 보는 요령도 생겼으니까 혼자 하는 게 힘들지는 않다.” 가는 식당이 첫째와 막내 돌잔치를 한 데라는 것, 자식 건강한 것만큼 축복이 없다는 말도 두런두런 들려주었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 박 부장의 오른팔 주 과장으로 나온 그에게선 직전의 <주홍글씨>의 형사 기훈보다 오히려 <초록물고기>의 막동이와 <NO.3>의 태주 얼굴이 겹친다. 바싹 깎은 머리와 옅게 기른 턱수염, 신경질적으로 껍는 껌, 금연으로 인한 신경질적인 표정이 그렇다. 한석규는 임상수 감독이 “막 해줬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했다며 유감없이 그 고마운 ‘막’을 즐겼다고 했다. 각하를 할아버지로 말한다든가, 헌병을 화이바로 표현한 현장 애드리브도 감독은 그대로 받아줬다고 한다. “영화에서 껌을 씹는다는 게 튈 수도 있는 톤인데…. 수염도 기르고 흰머리도 군데군데 넣었으면 했는데, 그렇게 염색하기는 힘들다고 해서 수염만 길렀다.”
그러나 사실 임상수 감독과 한석규는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 한석규는 ‘둘 모두 서울 깍쟁이’ 같은 면이 있고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 둘 사이를 잇는 고리라고 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소설 <남부군>을 보면서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로, 줄곧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영화를 택했다. 임 감독의 시선도 또렷했고.”
이 영화의 예민한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만든 영화는 아니다. 사실을 기초로 해서 만들었지만 실제 그분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한번 비틀어 접근하는 거다. 10·26은 현대사의 전환점이고 언제든 다루어질 수 있는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때 도저히 이해가 안 갈 정도로 폭력적인 담임 선생님이 계셨다. 원산폭격부터, 땡볕에 그냥 서 있게 하는 체벌도 줬고…. 그런 게 가능했던 게 바로 그 시대였기 때문 아닐까. 생각하면 화나고 슬프다.”
주 과장에 대해서는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지만 주 과장의 모델이 실제 아는 사람의 아버지라 부담도 느꼈다고 했다. “흉을 보자는 게 아니다. 도대체 왜 그날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묻는 거지.” 그는 근 1년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는 주 과장의 심정을 대신 헤아렸다고 했다. 머리를 희게 염색하고자 했던 뜻도, 머리가 셀 정도로 그렇게 회의가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에서였다.
그는 메뉴에도 없는 브루체타를 주문했다. 토마토 소스를 재료로 새콤하고 얼큰하게 만든 해산물 요리라고 한다. 일일이 다른 이들에게 서빙을 한 뒤 남김없이 비우는 모습이 익숙해 보이기도 했고 낯설기도 했다. 메뉴에도 없는 요리를 찾아내서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유쾌함과 촬영장이나 기자회견장에서도 묵묵히 늘 자기 분위기를 지키던 과묵함이 오버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