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소개하거나 비평하는 글에는 “불편하다”는 말이 자주 쓰인다. 이 말이 적극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나오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홍상수 영화를 예로 든다면 ‘불편하다’는 건 이런 뜻 아닐까. 어딘가 불쾌한데 그걸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것. 영화 속 인물이 하는 짓들이 치졸해서 불쾌한데도 ‘뭐 이런 거지같은 영화가 다 있어’하며 극장을 박차고 나오지 못하게 하는 건 뭘까.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자기 안의 한 모습을 거기서 봤기 때문일 수 있다. 불쾌하게 느끼는 자기를 의심하게 만드는 불쾌감. 그건 반성의 기제를 작동시키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불쾌하다’는 말보다 가치중립적으로 다가오는 ‘불편하다’는 말을 쓰는 것같다.
나는 불편한 영화를 만나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생각이 많이 바뀐 경험이 있다. 90년대 중반에 러시아 파벨 룽귄 감독의 <택시 블루스>라는 영화를 비디오로 보는 동안 내가 발가벗겨지는 것같은 모멸감을 느꼈다. 소련이 해체된 뒤 모스크바에서 공동체의 도덕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 찬 택시 운전사의 택시에, 자유분방하고 남에게 무책임하기까지 한 유럽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탄다. 연주자가 택시비를 떼먹고 도망가려다가 운전사에게 붙잡힌다. 운전사는 연주자에게 공동체의 도덕을 폭력적으로 가르치려 하고, 그럴 수록 연주자는 뻔뻔하고 이중적으로 돼간다. 내 안에 그 둘이 다 있었지만, 힘들었던 건 내 속에 더 깊이 숨어있던 운전사의 파시즘이 들켰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내가 진짜 변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최소한 생각은 바뀌었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는 보는 동안 말 그대로 정말 불쾌했다. 말도 안 되는 영화라면 무시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불쾌할까. 내 안에 좋아하는 여자를 납치해다가 다른 남자에게 몸 팔게 하고 싶은 욕구가 있나? 설마…. 여하튼 석연치 않은 게 남았고 그건 숙제로 남겨두기로 했다. 몇해 전 김지운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했던 “매순간의 ‘이게 뭘까’ 하는 느낌들을 잊지 않고 생각해요”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같다. ‘왜 불쾌해 했을까’를 곰곰히 생각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창작물이야말로 좋은 창작물 아닐까.
말 많은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에 대한 몇몇 비평엔 10·26 당시 권부의 인물들에 대한 이 영화의 묘사를 두고 ‘모욕’, ‘모멸감’ 같은 말들이 나온다. 대신 이들 비평엔 ‘불편하다’는 표현이 없다. 반성할 거리는 주지 않은 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기만한 창작물로 본 걸까. 나는 이 영화가 불편하거나 모욕적이라기보다 다른 맥락에서 장단점이 읽혔지만, 그런 표현들이 나오는 걸 보면 <그때 그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문제작임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