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법원이 삭제하라는 결정을 내린 부분은 영화 앞의 도입부와 마지막 장면으로, 영화를 위해 새로 찍지 않고 기존의 자료화면을 사용한 부분이다. 도입부는 1979년말 당시에 벌어진 부마항쟁, 와이에이치(YH)무역 여자노동자 농성사건 등을 찍은 사진을 스틸로 연결한다. 거기에 이 영화에 출연했던 가수 김윤아씨가 내레이션을 넣는다.
“박정희, 그가 군사쿠데타 이후 18년째 정권을 유지해 오던 1979년 가을. 부산과 마산에는 학생과 시민들의 뜻밖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습니다. 폭압적인 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요구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 이를 간단히 진압해 버렸습니다. 질식할 것만 같은 거짓 평온이 흐르고 시민들은 한껏 웅크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뜬금없게도 박정희는 총에 맞았습니다.” 이 내레이션엔 ‘뜻밖의’, ‘뜬금없게도’처럼 전체 문맥에 적확하지 않는 표현들이 담겨 있다. 또 어두운 역사를 말하면서 김윤아씨의 목소리 톤이 밝고 낭랑하다. 이 내레이션은 실제 그때의 상황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니까 10·26 사태의 배경을 간략하게 알려주는 정보제공의 구실을 하는 동시에,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재해석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소격효과를 낳는다.
삭제 결정을 받은 영화의 뒷부분은, 10·26 사태의 가담자들이 이후 어떻게 됐는지를 알려준 뒤에 나타나는 검은 무지화면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장면을 찍은 자료화면까지다. 무지화면에서는 “여기 주님 앞에 인간 박정희가 놓여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조사가 흘러나오고, 이어 장례식 장면에서는 박근혜씨, 최규하 전 총리 이하 당시 각료들의 모습이 보이고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이 우는 장면이 비춰진다. 이 화면은 영상홍보자료원에 사용료를 내고 끌어다 쓴 것이며, 조용한 배경음악을 깔 뿐 아무런 내레이션을 덧붙이지 않고 있다.
이 뒷부분은 시사회 때 영화를 본 사람들로부터 “박근혜씨에 대한 위로다”, “조롱이다”로 반응이 엇갈렸던 부분이기도 하다. 임상수 감독은 한겨레와의 인터뷰(1월28일치)에서 “이렇게 죽은 사람을 두고 이렇게 슬퍼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감독의 의도가 어떻든, 이 자료화면은 앞에서 희비극으로 재현한 10·26 사태의 진풍경과 대비되면서 단순치 않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부분들이 잘려나갈 경우 영화의 맥락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반 관객들은 임상수 감독 이하 스태프와 한석규, 백윤식 이하 배우들이 애써 만든 <그때 그 사람들>과는 다른 <그때 그 사람들>을 볼 수밖에 없게 됐다. 전복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유고의 두산 마카베예프 같은 감독은 영화가 법원 결정으로 잘려나간 부분은 원래 시간만큼 검은 무지화면으로 두고서, ‘거기에 어느 법원의 언제 결정으로 인해 삭제됐다’는 자막을 집어넣었다. <그때 그 사람들>의 제작사인 MK픽처스도 원래 시간만큼 무지화면을 내보내되, 거기에 왜 무지화면을 넣을 수밖에 없게 됐는지 이유를 밝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