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설날 긴 연휴 극장가 나들이
2005-02-04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설설 끓는 장르의 성찬, 살살 녹는 가족과 연인

1월27일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2>가 일찌감치 앞질러 나가고 그 뒤를 <말아톤>이 바짝 따라가면서 시작된 설 극장가 흥행경쟁이 2월3일 개봉영화들이 합세하면서 한층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개봉 영화 가운데 최초로 부분상영금지 판정을 받은 <그때 그사람들>을 비롯해 <클로저>, <우디 앨런의 애니씽 엘스> 등 예전 같으면 코미디나 액션 일색이던 연휴 극장가를 다채롭게 채워줄 영화들이 개봉한다. 극장가의 상차림을 입맛별로 소개한다.

명절 스트레스 한방의 영화

그때 그사람들

<그때 그사람들> (임상수 감독)은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 정작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재미에 대한 이야기는 뒷전이 됐지만 코미디 섞인 ‘액션활극’의 재미도 만만치 않다. 특히 궁정동 안가에서 ‘거사’의 모의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김재규가 궁정동을 떠날 때까지의 긴박감과 카메라의 솜씨좋은 움직임은 장르 영화로서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인다. 짐 캐리의 1인3역 연기가 돋보이는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브래드 실버링 감독)은 누군가가 끼어들어 아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동화의 일반적 구조를 벗어난 독특한 모험동화다. 갑자기 고아가 된 세남매의 보호자를 자청한 사람은 노골적으로 이들을 위협하고 아이들이 구조를 요청한 어른들은 냉담하기 이를데 없다. 외롭게 싸우는 아이들의 당찬 모습과 함께 팀 버튼의 세계로 착각할 만큼 우울하면서도 신비로운 화면이 매력적인 영화다. <공공의 적2>(강우석 감독)는 정경유착, 사학재단 비리 등 전편보다 구조적인 사회악을 주제로 내세우면서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더 단순화시켜 명쾌한 이야기로 달려나간다. 경찰에서 검사가 된 강철중은 옷차림도 하는 행동도 전편보다 훨씬 단정해졌지만 ‘꼴통’기질만은 여전하다.

피닉스

눈을 시원하게 하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즐기고 싶다면 고비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재난영화 <피닉스>(존 무어 감독)를 권한다. 몽골을 출발한 화물 수송기가 사막 한 가운데에서 모래폭풍을 만나 추락하는 초반부 장면은 잔인할만큼 생생하고 긴박감이 넘친다. 이 짜릿한 장면이 지나면 사고에서 살아남은 10명의 승객들이 더위와 모래바람, 베두인 등 생명을 위협하는 또 다른 적들과 사투를 벌이며 승리하는 지옥 탈출기가 이어진다. 사이보그처럼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얼굴의 키에누 리브스가 ‘생뚱맞게도’ 괴신과 싸우는 퇴마사로 변신한다. <콘스탄틴>(감독 프랜시스 로렌스)에서 그는 젊은 여성의 의심스러운 자살사건에 지옥의 메시지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신과 악마, 둘 다를 상대로 불가능해 보이는 전쟁을 시작한다. <콘스탄틴>의 매력은 주인공보다 조연들의 개성에 있다. 틸다 스윈튼인 연기한 천사 가브리엘은 우아하면서도 냉혹하고 피터 스토메어가 연기한 악마는 쿨하다.

두시간의 완벽한 휴식, 또는 따뜻한 위로가 돼줄 영화

콘스탄틴

스무살의 자폐청년이 달리기를 통해 굳게 잠겨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과 소통하게 되는 이야기인 <말아톤>(정윤철 감독)은 가족이 함께 볼만한 영화로 모범답안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한 인간승리 드라마가 아니라 장애 아이를 가진 엄마의 고통과 헌신적인 사랑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으며 어른인 듯 아이같은 주인공 조승우의 얼굴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클로저>(마이크 니콜스 감독)는 연애를 해봤다면 누구나 한번쯤 고통받았고 또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기도 했던 주제인 의심과 질투에 관한 입체 보고서같은 영화다. 달콤한 로맨스 영화는 아니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도 쉽지는 않지만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나탈리 포트만, 클라이브 오언 등 매력적인 네 배우가 뿜어내는 향취만으로도 흠뻑 취할 수 있다.

B형 남자친구

그러나 지금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B형 남자친구>(최석원 감독)를 고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혈액형에 대한 선입견을 캐릭터에 대입시켜 제멋대로에 이기적인 B형 남자와 소심한 A형 여자의 만남을 그린 로맨틱코미디다. <우디 앨런의 애니씽 엘스>는 안풀리는 연애에, 인생에 지친 관객에게 명쾌한 조언을 던져준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여자친구로부터 계속 상처입는 젊은 남자 작가와 그에게 인생상담을 해주는 늙은 남자 작가의 수다같은 대화가 영화 내내 이어진다. 신경증적이면서도 세련된 유머감각은 여전하다. 벌써 개봉한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검색순위의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미야자키 하야오)을 놓친 관객이라면 마지막 기회인 연휴를 놓치지 말 일이다.

놀면서 불어난 뱃살은 줄이고 굳은 머리와 감성은 벼려줄 영화

클로저

집 근처 멀티플렉스를 벗어나 조금만 발품을 팔면 단관이나 2,3관에서만 고개를 빠꿈이 내밀고 있는 좋은 영화들을 찾을 수 있다. 하이퍼텍나다에서는 <우디 앨런의 애니씽 엘스>와 함께 고다르, 베르톨루치 등 거장 감독 7인의 옴니버스 영화 <텐 미니츠 첼로>를 상영한다. 광화문 씨네큐브는 질풍노도처럼 다가왔으나 허망하게 스러지는 사랑의 여운을 감각적으로 촬영한 덴마크 젊은 감독 크리스토퍼 부에의 <리컨스트럭션>을 상영한다. 씨어터 2.0에서는 제주도 앞 바다처럼 청량한 로맨스 영화 <깃>(송일곤 감독)을 상영한다. 강변CGV등에서 상영하고 있는 <베니티 페어>(미라 네어 감독)는 신분 상승의 욕망에 불타는 한 여인의 상승과 하강을 시대극의 우아함으로 포장한 영화로 깜찍발랄한 이미지였던 리즈 위더스푼의 연기변신이 흥미롭다. 뤼미에르 극장과 시네마 오즈 등에서 상영하고 있는 <룩 앳 미>(아녜스 자우이 감독)는 지적인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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