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릴레이] <그때 그사람들>, 허문영 영화평론가
2005-02-15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예술심리학 대가께서 잘라버린 3분 50초. 후광없는 근대풍속화속 백윤식은 위대했다
△ 영화 그때 그사람들중 삭제 결정이 내려진 오프닝 부분(위쪽)과 마지막부분. MK픽쳐스 제공

이 지면에의 마지막 기고임을 핑계삼아 <그때 그사람들>에 관한 소감 몇 가지로 평을 대신하려 한다. 시사회 직후에 씨네21에 짧은 평을 썼고, 이 원고를 위해 극장에서 영화를 한 번 더 봤다. 예술심리학의 대가를 자처한 법원의 판결에 따라 영화의 앞과 뒤에 배치된 3분50초 분량의 필름이 검정 처리된 극장 상영본을 보고 나서, 나는 이 판결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 나쁠 뿐 아니라 이 영화의 온전한 소통에도 나쁜 짓을 했다고 믿게 됐다.

검정 처리된 장면은 도입부의 부마항쟁 기록필름(김윤아의 기묘한 내레이션도 함께 사라졌다)과 엔딩 크레딧의 배경화면인 박정희 장례식 기록필름이다. 전자에선 학생과 시민들이 독재자 박정희에 맞서 울부짖고 있고, 후자에선 가족과 시민들이 ‘국부’ 박정희를 위해 울부짖고 있다. 영화의 본체와 내적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기록필름들은 다시 생각해보니, 독한 질문이었다. 당신은 혹은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속했는가, 혹은 속하는가.

이 질문을 경유함으로써, <그때 그사람들>의 영화적 허구는 더욱 쓰라린 해석이 되며 더 독한 질문이 된다. 박정희를 증오한 혹은 박정희를 흠모한 당신은, 그때 그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처럼 작고 초라한 모습이라 해도 그 증오와 흠모를 지탱하겠는가. 비유컨대 내 머리 속의 10·26은 중세의 성화였으나, <그때 그사람들>은 후광을 지운 근대의 풍속화다. 삭제된 기록필름들은 이 풍속화에 이르는 징검다리이며, 그것은 여전히 이 영화에 필요하다.

두 번째 소감은 윤여정의 결말부 내레이션에 관한 것이다. 극 속에서 그는 딸의 몸을 팔아 부와 권세를 챙기려는 여인이다. 우리는 이 여인의 내레이션으로 사건의 후일담을 듣는다. 이야기를 굽어보고 정리하는 결말의 내레이션마저 이 추악한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건 지독한 야유다. 그 내레이션은 "넌 별 수 있어?"라고 야유한다.

이 야유마저 지지할 수는 없다. 그 졸렬하고 가련한 자들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고, 내가 모르는 수많은 한국인의 삶이 구겨졌고 한국 현대사가 뒤흔들렸다 해도, 우리 생이 이렇게까지 비루해서는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야유를 대면하지 않고 혹은 견디지 않고 어떤 숭고함이나 연민에 이르려는 노력이 거짓이라는 것도 알겠다. 그래서 나는 <그때 그사람들>의 야유를 견디려고 애쓴다.

세 번째는 백윤식에 관한 것이다. 그를 찬미하고픈 마음을 숨기기 힘들다. 백윤식의 연기는 믿어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가 연기를 잘한다는 걸 느낄 틈조차 없다. 그가 아니었으면 한석규는 이 영화로 생애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백윤식이 너무 거대했다.

그는 걸출한 초상화가 그렇듯 찰나의 표정만으로 육중한 서사를 동반한다. 비열함과 단호함, 좌절과 망상, 피로와 불안, 평정과 흥분이 뒤섞인 그 표정을 글로 옮겨내기란 불가능하다. 그가 거사 직전 심복에게 “같이 가자”라고 말할 때, 혹은 거사 후 “다 잘 됐어”라고 말할 때, 그리고 취조실에서 보안사 직원들에게 무기력하게 두들겨 맞을 때, 그의 표정과 몸짓과 말투가 빚어내는 불가사의한 힘은 문자 언어로 영화를 인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프고도 달콤하게 실감시킨다.

한국영화사에 불구의 마초 캐릭터를 논하는 장이 있다면 <그때 그사람들>의 백윤식은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런 배우가 한국영화에 벼락같이 등장했다는 사실부터 믿기 힘든 일이다. 백윤식은 위대한 배우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