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군 투덜양]
[투덜군 투덜양] 투덜군 외전 - 어느 기자에게 바치는 찬가
2005-02-18
글 :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당신의 염력관람 신공에 무릎을 꿇소

포스터의 카피와 제목의 느낌만으로는 <포레스트 검프>의 짝퉁버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내게 했던 <말아톤>은, 소문대로 신인감독답지 않은 말끔한 연출과 조승우의 연기가 훌륭한, 좋은 작품이었다. 물론 김미숙이 연기했던 ‘엄마’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단히 상처받은 영혼’으로서의 과도한 일관성을 보임으로써, 보는 이들을 상당히 진빠지게 만든 측면이 없진 않았다만, 그래도 ‘초원’이 쇼핑몰을 지나 수영장을 거쳐 지하철을 뚫고 마침내 ‘세렝게티 초원’에서 얼룩말과 함께 달리던 그 가슴 뛰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그 정도는 충분히 보상되고 남음이 있었더랬다.

하나 나름대로 바람직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던 이 영화 <말아톤>을 보는 와중에서도 필자의 투덜모드는 어김없이 작동되고 있었으니, 그 원동력은 다름 아닌 이 영화를 필자와 본의 아니게 동반관람하게 된 옆좌석의 기자분이었던 것이다.

뭐, 물론 필자가, 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 날리기 사이를 쉴새없이 넘나들며 정보통신 입국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불사르던 이 기자분의 모습 정도를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필자를 진정코 놀라게 했던 것은 이 기자분께서, 온 신경을 집중하여 문자 메시지를 날리고 난 뒤, 0.5초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곧바로 스크린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영화 내용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웃음, 폭소, 감탄 등등)을 날리는 ‘염력관람 신공’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지난 ‘투덜군’에서도 언급했듯, 원래 ‘멀티’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고 잘되지도 않는 필자로서는 이런 종류의 화려한 멀티태스킹을 맞닥뜨리면 그저 경탄의 염을 보내는 것 이외에는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한데 필자의 그 경탄은 너무나 경솔하고도 때이른 것이었으니, 이분의 멀티태스킹 염력관람 신공은 <말아톤>이 본격적인 눈물 압출 단계에 접어든 중반 이후에서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끝없이 계속되는 그 정보통신 행각의 와중에도 결코 틈새를 놓치지 않은 채 스크린에서 명멸하는 <말아톤>의 눈물 압출 장면들을, 그 절정의 염력관람 신공을 통해 낱낱이 흡수해내어, 그것을 곧바로 감동의 눈물로 연결해내던 그 화려한 멀티태스킹 동작이 뿜어내던 강렬한 흡인력은, 필자의 주의를 스크린으로부터 옆좌석으로 송두리째 빼앗아가기에 충분했더랬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장엄한 절정…. 이 기자분께서 눈물과 콧물이 한데 어우러진 음성으로 통화를 계속 이어나가며 ‘나 어떡해’ 또는 ‘어쩌면 좋아’ 또는 ‘아, 미치겠다’ 등의 조흥구를 간간이 날림과 동시에, 한손으로는 쉴새없이 손부채를 부쳐내며 그 뜨거운 멀티태스킹 행각의 열기를 식히던 바로 그 대목에서, 필자는 그만 무릎을 꿇어 마지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아, 그분의 장엄한 극장 내 정보통신 행각… 그것은, 드넓은 세렝게티 초원의 푸르름을 능히 삼켜버리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거대한 것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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