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뼈>(28일 개봉)의 최양일(56)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개 달리다>에 이어 한국에서 두번째 개봉이다. 그의 출세작인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의 원작을 썼던 양석일의 소설을 영화화한 <피와 뼈>는 최감독의 아버지 세대인 재일한국인 1세의 삶을 강렬한 톤으로 그려 지난해 일본의 주요 영화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15일 아침에 만난 최감독은 “영화를 본 박찬욱 감독이 피해자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있어 좋았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고 말했다.
목 졸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 일본도 한국도 참 어려운 시대
박 감독의 지적대로 <피와 뼈>의 주인공 김준평(기타노 다케시)은 희생이나 절망, 고난같은 관습적인 재일한국인의 이미지가 없다. 돈과 섹스, 그리고 핏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그는 폭군이자 악랄한 착취자이다. “모든 죄악을 모아놓으면 이런 인간이 나오겠다 싶을 만한 ‘괴물’이지만 내적 맥락을 가지고 인생을 역동적으로 사는 인물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나는 그가 싫지 않다”고 말한 최 감독은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엄정하게 파악하는 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지만 그것은 일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일한국인 1세들이 처한 희망과 절망 속에서도 다양한 인간관계들이 존재했고 정치나 역사를 초월한 삶의 형태들과 각기 다른 생의 욕망들이 있었다”면서 “단순하게 이데올로기적 이분법으로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건 영화적으로 그다지 매력을 못느끼겠다”고 고백했다.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가는 배 안 풍경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에서 김준평과 이웃들은 모두 제주도 출신 한국인들이다. 이는 원작의 내용이기도 하지만 최감독은 오래전부터 4·3 항쟁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등 제주도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그는 “영화에서 제주도식 김치를 재현하기 위해서만 1천만원 정도를 쏟아넣었다”고 말하면서 “제주도처럼 육지와 떨어진 공간은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유달리 외압을 많이 받았으며 그로 인한 변화과정에서 인간관계에 틈이 벌어지고 그 틈에서 독특한 사랑과 미움의 이야기들이 싹을 틔운다는 게 흥미롭다”고 말했다. 초기작부터 중심의 질서에서 낙오된 사람들에 대해 가져온 친숙함이 공간의 비주류성에 대한 천착으로 확장된 셈이다. 일본에서 타자성이 가장 짙은 지역인 오키나와 섬은 그의 영화에서 주요 무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를 준비하는 6년동안 오사카 지역의 제주 출신 재일한국인들을 인터뷰했다는 그는 “그들이 고향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왔다는 느낌을 받아서 취재가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영화감독협회장으로 일하면서 표현의 자유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온 그는 “지금 일본 영화계는 사상을 규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권력자들의 억압과 전쟁중”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최근 한국 법원의 <그때 그사람들>의 부분삭제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한국이나 일본이나 참 어려운 시대”라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