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영화를 보면서 글로벌한 상념에 젖었다. <그때 그 사람들>의 ‘지워진’ 장례식 다큐멘터리 장면이었다. 착한 백성들이 통곡하고 있었다. <씨네21> 편집장이었던 조선희 선배는 이 장면을 보면서 “평양 거리를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10·26사건은 “우리 시대의 사건”임에도.
조 선배가 평양 거리를 떠올렸다면, 나는 아프리카, 동남아의 오늘을 떠올렸다. 세상에는 ‘아직도 이런 일들이!’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제3세계 인민들을 위해 잠시 값싼 동정의 시간을 가졌다. 극중에서 ‘할아버지’가 떠벌리는 대로, 아직도 민주주의 하는 나라, 지구상에 많지는 않다.
그는 좋은 독재자였나?
다큐멘터리가 끝나가는데 문득 영문 모를 슬픔이 밀려들었다. 슬픔의 정체가 모호했다. 영문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을 위한 슬픔? 나,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김재규를 위한 동정인지, 백성들이 짠해서인지, 임상수가 부러워서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울면 따라 우는 습관이 발동한 건가? 하여튼 뭔가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 꿈틀했고, 울컥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박통을 위한 슬픔이냐? 자문했다. 솔직히 나, 박정희 향수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론 블랑카 식으로 말하면 “박정희 나빠요~”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좀 가엽기도 했다. 물론 이 나라의 절반이 박통을 존경하는 형편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너무 나쁘다고만 말하는 것 같았다. ‘반발심으로다가’ 내 안의 박정희 재평가, 박통 다시 보기를 했다. 물론 계기도 있었다. 동남아로 환락 여행을 다니다보니 박통이 다시 보였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우리도 저렇게! 가슴이 철렁했다. 어쨌든 한국이 아주 예외적으로 경제개발에 성공한 제3세계 국가인 건 사실이다. 성공의 이유가 궁금했고, ‘자동빵’으로 박정희가 떠올랐다. 그것은 부정하려고 애써왔던 ‘한국적’ 상식으로의 후퇴였다.
알 만한 사람을 만나면 쪽팔림을 무릎쓰고 물어보았다. 어쨌든 박정희가 경제개발을 이끈 것은 사실 아니냐고. 대부분 ‘개무시’했지만, 일부는 ‘썰’도 풀어놓았다. 내가 혹한 ‘썰’은 이랬다. 박정희가 독재자로는 드물게 부정축재를 덜했다. 한때 우리보다 잘살았던 필리핀을 생각해봐라. 마르코스의 부정부패가 필리핀을 망쳐놓았다. 오야붕이 100을 가지면, 작은 오야붕들에게도 50을 나누어주어야 한다. 작은 오야붕은 꼬붕들에게 떡고물을 주고…. 그리하여 부패는 ‘구조’가 된다. 그리고 토지개혁이 어쩌고 저쩌고…. 고개 끄덕끄덕…. 나, 단순무식한 사고로 박정희를 ‘좋은 독재자’일지 모른다고 재정의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좋은 독재자가 어디 있는가? 더구나 인혁당의 피를, 노동자의 한을, 학생들의 울분을 모르는 바 아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자니 말을 하면서도 꺼림칙하다. 하여튼 이것은 일종의 커밍아웃인 셈이다.
박통에 대한 미련을 접자
이렇게 나름대로 그분에게 동정을 품고 영화를 봤다. <그때 그 사람들>은 조폭 ‘다카키 마사오’파의 ‘개 같은 날의 하루’를 보여준다. 늙은 오야붕은 판단이 흐려져 아부하는 놈을 편애하고, 직언하는 애들을 멀리한다. 중간보스, 김 부장은 질투에 불타서인지, 정의감에 사로잡혀서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뜬금없게도’ 오야붕을 죽인다. 김 부장의 ‘차칸’ 꼬붕들은 까라고 하면 까다가 재수없게 골로 간다. 조폭에 빌붙어 살던 꼰대들은 국무회의라는 이름의 코미디를 연출한다. 그리고 게임 셋. “왜 쏘았지? 총! 왜 찔렀지? 총!” <광주 출정가>의 한 구절이 떠오르지만 해답은 없다. “싼티 나”는 오빠들이 행태가 졸라 웃겼다. 웃음은 동정심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잊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렇지, 그 시절의 국가권력이란 저처럼 ‘개판’이었던 게지. 하여튼 나처럼 머리 나쁜 애들은 눈으로 보여줘야 한다니까. 반성이 확 밀려왔다. 상기하자 박정희! 잊지 말자 유신독재!
생각해보니, 1979년 10월26일 벌어진 두서없는 소동극은 주먹구구식 경제개발의 압축판이었다. 그들의 ‘거사’는 도모되지 않았다. 그저 사건이 발생한다. 김 부장은 10월26일 느닷없이 “빨리빨리”를 외치고, 아랫것들은 허둥지둥 따라간다. 박통이 “빨리빨리”를 외치고 국민들이 허둥지둥 따라간 경제개발을 닮았다. 김 부장의 할아버지에 대한 애증은 대한민국의 박정희에 대한 분열과 겹친다. 김 부장은 그분에게 입냄새를 풍기는 것조차 불경한 일로 여기다가 몇시간 뒤 그분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는다. 세상은 그토록 부조리하고, 인간은 이렇게 나약하다. 그것은 인간 박정희만의 문제도 아니고, 그 시절만의 아픔도 아니다. 지금 여기 나와 우리의 비극이기도 하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그때 그 사람들>은 유치한 소동극을 통해 이제 한국인도 미련을 접고 박통의 유령을 쏘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는 지워진 다큐멘터리가 끝날 무렵 나는 애원하고 있었다. ‘이제는 제발 저승으로 가주세요, 할아버지. 마니 무따 아입니까.’
조금 긴 추신. 마침내 사법독재 시대가 열렸다. 이제 대통령을 갈아버릴지, 수도를 옮겨야 할지는 물론 영화를 보아야 할지도 법관 나으리들에게 물어야 한다. 이제 ‘쇼부’(勝負)는 그분들이 친다. 그런데 지엄하신 그분들이 사실은 선무당이라고 한다. 판사님들이 <그때 그 사람들> 가처분 신청 심리를 하다가 지엄하신 결정이 나오기도 전에 시사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단다. 얼마나 불쾌하셨겠는가? 그래도 지엄하신 판사님께서는 속심을 숨기고 물으셨다. “시사회를 가처분 결정 뒤로 연기하면 안 됩니까?” 그러나 영화사는 시사회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음… 그러니까 이건 상식의 문제다. 영화 개봉 한두주 전에 시사회가 열리는 관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하시는 분들이 그런 상식도 없었던 것이다. 시사회도 모르는 판사들에게 판단을 맡긴다? 하긴 행정의 행자도 모르는 분들이 행정수도 이전을 결정하는 판에 영화 문외한이 영화 좀 자른다고 누가 뭐라나. 다 법이 보장하는 일인데. 그래도 선무당이 사람 잡는, 아니 영화 망치는 꼴은 보기 흉하다.
작금의 사태에 대한 나의 교훈은 이러하다. 역시 무지랭이의 비밀투표가 그분들의 고시패스 보다는 백배 낫다. 그래도 선거로 뽑힌 놈들은 무지렁이 눈치라도 보고, 아는 척하려고 똥폼이라도 잡는다. 하지만 그분들은 눈치와 똥폼을 패스해버린다. 역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위험하다. 바야흐로 21세기 사법독재의 시대다. 이제 한국은 판사가 접수한다! 참, 가처분 신청은 엽색행각, 일본어 등에 대해 했는데, 판결은 ‘뜬금없게도’ 다큐멘터리 삭제로 나왔다. 한국 영화사의 흐름을 바꾼 ‘뜻밖의’ 블랙코미디를 1·31사건이라고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