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감독의 강력한 조력자, <그때 그사람들> 촬영감독 김우형
2005-02-25
글 : 오정연
사진 : 정진환

<그때 그 사람들>의 화면은 영화의 ‘쿨’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매우 ‘핫’하다. 영화 외부에서 진행되는 각종 정치적, 법적 논쟁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촬영장에서 스탭들이 주고받은 시너지 효과에서 비롯된 것인데, 영화 속 모든 요소는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위해 정교하게 계획된 흔적이 역력하다. 그 유기적인 치밀함의 중심에 촬영감독 김우형이 있다.

런던국제영화학교에서 촬영을 공부한 뒤, <나쁜 영화>의 부분 촬영으로 상업영화에 첫발을 디딘 그는 촬영부 생활 없이 <거짓말>을 통해 촬영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까지 장선우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그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시나리오와 연출자의 의견. 그럼에도 한번 마음을 준 감독의 경우는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도 촬영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 내내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애썼던 김우형 감독은 다소 느린 말투의 소유자. 진위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예전에 좋아했던 여자가 자신의 말을 듣다가 식당에서 잠들어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 말투로 자신의 취향보다는 감독의 왠지 모를 느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지닌 촬영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칭찬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고도 떨쳐버릴 수 없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김우형 감독은, 자신이 잘한 점보다는 부족하고 아쉬운 점을 먼저 지적한다. 그러나 그의 그런 면모를 소극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그는 누구보다도 엄격한 태도로 촬영에 임했고, 정확한 태도로 사소한 촬영기법 하나하나를 언급한다. 수려한 영상, 화려한 테크닉보다는 이야기와 연출의도를 중요시하면서 고집스럽게 자신의 완벽주의를 실천해온 그는, 현장에서 자신의 영역을 한없이 축소시킴으로써 가장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특한 촬영감독이다. 그와 작업하기 위해 감독들끼리 경쟁을 한다는 소문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인터뷰를 극구 사양해왔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잘못한 게 너무 많이 보인다. 부끄럽다기보다는 우울하다. 특별히 잘못된 장면이 있다는 게 아니라, 처음 생각했던 것과 결과물이 전반적으로 너무 다르다는 게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산후우울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제일 큰 실수는 내가 이 시나리오에 너무 흥분했었다는 것 아닐까. 박정희가 총에 맞는다는 사실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웃음)

-일반적으로 촬영감독이 완성된 영화를 보고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 중에는, 촬영할 때 계획했던 것과 최종 편집이 다를 때 오는 불만도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이야기했던 컷 포인트가 약간만 달라져도, 사전에 그런 것들을 정교하게 계산했던 촬영자에게는 심한 차이처럼 느껴지니까. 이번에도 그런 이유로 남몰래 삐친 건 아닌가.

=어떤 영화든 그런 게 전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임상수 감독은 그런 게 덜한 편이다.

-촬영자 개인의 평가와 별개로, <그때 그 사람들>은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긴밀하게 연결된 매우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왠지 그 말은 나만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아니었다는 말로 들리는데. (웃음) 나도 이민복 미술감독에게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작업기간 내내 그에게 많이 물어보고 함께 의논했다.

연출자의 의도에 충실하기

-그 시대를 다룬 영화에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미술적인 클리셰가 최대한 배제돼 있다. 복고풍의 소품, 의상도 없고, 하다못해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 하나도 없는. 기계적인 리얼리티보다는 상상력을 중시했달까. 촬영도 비슷한 컨셉이 있었을 것 같다.

=미술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제일 상징적인 데가 박정희 집무실인데 그 방이 진짜 그때 그랬냐 안 그랬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그가 가졌던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리얼리티에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거대한 이야기를 효과적인 비주얼로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촬영도 마찬가지. 처음에 전체 컨셉을 정할 때부터 이게 옛날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몇 십년 지난 일을 이제야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것 자체가 세상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냥 지금 벌어지는 일을, 세련되게 찍는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때 그 사람들>은 특별히 새로운 시도나 기술의 도입이 있었던 영화는 아니다. 굳이 컨셉이라고 말하자면, 주된 장면들을 컷의 편집에 의존하지 않고 달리나 트래킹, 줌과 크레인 등을 이용해서 한번에 연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연기를 끊지 않고 길게 찍는데, 픽스로 찍힌 롱테이크가 아니라 그런 무빙을 주는 방식은 요즘 영화의 일종의 경향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편집실에서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지만, 현장에서 감독이 OK를 냈을 때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컨셉이었던 건 아니다. 새로운 장비나 렌즈를 써서 현대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다면 과거에 관한 영화라는 이유로 피할 필요가 없었던 것뿐이다. 예를 들어 김 부장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 그의 눈에서 시작해서 카메라가 돌아서 빠져나와 진료실 안 전체가 보여지는데, 원래는 눈 클로즈업과 풀숏이 나뉘어 있었다. 근데 렌즈의 어떤 부분을 돌리면 카메라 바디를 회전시킨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렌즈가 새로 나왔다. 그걸 쓰면 더 세련된, 현대적 느낌을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것이 감독의 원래 콘티를 크게 거스르는 것이 아니었고. 사실 이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마지막 풀숏 사이즈에서 포커스가 심하게 안 맞아 볼 때마다 괴롭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복잡한 무빙이 몇번 있었다. 주로 카메라 위치와 속도를 정밀하게 계산해서 연기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기술상의 NG도 많이 나는 까다로운 장면들이다.

=그래서 하루종일 찍은 장면이 몇개 있긴 하다. 가장 어려웠던 건 총을 든 김 부장이 만찬장에 들어서는 장면. 김 부장이 들어오고, 뒤에 문이 닫히고, 그의 클로즈업을 잡다가 카메라가 그의 머리 위로 넘어가서 만찬석상을 풀숏과 연결한다. 레일을 깔고 소형 크레인을 얹어서 촬영했는데, 카메라의 속도와 배우의 움직임이 까다로웠다. 세트가 벽을 뗄 수 없는 곳이어서 움직이고, 밀고, 연기자가 연기하기에 굉장히 좁았다. 리허설을 계속해도 NG가 나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던 장면이다. 훌륭한 그립(촬영보조) 덕분에 결국 성공시켰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만찬장을 빠져나와 경호실과 주방을 거쳐 궁정동 외부까지 카메라가 빠져나가는 장면은 직접 제안한 컷이라고 들었다.

=그 장면은 시나리오도 약간 바뀐 경우다. 원래는 노래를 부르는 만찬장 장면 다음에 궁정동 외부의 모의장면, 그리고 다시 만찬장으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임 감독이 시나리오상에, ‘거짓말이야’라는 만찬장 안의 노래가 밖에서도 계속 들릴 것이라는 암시를 줬고, 그렇다면 이렇게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임 감독 역시 나의 그 제안에 바로 반응을 해서, 주방에서 사진을 찍는다든가 하는 설정을 추가했다. 단지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 그런 제안이 다시 감독에게 어떤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게 뿌듯했다.

-김 부장이 참혹한 거사현장을 홀로 돌아보는 움직임을 카메라가 정부감으로 잡은 장면은 영화상으로도 굉장히 중요했다. 감독이 영화 전체를 바라보는 입장과도 같을 것이고.

=그건 임상수 감독이 처음부터 그렇게 찍고 싶어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장면을 함께 이야기하다보니, 나도 좀더 과감해지고, 앞에 말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떠올랐던 것 같다. 일단 세트의 천장을 다 비우고, 세트 옆에 이층 높이의 아시바(비계)를 쌓고 그 위에 레일을 깔고…. 제일 무식한 방법을 써서 찍었다.

-김 부장이 총을 쏘기 전까지, 만찬장 안은 세신으로 나뉘어 보여진다. 각각의 장면들을 서로 다른 컨셉으로 설계하려고 했었나.

=처음엔 점점 감정이 고조되는 느낌으로 나눠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시나리오를 정독해보니,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게 느껴졌다. 중간에 다른 장소가 나오긴 하지만 박정희나 김재규의 클로즈업 하나면 관객이 순식간에 앞의 장면 상황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세신을 하나의 시퀀스처럼 설계했다. 시작하는 신은 달리를 주고, 갈등이 고조되는 두 번째 신은 차지철과 김재규 클로즈업에 줌을 주고, 마지막에 총을 든 김재규가 등장할 때는 앞서 말한 다소 복잡하고 의미심장한 움직임을 주는 식으로.

-얘기한 김재규와 차지철의 대결장면. 사실 그 둘의 진짜 갈등이 직접 보여지는 부분은 그 한 장면뿐이고,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달리가 아니라 줌을 사용한 것도 과감하게 느껴지고.

=그 장면을 통해서 김재규와 차지철이 겪어왔던 갈등을 강조하고 싶기도 했다. 무지하게 튄다는 사람도 있더라. (웃음) 그때는 그 속도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좀더 천천히 할 걸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주밍은 과거 영화에 흔하게 사용된 무빙이다. 현대적으로 보였으면 하는 영화에서 사용했다는 것이 좀 의외처럼 느껴진다.

=줌이 처음 개발됐을 땐 엄청나게 빈번하게 사용됐다. 스테디캠도 마찬가지고. 이제야 비로소 올바르게 쓰이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전달과 소통

-알게 모르게 CG가 많이 쓰인 영화다. 하지만 아까 말한 만찬장에서 외부로 빠져나오는 긴 컷 정도가 가장 눈에 띈다.

=사실 그것도 잘 보면 티가 난다. 만찬장 문에서 빠져나올 때 이어붙인 게 보인다. 처음에 만찬장 안까지 한컷, 닫힌 문부터 주방에서 사진찍는 사람들 보일 때까지, 그리고 바깥. 그런 식으로 네컷 정도로 나눠 찍은 걸 CG로 이음새를 맞춰서 연결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장면은 직접 찍은 건가.

=그렇다. 나중에 헬기와 중앙청 건물을 CG로 넣었다.

-이순신 장군 동산을 그런 앵글에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신기해 보이고,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촬영을 허가해준 분들이 우리가 뭘 하는지 몰랐던 것 같더라. (웃음)

-그 장면은 동상 뒤로 광화문과 중앙청, 청와대가 보이면서 효과적으로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 그 위치에 가보지 않으면 그런 콘티를 생각하기 어려웠을 텐데. 처음엔 청와대까지 다 CG인 줄 알았다.

=주 과장이 광화문 대로에서 불법 유턴을 하는 야간장면 같은 부감숏을 낮에도 사용하려고 했었다. 지금은 없어진 중앙청과 광화문, 청와대, 효자동, 궁정동 등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서 근처 높은 빌딩은 모두 올라가봤고, 그 높이에 올라가면 뭐가 보일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콘티가 부정확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찍어보고 내려왔다. 처음엔 고정된 카메라였지만 움직임도 이리저리 줘보고. 여길 또 언제 와볼까 싶기도 하더라. (웃음)

-경호실 내부가 처음 보여지는 장면에서, 육중한 철문 사이로 카메라가 들어가는 듯한 장면도 있었다.

=그건 CG는 아니었다. 철문 사이에 규칙적으로 뚫어놓은 구멍으로 카메라 렌즈가 직접 들어갔다. 어떤 공간 안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데, 그곳은 베일에 싸인 곳이라는 느낌을 주려고 했던 거다. 사실 이런 컷이 그렇게 새로운 것도 아니고, 단순히 멋져보이라고 사용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설명하는 게 좀 쑥스럽다. 촬영을 하거나 장비를 사용하는 이들 중에는 자기가 마치 특정 장비나 기술의 최초의 사용자인 양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나쁜 영화>의 일부 촬영을 맡았을 때부터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의 핸드헬드를 사용했다. <거짓말>은 물론이고, <해피엔드>는 정적인 대화신에서도 핸드헬드를 썼고, <바람난 가족>은 6mm로 찍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의 핸드헬드를 실험했다.

=결국은 그만큼 몸으로 때웠다는 얘기다. (웃음) 찍어야 할 신에서 정말 필요한 게 뭔지를 고민했다. 정적인 장면은 픽스, 역동적인 장면이라고 핸드헬드라는 생각은 안 한다. 제일 중요한 건 전달이고 소통이다. 근데 그게 안 되는 핸드헬드가 너무 많다. 특히 싸움장면은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도 많다. 단지 배우들이 다칠까봐 혹은 액션 자체를 좀더 격하게 보이도록 쓴 것이라면 괜찮지만, 그런 무질서가 스타일이 되는 건 곤란한다.

-언제 쓰고 안 쓰고의 문제도 있지만, 어떤 핸드헬드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이건 다소 거창한 얘기가 될 것 같긴 한데, 우리는 익숙한 할리우드영화가 절대적인 기준처럼 느끼는 경향이 있다. 촬영이 좋다거나, 화면 때깔이 좋다는 말을 듣는 영화는, 결국 할리우드영화와 비슷한 영화를 말한다. 하지만 난 뭔가 다른 게 있을 거라고 믿는다. 중국 5세대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 풀숏의 사이즈나 컷의 길이 등이 할리우드영화와는 정말 다르다. 그들만의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우리만의 것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고, 핸드헬드의 활용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예전 인터뷰에서 할리우드영화 같은 걸 찍고 싶다고 한 것이 기억난다.

=그건 그 영화들이 나에게는 일종의 고향 같다는 의미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아무 조건없이 맘대로 찍으라고 하면, 할리우드영화처럼 찍으려 할 것 같다. 하지만 내 취향과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 건 좀 다르다.

-이 영화의 핸드헬드로 기억에 남는 건 김 부장와 주 과장, 민 대령이 거사를 모의하는 장면과 임시 국무회의 장면이다.

=임 감독이 처음부터 국무회의 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쩔 줄 모르고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그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사라짐으로 해서 헤맸던 그 얼굴들 외에는 아무 필요가 없다는 거였고, 배경도 거의 안 보이고 넓은 숏도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핸드헬드가 연상됐다. 셋이 모의하는 장면의 경우는, 김재규가 방 안에서 나오면서부터 시작되는 핸드헬드다. 원래는 셋의 모의를 주변의 거울 등을 이용해 왜곡되게 찍어서 함께 편집하려고 생각했다. 우리가 모의에 빠져들어 동조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를 통해서 훔쳐보는 느낌으로. 지금 이런 식으로 된 건 감독의 선택인데, 이런 건 컷포인트와 관련한 아쉬움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

-국무회의 장면은 핸드헬드뿐 아니라 화면의 톤도 다른 공간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사실 그건 원래 의도한 정확한 톤이 그대로 재현된 건 아니다. 그 이전까지는 따뜻한 분위기로 조명된 공간이 주를 이루다가, 그 순간 차갑고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형광등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면 톤에 관한 많은 실험을 했던 게 <바람난 가족> 아니었나.

=전체적으로 많이 튄다는 얘긴가? (웃음) 당시 임 감독이 말한 컨셉 자체가 6mm로 찍은 홈비디오 느낌이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기록한 화면의 화이트 밸런스가 다른 느낌을 의도했다. 시나리오에 제1일, 제2일 이런 식의 표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색깔있는 필터를 많이 사서 테스트를 했지만 당시 현상소에서는 그래도 현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필터를 사용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혹시 날짜가 바뀐다거나 할 수도 있으니까.

연출자의 의견은 언제나 가장 중요하다

<그때 그 사람들>
<바람난 가족>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모두 2.35:1로 찍었다. 한국영화에선 일반적으로 와이드로 찍지 않을 것 같은 영화들이었다.

=1.85:1이라는 사이즈는 4:3에서 위아래를 버리면서 와이드스크린을 얻는 방법의 하나로 개발된 거고, 더군다나 미국 사람들의 기준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대강의 사이즈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 <해피엔드>도 2.35:1로 찍으려고 했는데, 투숏을 잡았을 때 그 포맷에선 훨씬 좋은 구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람난 가족> 때는 주인공 남자와 여자, 여자와 그 애인, 남자와 그 애인 등 두 인물의 관계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고, 투숏이 많을 것 같았다. <그때 그 사람들>은 시나리오상으로 여러 인물이 동시에 한 화면에 배치될 거라는 게 분명했기 때문에 그게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다. 감독이 특별히 거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2.35:1로 찍고 싶다.

-하지만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투숏을 잡고 리버스로 넘어갈 때, 화면이 넓어지면 관객이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기 어려워진다. 컷 연결이 부자연스러워 보일 위험도 있고.

=관객의 시선이 오른쪽 구석에서 왼쪽으로 옮겨가는 순간, 그 시선을 한곳에 잡아두거나 순간적으로 헤매게 만드는 것도 일종의 효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사실 만화에서 쓰는 방법인데, 한 지면에서 독자의 시선의 흐름을 고려해서 또 다른 효과를 주기도 한다.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는 만찬장 장면에는 인물의 위치와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되도록 단독보다는 여러 명을 함께 등장시키려 했다. 김 부장와 차 실장이 함께 이야기할 때, 대통령의 뒤통수를 건다던가. 하지만 대통령은 여자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항상 단독으로 클로즈업을 잡았다. 처음으로 박정희 클로즈업 프레임에 함께하는 사람들은 여자들이 된다는 식이랄까. 아, 이것도 실제로 말하려니까 좀 쑥스럽다. (웃음)

-임상수 감독이 10·26을 바라보는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나.

=나는 이 영화가 10·26에 대한 임 감독의 소고라고 생각하고, 감독이 그걸 풀어가는 방식에는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원래 나는 시나리오를 읽고 OK를 하는 순간부터 텍스트를 가장 우선시한다. 그때부터는 고스란히 화면에 옮기는 데 집중한다. 콘티를 같이 짜고 그러면 자기 것이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는 연출자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스탭들은 감독을 도우려는 거지 월권을 하려는 게 아니다.

-두번 이상 함께 작업한 감독 목록이 장선우 감독 외에 한명 더 추가됐다.

=아무리 훌륭한 스탭이라도 도와줄 수 없는 부분, 감독만이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장선우 감독과 임상수 감독은 그걸 끌고 갈 줄 안다. 그래서 결과물이 내가 찍은 것을 기계적으로 이어붙인 것에 끝나지 않고, 더 훌륭해진다. 물론 두 사람은 다르다. 임상수 감독은 내가 만난 감독 중 말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지만, 장선우 감독은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임 감독은 내가 어떤 제안을 하면, 선택을 해주거나 혹은 알아서 하라고 명쾌하게 말하지만 장 감독은 명확한 답을 안 주니까 계속 고민해야 되고 하면서도 눈치를 봐서, 얼른 바꿔야 한다.

-예전 인터뷰에서 ‘촬영감독은 감독을 손님으로 모시는 택시운전사’라고 했는데, 그 생각에 변화가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 이런 내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촬영자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더라도 학생들의 반발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나는 기술적인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배우는 소품처럼 느껴지는 장면, 그래서 촬영감독의 권력이 커지는 장면에서도 감독이 가장 큰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보기에 좋은 장면도 감독이 왠지 모르게 싫다고 하면 안 되는 거다. 물론 나도 기분 나쁜 상태로 촬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감독의 의견을 따른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를 영상화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흥미로운 일이다. 연출자의 의견은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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