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아빠, 힘내세요”
2005-02-25
글 : 진중권 (문화평론가)

왜곡된 과거사도 청산하면 안 된단다. 왜? 박정희가 일본군 소위였기 때문이다. 광화문 현판도 못 간단다. 왜? 박정희 딸이 야당 대표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영화도 못 만든단다. 영화가 박정희 아들의 취향에 안 맞았기 때문이다. 이 집 식구들한테 나라의 발전이 발목잡혀 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아직 이 사람들’ 노릇을 하고 있으니, 민족사를 왜곡하고, 문화재를 훼손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통이 21세기에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아비에게서 딸 아들로, 정말 대를 이어서 지겨운 가문이다. 법원에서는 영화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화면을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이 기록 화면이 허구로 구성된 영화장면을 실제로 믿게 해 고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기록 화면 들어 있다고 허구로 구성된 영화장면을 실제로 믿는 것은 영감님의 개인적 특수성일 뿐, 정상적 성인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발달이 아무리 늦어도, 중학교 들어갈 때쯤에는 대개 기록 화면의 유무와 관계없이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분별력을 갖추기 때문이다. 이래서 초등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에드윈 포터던가? 그리피스 이전에 몽타주 기법의 전사(前史)를 쓴 사람이다. 그는 에디슨 창고에 있는 실제 소방차의 출동장면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화재장면을 결합해, 한 여인이 아이와 함께 불에 갇힌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기록과 허구를 뒤섞은 몽타주인 셈인데, 영화 속에 삽입된 “이 기록 화면이 허구로 구성된 영화장면을 실제로 믿게”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법무부에서는 문광부의 협조 아래 문화강좌를 개설해 영감님들 교양 수준 좀 높여야겠다.

법원에서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부정한다. 이 황당한 사태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영감님들의 관람 태도를 이렇게 바꿔야 한다. 가능한 한 영화는 개봉된 다음에 보는 거다. 안 그러니까 자꾸 ‘사전검열’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아울러 영화는 판사석이 아니라 관객석에 앉아서 보는 게 좋다. 판사석에서는 영화를 내려다보나 관객석에서는 올려다보게 된다. 이 각도의 차이가 영화 감상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영화평을 판결문이 아닌 감상문의 형태로 적어보는 거다. 내가 보장하는데 이 자그마한 습관의 변화로 영화 보는 안목이 엄청나게 넓어질 수 있다.

가위 들고 필름 자르는 일은 판사가 할 일이 아니라 감독이 할 일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으로. 망치는 판사님에게, 가위는 감독님에게, 그래야 사회질서가 유지되지 않겠는가? 이 사안의 본질은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박지만씨와 등급이 안 맞는다는 데 있다. 내가 권한 방법으로 교양을 쌓은 판사라면, 이런 문제를 법정에 들고 온 철부지를 돌려보내며 대신 그에게 취향에 맞는 영화를 골라줄 수 있을 게다.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는 유아적 정신을 위한 영화들, 찾아보면 꽤 많다.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 톰과 제리, 그 밖에 디즈니 만화영화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철없는 근혜, 지만씨가 아빠 산소 앞에서 이렇게 율동을 하는 게 얼마나 아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인지 알기나 할까? 아빠의 유언이 무엇이던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이 말을 쉽게 풀면 ‘나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욕먹기 싫으니, 욕일랑은 나 죽은 다음에 실컷 하라’는 뜻이다. 욕이야말로 아빠가 살아생전 드셔보시지 못한 귀한 음식 아닌가. 그런 귀한 음식, 아빠의 제사상에 올려드리는 게 아빠의 원을 풀어드리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 근혜, 지만씨가 알아야 할 텐데. 어유, 언제 철이 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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