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주먹이 운다> 최민식·류승범 인터뷰
2005-03-18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연출없는 난타전…죽기살기로”

스무살 차이의 두 남자가 사각의 링에서 대결한다. 4월1일 개봉하는 <주먹이 운다>(류승완 감독)에서 인간 샌드백을 자처하는 거리의 복서로, 살인죄를 지은 소년교도소의 수감자로 삶의 구석자리에 밀려난 두 남자, 마흔두살의 강태식과 스물두살의 유상환은 세상을 향해, 가족을 향해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링에서 조우한다. 두 인물이 유일하게 만나는 마지막 장면의 신인왕전에서 연출없는 ‘생짜’의 난타전을 벌인 두 배우 최민식(43)과 류승범(25), 두 배우의 만남은 한국 남자배우계의 중견급 대표선수와 20대 대표선수라고 할 만한 인물들의 연기 대결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끈다. 17일 오전 인터뷰에 10분 늦은 류승범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무릎꿇고 두손을 들면서 미안함을 표시하자 최민식은 삼촌같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장난스럽게 핀잔을 줬다.

류승범 까마득한 선배, 심적인 부담 “너에게 충실해라” 한마디에 좁은 국도가 고속도로처럼…

이날을 기다려왔다

최민식:“영화를 하기 전 사석에서 한번 만난 게 전부인 사이였지만 승범이는 오래 전부터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은 배우였다. 전작들에서 또래 배우들에게서 찾기 힘든 확신과 유연성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같이 찍으면서 후배라는 생각보다 ‘오호, 그래?’라는 수평적인 긴장감을 주더라. 그런게 연기 뿐 아니라 영화 전반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역시 ‘이기적인’ 내가 남는 장사를 한 것같다(웃음).”

류승범:“까마득한 선배와 함께 작업하는데 심적 부담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준비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 많이 걱정하고 헤맸는데 최선배한테 “근본적으로 너와 나는 다른 인간이고, 다른 배우다. 너는 너의 캐릭터에 솔직하면 그게 전부”라고 했던 말을 들으면서 좁은 국도같던 시야가 고속도로처럼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잡생각을 털면서 내가 극중에서 만나는 인물들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겨야 O·K나는 마지막 대결 장면, 이렇게 ‘싸웠다’

: 감독님이 촬영 전에 여러 번 전화해서 “정말 (연출없이) 그냥 가도 되는 거냐?” 말하며 불안해했다. 최선배가 전부터 “그냥 때리고 맞으면서 가면 되지” 라고 말해서 그렇게 하기로는 했지만 짧지도 않은 씬에서 정교한 액션연출없이 간다는 게 사실 불가능하지 않나.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말이 해결책이 됐다. 찍다가 잠깐 쉬는 중간에 모니터를 보니까 자꾸 내가 밀리더라.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마지막 라운드는 오로지 이겨야 한다는 심정으로 죽기살기로 덤볐다. 말이 그렇지 옆에 있던 카메라가 뒤로 빠질 때는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진짜 무섭더라.

최민식 생존의 링에서 싸우다 퇴출 누울 자리 한평 없는 이 시대 아버지들을 위해…

:“권투는 액션과 리액션이 너무나 선명한 경기다. 경기에서 처음 만날 때까지 두 인물이 끌어온 정서가 있는데 만약 합의된 액션으로 간다면 그 정서가 흐트러지거나 약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6라운드에서 파김치가 된 승범이가 나를 밀자 나도 모르게 “밀지마, 씨발”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모든 게 설정에는 없었던 애드립이었다. 그런 의외성이 인물의 정서를 전달하는 매우 중요했고 호흡이 잘 맞아서 오히려 쉽게 끝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그런데 짜식, 힘이 진짜 세더라구. 부럽더군. 나도 옛날에는 저랬는데 싶으면서(웃음).”

:사실 마지막 라운드에서 형한테 엄청 미안했다. 그래도 어떡하겠나. 안 그러면 오케이가 안나는데(웃음).”

이런 인물, 이런 영화

:강태식은 이 시대의 아버지같은 인물이다. 생존이라는 사각의 링에서 머리가 깨지도록 싸워온. 그리고나서 40대에 사회로부터 퇴출돼 발뻗고 누울 자리 한 평 얻을 수 없는. 오죽하면 40대 돌연사가 세계 1등일까. <주먹이 운다>는 이런 아버지들에 보내는 연가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사정 딱한 아버지들이 영화를 보면서 위로받고, 또 그들의 자식들이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한번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종종 <인간극장>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아, 나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네 이런 생각을 짧게나마 하면서 내 처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영화라는 매체가 사람의 전부를 움직이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주먹이 운다>를 보면서 자신이 패배했다고 또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짧은 위안이라도 얻어갔으면 한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