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파도> 제작한 코리아엔터테인먼트대표 이서열
2005-03-31
글 : 오정연
사진 : 정진환
“포인트가 분명해야 좋은 시나리오가 나온다”

<마파도>가 심상치 않다. 소재며 캐스팅이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비관적인 예측이 대부분이었던 이 영화가 개봉 2주가 지난 지금, 전국관객 120만명을 조용히 넘어섰다. 제작사인 코리아엔터테인먼트의 창립작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슬리퍼 히트만큼은 아니어도 예상외의 선전임은 분명하다. 코리아엔터테인먼트 이서열 대표는 <동갑내기…> 때부터 간간이 이어졌던 인터뷰 요청을 계속해서 거절해왔다. 몇편의 작품으로 승부를 던지기 이전에 우연히 성공한 초짜로 비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마파도>보다는 현재 준비 중인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조건을 걸고. 외화를 수입하고, 비디오를 출시했던 베어엔터테인먼트를 책임졌던 그가, 제작쪽으로 업종을 전환한 지 이제 4년. 그간 이서열 대표는 세편의 영화를 극장에 걸었고, 현재는 두편의 영화를 제작 중이며, 그의 손에는 수면 밑에서 기회를 엿보는 10여편의 시나리오가 있다. 앞으로도 한동안, “수입보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는 그의 확신은 변함이 없을 전망이다.

-<마파도>가 잘되고 있다. 어느 정도 예상했었나.

=우리도 사람들의 비관적인 예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웃음) 하지만 예전에 <동갑내기…> 때도 인지도 조사를 하면 <이중간첩> 등이 앞에 있고, 개봉 직전까지도 4등이었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걱정을 많이 하진 않았다. 내부에서는 시나리오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문제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까불지마>나 <고독이 몸부림칠 때> 같은 영화랑 비교를 했던 점이다.

-두 번째 작품인 <맹부삼천지교>는 그다지 장사가 잘 안 됐던 걸로 알고 있다.

=그래도 결국 90만명 수준까지는 들었던 작품이다. 조금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장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작품이었다. 특별히 감독이 영화를 못 찍었다든가 시나리오가 나빴기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조재현과 그 아들의 관계를 통해 감동을 줬어야 했는데 너무 다른 두 아버지, 조재현과 손창민의 코믹한 갈등을 너무 부각시켰던 것이 문제 아니었을까.

-수입에서 제작으로, 업종을 변경한 가장 큰 이유는.

=외화를 수입할 때부터, ‘우리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에는 <바톤 핑크> <하이힐> <월레스와 그로밋> <어글리> 같은 영화를 수입했다. 그런데 해외시장에서 작은 수입사가 사들일 수 있는 영화가 점점 줄어들고, 과다경쟁이 심해지면서 수입영화 시장이 점점 축소되는 걸 느꼈다. 해외마켓에서 영화를 많이 봤던 안목이 영화 제작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고, 색깔이 분명한 한국영화로 외국시장에 도전하고 싶었다. 베어엔터테인먼트 이름으로 <휴머니스트>를 제작하면서 처음으로 제작에 뛰어들었고,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영화 제작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동갑내기…>를 비롯해서 그간 제작한 영화들은 수입영화를 선별하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개인적 취향보다는 흥행이 먼저다. 그래도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동갑내기…>가 그 무렵 흥행영화들에 일종의 표본이 되지 않았나 싶다. 500만 가까이 관객이 들 줄은 몰랐지만 어느 정도 장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코리아엔터테인먼트 같은 소규모 후발주자의 한계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우리가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 같은 작품성으로 승부를 거는 일종의 작가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관객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외화를 수입할 때 좋은 작품들이 관객의 외면을 받는 것이 계속되니까 너무 힘들더라.

-이전의 경험이 제작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누구보다도 많은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의 이런 아이디어는 어떤 식으로 변형시키면 한국에서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에도 예전에 봤던 영화의 어떤 아이템을 이용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한다.

-언제나 입봉 감독들을 기용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시나리오 작가도 언제나 신인이었다. 모든 영화를 내부의 아이디어 회의에서 출발하는 우리의 방식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검토한 아이템을 바탕으로 방향을 정하고 그뒤에 작가를 영입해서 시나리오를 쓰게 한다. 감독이 정해지는 건 그 다음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중견감독들의 경우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해서 그렇게 되기가 힘들다. -철저한 기획영화로 승부를 봤다는 얘긴가.

=일반적으로 기획영화는 특정한 관객층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것임을 생각하면 우리 영화를 기획영화라고 부르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그저 재미를 우선적으로 추구할 뿐이다. 회사 전체 직원이 8명인데 그중 기획실 직원만 4명이다. 내부에서 검토가 끝난 영화만 제작에 들어간다.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는 경우에만 제작을 결정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기획에 들어간 영화가 엎어진 경우는 없다.

-아무래도 소재를 가장 우선시하게 되는 것 같다.

=소잿거리를 찾아다니다보니 다른 영화와 겹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어린 신부>는, 우리가 <12세 신부>라는 제목으로 준비하던 영화와 겹쳤고, KBS 다큐멘터리 <건빵 선생의 약속>의 영화화를 준비했는데 <꽃피는 봄이 오면>과 비슷해서 포기했다. 가장 아쉬운 건, <가발>을 찍고 있는 원신연 감독이 준비하던 <국가대표 원치승>. 5살 지능을 가진 20살 청년이 마라톤에 도전하는 내용인데 <마라톤>과 너무 유사해서 제작을 미뤘다.

-제작 중인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나.

=3월 초 부산에서 크랭크인한 <가발>과 6월 쯤 촬영에 들어갈 <싸움의 기술>의 있다. 각각 원신연, 신한솔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가발>은 두 자매의 애증을 다룬 공포영화인데 예전부터 머릿속에 있었던 아이템을 영화화한 거다. 공포영화처럼 장르의 틀이 분명한 영화라면 언어의 장벽도 그리 높지 않을 것이고 해외 수출에 나름대로 유리한 지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발>이 해외시장을 겨냥한 작품이라는 이야기인가.

=지금 만들고 있는 <가발>이 국내에서 개봉을 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해외 배우를 출연시켜 다시 리메이크하고 싶다는 얘기다. 한국처럼 시장이 작고 쓸 만한 배우도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식의 시장을 넓히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투자사인 CJ 역시 마침 해외시장 개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시기라 이런 계획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기획 중인 아이템도 여럿이라던데.

=일본 유학생을 가르치는 체대 남학생을 주인공으로 <동갑내기 과외하기2>를 준비 중이다. 음치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도 있는데, 바가지를 두드리거나 다듬이질을 하면서 박자를 익히는 장면 등이 있는, 난타 같은 로맨틱코미디다. <청담보살>이라는 가제로 불리는 영화는 청담동의 젊은 점쟁이인 여자주인공의 사랑찾기에 대한 영화다. -아이템을 개발할 때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무언가.

=마케팅. 무엇을 팔 것인지, 포인트가 분명해야 좋은 시나리오가 나온다. <마파도> 같은 경우는 작은 섬에 할머니 다섯명이 전부라면, 그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로또나 대마 같은 기발한 소재도 있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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