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번쩍거리는 조연배우 그런데 왜 남자뿐일까
2005-04-01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사진 : 이혜정
△ 영화배우 오달수

얼마 전 <달콤한 인생>의 시사회를 보고 나오면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요새 한국 액션영화의 진짜 스타는 오달수야.” 오달수는 같은 날 개봉하는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에서 비중있는 조역을 맡은 배우다. 특히 <달콤한 인생>에서 그가 등장하는 길지 않은 장면은 매력이 넘친다. <올드보이>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그는 ‘장도리 들고 설치는 그 아저씨’였지만 이제 오달수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 것 같다.

탄탄한 연기력의 조역배우들의 영화를 받쳐주는 지지대로 기능한 지는 꽤 됐다. 이문식, 성지루, 유해진 등 한때 이들이 없으면 영화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적지 않은 배우들이 이 영화에서 번쩍, 저 영화에서 번쩍하며 ‘조연 전문배우’라는 말까지 탄생했다. 그런데 요사이 영화들을 보면 조연배우 전성시대도 조금씩 진화해 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조역=코믹 연기라는 등식이 가능할 정도로 영화의 ‘당의정’ 역할에 머물던 조역들의 역할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앞에서 말한 오달수다. 물론 <달콤한 인생>에서 그의 러시아어 연기는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지만 <올드보이>나 <주먹이 운다>, <마파도> 같은 영화에서 그는 오히려 싸늘함과 냉혹함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99년 <여고괴담>부터 단역 출연을 하면서 <살인의 추억>으로 얼굴을 알린 김뢰하는 주로 비애감이나 연민을 자아내는 캐릭터들을 보여줘 왔다. <잠복근무>에서 시종 진지하면서도 썰렁한 농담으로 주인공 김선아의 코믹연기에 대응한 오광록 역시 <마지막 늑대>나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올드보이> 등에서 어딘가 하나 빠져있는 것같으면서도 허허실실한 온기가 느껴지는 인물들을 연기했다. 이 밖에도 많은 영화의 조역들이 이제는 주연 못지 않게 단순한 캐릭터를 벗어나면서 영화를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

이문식표 코미디 영화 <마파도>의 흥행성공은 다른 맥락에서 조연배우 스펙트럼의 확장을 보여주는 것같아 반갑다. 이문식은 대표적인 ‘조연 전문배우’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조연 전문배우’라는 말에는 물론 연기력 좋은 배우라는 호감도 있지만 좋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조연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배우라는 느낌이 묻어 나온다. <마파도>는 이런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면서 ‘조연 전문배우’ 이문식을 성공적인 주연배우로 올려놓았다.

아쉬운 건 이런 현상이 아직까지는 남자배우들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스크린 속 여성 조역은 후덕한 어머니이거나 인간성 좋은 선배이거나 대책없는 독신여성이며 배우나 배역의 수도 절대적으로 적다. 몇년 전 한 술자리에서 만났던 30대 중반의 이름이 알려진 여성배우는 “영화를 정말 하고 싶은데 배역이 없다”고 한탄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텔레비전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던 그를 충무로에서는 여전히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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