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으로 너무 거한 작품을 만난 거 아닌가?’라는 질문에 김지용 촬영감독은 슬쩍 웃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하고 싶었던 영화를 그것도 첫 작품으로 만날 수 있었으니까. 촬영을 하면서는 너무 힘들어서 그런 생각도 했다. 다음엔 여자들 나와서 밥먹고 얘기하는 영화 해야겠다고. 그런데 막상 그런 작품을 만나면, 찍고 싶어질지 잘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달콤한 인생> 같은 영화를 거치고 나면, 웬만한 영화는 심심하게 느껴질 것 같다. 육탄전, 총격전, 카액션은 말할 것도 없고, 배우 몸에 카메라와 와이어를 매달지 않나, 차체에 프레임을 짜서 카메라를 매달지 않나, 참신하고 감각적인 영상을 위한 실험은 촬영 내내 계속됐다. 격한 액션과 미세한 감정의 호흡, 빛과 색의 콘트라스트를 강조하는 것만큼 공간에 대한 고민도 컸다. “공간의 느낌을 잡아내고 공간 사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게 문제였다. 청평 액션신과 인천 폐항신을 지나, 무기 밀매상 사무실처럼 비현실적인 공간까지 찍고 나니까 뒤에서 아이스링크나 스카이라운지에서 총질하는 것도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더라.” 그는 그런 점에서, 류성희 미술감독과 단편 <미궁>에서 손발을 맞춘 신성열 조명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시스템을 잘 몰라서 힘들었던 점도 있었지만, 모두 ‘내 영화’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자극이 됐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처음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만 해도 영화를 업으로 꿈꾸진 않았다. 첫 학교가 시골에 있는 게 답답해서, 도시에 있는 다른 학교를 찾다가 영화 전공을 하게 됐고, 현장 인턴을 해볼 요량으로 LA에 갔다가 “힘쓰는 일이고 조금 아는 일”인 조명부로 1년을 일하다보니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갈망이 생겨, AFI에 촬영 전공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재학 기간 동안 타이트하게 작업하면서 ‘속성 훈련’을 마친 그는 2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선배 류성희의 추천으로 <달콤한 인생>에 합류했다.
좋아하는 영화는 <스카페이스> <고스트 독> 같은 영화들. 쓸쓸하면서도 격정적인 남자 영화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으로서도 <달콤한 인생>은 그에게 꼭 들어맞는 영화였던 셈이다. 촬영감독 중에서는 “관습을 깨는 과감한 시도들을 했던” 콘래드 홀(<아메리칸 뷰티> <내일을 향해 쏴라>)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다시 차기작 이야기. 예상과 달리 작품 제의가 물밀듯 들어오고 있지는 않단다. 그는 앞으로 어떤 영화에서, 어떤 그림을 만들어 보여주게 될까. “특별히 그런 생각은 없다. 더 해봐야 알 수 있지 않겠나. 이제 겨우 작품 하나 했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