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먹이 운다>의 배우 천호진
2005-04-07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정진환
“연기 20년, 이제 답을 알까말까 한다”
천호진은 운이 좋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영화를 그만두고 나서 13년 만에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찍은 그는 4년이 채 못 되는 사이 <이중간첩> <말죽거리 잔혹사> <범죄의 재구성>처럼 인상적인 영화들로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탤런트로 인상이 굳어진 배우에겐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운이라고 하기엔 뭔가 서운하다. 현명하고 고집있게 나이 먹은 남자, 라고 하면 조금은 비슷할까. 느닷없이 스크린에 나타난 천호진은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후레이센진 리더로, 무뚝뚝하면서도 속깊은 <이중간첩>의 정보부 상사로, 어린 남자는 품을 수 없을 그늘을 내비쳤었다. 그리고 그 그늘은 <주먹이 운다>에서도 제몫을 찾는다. <주먹이 운다>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거리에서 매를 맞으며 돈을 버는 퇴물 복서 태식(최민식)을 그저 바라보는 국숫집 주인 상철. 사연있어 보이는 그 남자는 말을 아끼지만, 군데군데 잔상처럼 박히고, 희미하지만 넓게 퍼지는 여운으로 남는다. “나하고 무슨 인터뷰를 하겠다고…” 웃으면서 말문을 떼던 천호진은 우리가 너무 늦게 만난 배우였다.

=<주먹이 운다>의 상철은 신상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순탄치 못했을 과거와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어떤 방식으로 그 인물을 만들었는가.

-배우라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 영화는 이야기를 펼치는 TV드라마와 달리 압축인데, 얼마나 절제하고 얼마나 드러낼 것인지, 감독이 잘 잡아주기만 하면 된다. 류승완 감독은 거기까지 가기 위해 나하고 인물 분석을 많이 했다. 이 사람은 직업이 뭐였을까, 왜 이렇게 폼잡고 사는 걸까. 심지어 이 사람은 된장찌개는 별로 안 좋아하고 고기만 먹을 거다, 이런 이야기까지 했다. 사실 대사도 별로 없잖아. (웃음) 하지만 이번 영화처럼 공통분모를 찾으면 관객을 설득할 수 있다. 요즘 영화들을 보면서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그거다. 배우들이 연습을 게을리한다. 흔히 얘기하는 디스커션, 그걸 해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는데, 연습을 안 하거나 배우에게만 맡겨놓고 의존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상철은 배경에 불과할 수도 있었지만 존재감이 남는다. 눌러담는 듯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류승완 감독이 그런 연기를 원했다. 그걸 원하는 류승완 감독이 좋았다. 점점 드라마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는 감독 같고. 원래 시나리오에선 내가 태식 앞에 자주 나섰다. 두 남자가 치고받고 싸우고 난리를 떨기도 했고. 하지만 시나리오를 두고 많이 이야기한 끝에 변화가 있었다. 내가 어떤 배우로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존재감만 심어주다가, 딱 한번만 폼을 잡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요즘 영화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했던 건 직접 겪은 일이었나.

-그건 말하기 힘들고. (웃음) 지금 한국영화는 하드웨어는 나무랄 데가 없다. 어쩌면 더 발전하면 안 되는지도 모르겠다. 건방져질 수도 있으니까. 요즘은 현장에 가면 제작부 젊은 친구들이 커피도 갖다주고 좋더라고. 옛날이야 그런 게 있나. 앉으라고 가져다주는 의자에 익숙해질 때까지 4년이나 걸렸다. (웃음) 내가 13년 만에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찍었는데 진짜 총을 쓰더라. 예전에 모 감독에게 우리도 수입을 하든 빌리든 진짜 총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픽픽 웃기만 했다. 그땐 나무로 총을 깎아서 조그만 화약 넣고 불꽃만 반짝 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보단 소프트웨어의 질을 높이는 데 시간을 더 할애했으면 한다. 내가 말하는 소프트웨어는 배우 연기뿐만 아니라 제작이나 투자까지 모두 포함하는 거다. 배우가 없다고 하지만 좋은 배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 배우들을 발견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배우를 흥행 요소라고만 보지 말고 20, 30년 쌓인 노하우를 활용해야 하는데 말이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운이 좋았다. 다른 배우가 하려던 역이 펑크가 나서 나한테 왔다. 영화를 무척 하고 싶었던 참이어서, 배역이 작아도, 신인처럼 시작하는 기분으로 하려고 했다. 그게 복이었지. 그렇게 잘 쓴 대본하고 완벽한 콘티는 처음 봤다. 현장에 갔더니 그날 찍을 분량을 스토리보드에 그려서 붙여놓았는데 잘 그렸더라고. 마침 내가 액션을 할 줄 알아서 오랜만이어도 어려움 없이 촬영할 수 있었다.

=운동을 매우 잘한다고 들었다. 처음 겪는 블록버스터를 찍으면서도 어렵지 않았던 건 그런 이유도 있었는가.

-군대 갔다온 대한민국 남자면 단증 하나는 다 있지 않나. 운동은 그 정도 한다. (웃음) 사람들은 나이든 배우는 액션 연기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액션도 연기다. 물론 액션을 하다보면 표정이 없어지고 그럴 순 있지만 몸에서 나오게 된다. 40, 50대 배우들이 단기간에 자본을 회수해야 하는 투자사한테는 내키지 않는 선택일 거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허리가 튼튼해야 하지 않을까. 예전 선배들을 보면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 그사람 아니면 연기할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가 있었다. 전에 최무룡 선생을 공항에서 뵌 적이 있는데 가까이 가서 말도 못 걸겠더라. 젊은 배우들도 그렇고 우리도 아직은 그런 게 없다.

=그런 점에선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젊고 재능있는 감독들과 작업을 해왔는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는가.

-나는 수동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이다. 젊은 감독들 찾아다니면서 내가 이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러긴 힘들지 않나. 어쩌면 게으른 걸 수도 있고. 우리 때는 매니저도 없어서 한번 연이 끊어지니까 다시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만둔 건, 지금은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다시는 영화 안 한다, 이 나쁜 새끼들아, 그런 영화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무렵 제작여건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도 같다. 처음 데뷔했을 때는 젊었고 돈이 문제되지 않았으니까 신이 나서 영화를 찍었다. 그런데 둘째 애가 생긴 무렵이었나, 생활이 닥쳐오니까 힘이 들었다. 이런 얘기 하다보니까 첫 영화하면서 어음받은 기억이 나네. 내가 언제 어음을 본 적이 있나. 50만원짜리 어음 바꾸겠다고 명동 사채시장을 헤매고 다녔다. 다행히 <2009 로스트 메모리즈>로 다시 영화를 시작하게 돼서 이시명 감독에게 고맙다. 그런데 선배가 되니까 어려운 점이 많다. 같은 또래면 말실수도 할 수 있고 치고받으면서 풀 수도 있는데 이젠 현장에 가면 내가 제일 꼭대기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하고 일하는 게 쉽다. <범죄의 재구성>에서도 염정아가 아저씨들하고 찍으면 또래하고 할 때보다 재미있어 하더라고. 아저씨들은 쓸데없는 말도 잘하고 그러잖아. (웃음)

=한번 깊은 인상을 남기면 비슷한 배역을 제안받기 쉬울 텐데도 그런 길을 피해왔다. 시나리오를 고르는 기준이 있는지.

-나도 영화에 욕심이 있고 배역에 욕심이 있다. <주먹이 운다> <혈의 누>는 원래 다른 영화 일정 때문에 출연하지 못할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결과가 좋아서 내 복이고 운이겠지 하고 있다. 아직은 내가 독단적으로 뭘 해보겠다고 할 때가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주먹이 운다>는 사실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 해보고 싶은 영화일 거다. 하지만 <말죽거리 잔혹사>는 하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나는 때리고 맞고 욕하고 부수고, 이런 영화를 너무 싫어한다. 주먹질 하더라도 사람은 죽이지 말아야 하고, 조직폭력배는 나오지 말아야 하고, 이런 고집이 있다. 그런데 제작자인 차승재 대표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웃음) 유하 감독이 예리하게 그린 면도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무렵하고 비슷한 시대가 배경이지 않나. 나도 교복 입고 명동 지나가다가 선배를 못 알아보면 그 자리에서 엎드려 뻗쳐 하고 맞았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찍으면서 당신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나.

-많이 비슷하다. 그때는 컴퓨터나 DVD 같은 멀티미디어가 없으니까 다들 책만 읽고 개똥철학에 빠져 살았지. 나도 그러다가 공부를 너무 안 해서 고3 담임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졸업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주먹질만 했지 폭력서클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영화나 TV 하는 사람들은 반성 많이 해야 한다. 폭력영화라고 해서 다 나쁜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폭력만 보지 그 결과는 보지 못한다. 그걸 보면 애들이겠나, 어른이지.

=영화를 그만두고 얼마 뒤에 한국영화 부흥기가 왔다. 아쉬움이 컸을 텐데.

-언제더라, <퇴마록>을 보고 참 괜찮은 영화다 싶었다. 우리는 컴퓨터도 제대로 못 봐서, 남산 어린이 회관에 가면, 도트 프린터가 숫자로 만든 그림 찍어내는 거에 신기해했었다. 그런데 <퇴마록>에선 CG를 썼다. 내가 조금만 더 버텼으면 저련 영화를 할 수도 있었는데, 부러웠다. 나는 지금도 영화를 많이 본다. 예전엔 베타 플레이어를 장만해가지고 아는 비디오가게에 사정해서 테이프를 빌리거나 어느 마니아가 외국에서 테이프를 사왔다고 하면 쫓아가거나 그랬다. 이젠 DVD가 나오니까 참 편하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나보다. 처음부터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서 탤런트 공채 시험을 보았나.

-이건 인터뷰용 멘트인데 고등학교 때인지 <디어 헌터>를 보고 배우가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영화쪽은 하나도 몰랐다. 보이는 것만 보니까 감독 이런 거는 생각 못하고 배우가 참 멋있구나 했지. (웃음) 인하대 화학과를 다니다가 제대하고나서 MBC 공채 탤런트로 들어갔다. 저게 영화로 가는 문인가보다 하고선. 그때 중간고사를 잘 봤으면 끝까지 학교를 다녔을 수도 있다. 군대 다녀온 시기가 안 좋아서 학교를 4년 쉬었는데, 4년 만에 공부를 하려니까 되나. 군대 면제 받은 동기가 강사하던 과목만 D-를 받고 전부 F였다. 사정을 해도 안 봐주더라고. 빨리 인생을 결정해야겠다 싶어서 연기로 길을 정했다.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 책을 읽어도 한계가 있고. 초기에 유인촌 선배하고 친했는데 그분한테 배운 게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다.

=예전 자료를 보니까 <청: 블루스켓치> 제작에도 직접 관여한 것 같았다. 신인감독과 배우가 힘들게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던데.

-누군가의 소개로 이규형 감독을 만나 1년 반 동안 여관에서 지내면서 시나리오를 탈고했다. 나도 함께 썼다는 얘기는 아니고, 옆에서 라면 같이 끓여먹은 거지. (웃음) 이규형 감독이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신문에 광고를 냈었다. 300만원만 투자하면 원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던가, 그 사람이 글도 잘 쓰고 아이디어가 반짝반짝했거든. 그 광고가 먹힌 건 아니었지만 투자를 받을 수는 있었다. 84년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고 젊은 혈기로 버텼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을 보내다가 지금 영화를 찍으면 낯선 점도 있을 듯하다.

-나는 옛날 방식으로 훈련을 받은 마지막 세대다. 옛날 방식이라고 하면, 예를 들면, 후시녹음 같은 거다. 남산 영화진흥공사에 가서 후시녹음을 하는데, 마이크 하나 스크린 하나 놓고, 25분짜리 필름 한권을 한번에 녹음해야 했다. 중간에 끊기면 처음부터 다시 갔다. 그걸 이틀 사이에 서너권을 해치웠다. 그래서 성우들이 주로 녹음을 맡았지만 나는 욕심이 많아서 직접 했다. 처음엔 성우들한테 구박도 많이 받았다. 그렇게 훈련을 받으면 자기를 컨트롤하는 능력이 생겨서 좋다. 나는 젊었을 때 이태원 골목골목 모르는 구석이 없었다. 내가 직접 소품 구하고, 거짓말 조금 보태 양말부터 팬티까지 직접 챙겼으니까. 지나고 나니까 그때는 정열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현장에서 너무 잘해주니까 정열이 사라지는 것 같고. 하지만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그러니까 평상시에 재미가 없나. 취미도 없고 소주나 마시고. (웃음)

=존경한다는 선배들처럼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을 것 같다. 아직은 때가 되지 않은 건가.

-내가 연기를 20년이 넘게 했는데 이제야 조금 답을 알까말까 한다. 나는 원래 배역을 가리지 않는다. 유격대원으로 시작해서 <암행어사> 할 때는 없던 설정까지 집어넣어 꼽추를 해보기도 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러다가 사람들이 너는 이게 어울리는 거야, 하면 그런가보다 하겠지. 물론 배우로 평생을 살려면 어느 역이 맞는다고 해서 그것만 해선 안 된다. 적절하게 조정해야 할 거다.

=민규동 감독의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찍고 있다. 어떤 배역인가.

-그 영화를 설명하자고 들면 너무 길어서…. (웃음) 한국에선 위험한 영화일 수도 있고 연기 톤을 잡기가 쉽지 않다. 감독이 하자는 대로 쉽고 단순하게 따라가면 되는데 20년을 연기했어도 그게 잘 되질 않는다. 내가 맡은 배역은 재력도 어느 정도 있고 성공도 했지만 친구의 자살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40대 남자다. 이혼하고 아들과 둘이 사는 집에 남자 가정부가 들어와서, 치유라고 할까, 그런 과정을 겪게 된다. 그게 진짜 드라마 연기다. 지옥 같은 나락에 떨어졌다가 회생하는. 얼마 전에 <데미지>를 다시 봤는데 그것도 비슷하다. 감정의 기복이 정말 크다. 사람들은 베드신이 나와야 멜로드라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번에 진짜 멜로드라마를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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