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는 ‘장난하냐?’라는 제목의 코너가 있다. 삼형제가 등장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서로를 트집잡고 시비걸면서 다투다가 얼토당토않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합창으로 마무리 짓고 끝나는 개그다. 도저히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 없는 ‘갈굼’ 모드로 점철하면서도 가족이 최고라고 매듭짓는 결론이 도리어 역설적으로 들려서 킬킬거리게 된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충무로에서는 가족 드라마가 꾸준히 강세다. <가족> <우리형> <말아톤> 그리고 최근 개봉한 <주먹이 운다>까지 소재와 설정은 제각각이지만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가족의 복원이라는 공통된 이야기축이 주요 흥행코드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가족의 가치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주제이고, 가족영화는 20대에 치우쳤던 관객층을 넓힌다는 장점도 있지만 최근의 가족 드라마 인기에는 아쉬운 구석이 있다. 대부분의 가족영화들이 강조하는 가족의 가치는 변하고 있는 현실의 가족상을 반영하기보다 개그 프로그램처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고답적인 격언을 반복하고 있는 탓이다.
<주먹이 운다>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권투라는 공통의 소재를 다루는 방식보다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 차이가 더 눈에 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일종의 가족영화다. 혈연으로부터 배제당한 두 인물, 코치와 선수는 연민과 연대감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를 형성한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관계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진짜 가족과 다를 바 없다. <주먹이 운다>의 두 주인공 역시 가족으로부터 밀려나거나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는다. 이들에게 연민과 연대의 손길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지만 영화는 흩어진 가족의 복원으로 마무리되면서 피로 맺어진 가족의 가치를 이상화한다. 특히 태식 주변을 얼쩡거리는 건달 무리들을 가정의 안녕을 위협하는 외부자로 몰아가면서 가족과 타자를 지켜야 할 가치 대 물리쳐야 할 위협요소로 대치시킨다. 여기에는 배타적 혈연주의의 냄새가 난다. 가족을 끊을 수 없는 사슬로 상정해 놓고 그 사슬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건 답답하다. 특히나 요즘처럼 어쩔 수 없이 또는 개인의 결단으로 가족과 결별하거나 새로운 가족을 꾸려가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때 이런 메시지는 또 다른 족쇄처럼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마파도>는 변화의 징후를 느끼게 하는 영화다. <마파도>는 ‘로또 찾아 삼만리’이기도 하고 형사, 깡패 커플의 버디영화이기도 하지만 또 이 영화는 일종의 대안가족 영화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을 잃거나 가족에게서 버려진 할매들은 작은 섬을 하나의 집으로 삼아 가족을 일구고 살아간다. 또 불순한 이유로 섬에 들어온 남자들도 스스럼없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이들이 가족을 형성하는 근거는 서로간의 딱한 처지에 대한 연민이다. 그 연민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고 따라서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족은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일 수가 없다. 영화적 기술의 서투름이나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피’보다는 애정과 연민으로 엮여있는 가족 이야기, 진화된 가족 드라마가 사랑받는 건 그래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