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동사서독> 장만위
2005-04-12
부담없는 만옥이 누님 자장면 한번 먹자구요

요즘에야 홍콩영화가 많이 꺾어졌지만,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정말 홍콩영화 붐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때 친구들 중에 <영웅본색> 안 본 놈들 없는 거야 기본이고, 어디서 싸구려 선글래스 쓰고 성냥개비 씹던 놈도 있었고, 문방구에서 파는 어린이은행 지폐에 불붙여서 담배 피우던 녀석까지 있었다. 아무튼 온갖 ‘개폼’의 원조가 된 <영웅본색>을 필두로 홍콩영화들이 우루루 몰려들었고, ‘윤발이’ 형님은 “싸랑해요 밀키쓰~”를, ‘(왕)조현이’ 누님은 “니하오마, 안녕하세요, 왕조현이예요~”를 외치면서 우유 들은 탄산음료 광고에서 한판 붙던 때가…, 벌써 이렇게 오래됐나?

하여튼 정말 그때는 홍콩 여배우 누님들 인기 짱이었다. 왕쭈시엔(왕조현), 메이옌팡(매염방), 치우수전(구숙정), 종추홍(종초홍)…. 생각 잘 안나네 이거. 아무튼, 나타났다 사라졌다, 피었다 졌다 한 수많은 누님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잘나가는 누님 하면 역시 장만위(장만옥)다. 사실 장만위라는 캐릭터는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미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왕쭈시엔의 순수 콘셉트, 메이옌팡의 농염한 섹시함, 얼굴은 최진실 스타일이지만 몸매는 시원한 글래머를 자랑했던, 언밸런스 콘셉트 치우수전, 이런 쟁쟁한 누님들과 비교한다면야…. 사실 그래서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는 뭐 항상 ‘틀면 나오는’ 여배우 정도로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마음에 들어간다. 사실 정말로 너무나 예쁜 여자를 보면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열정이 활화산처럼 뻥 터지지만, 한 템포 죽이고 생각해 보면, 저렇게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너무나 예쁜 ‘그녀’는 연애나 결혼을 하기엔 너무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만옥이’ 누님이 딱 그런 과 같다. <대장부일기> 같은 코미디에 나오든, <첨밀밀> 같은 찡찡한 사랑 이야기에 나오든, <영웅>에서 시원하게 칼부림을 하든, “나 매력 있지 않아요?” 하고 들이대는 거 없이, 부담없이 그 영화에 스르륵 녹아들어간다. 자기한테 남이 맞춰주길 바라는 연인은 정말 피곤하다. 상황 속에 자기를 맞춰주는, 그것도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맞춰주는 센스를 갖춘 연인이 있으면, 하지 말래도 내가 알아서 신발 밑창까지 닦아주면서 그에게 맞춰줄 용의가 있다.

무지하게 많은 작품 리스트를 자랑하는 ‘만옥이’ 누님이지만, 꼭 하나 기억 확실하게 나는 장면은 바로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 사실 여기서 장만위는 <지옥의 묵시록>의 말론 브랜도 마냥 후반부에 잠깐 나온다. 그때 장만위의 모습.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단 몇 분 나오지만, 온갖 체념과 한숨이 꼬깃꼬깃 압축돼 있는 듯한 그 모습…. 그 서글픈 자태만큼은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 있다. 그런데 슬프게도 머리 속에는 그 자태만 남아 있고 정확히 무슨 역할을 했고 무슨 대사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젠장. (그런데 이 글의 주제가 ‘스크린 속 연인’인데 내가 영화 분석할 일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넘어가자.)

김구라/개그맨

1964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따지면 벌써 마흔 둘인가? 요즘 ‘만옥이’ 누님 사진을 보면 조금씩, 그의 얼굴에도 세월이 쌓여간다. 하지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더 숙성되는 얼굴이다. 예쁜 여인보다는, 마치 내 주위에서 부담없이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나왔던 기억이 내게는 더 많으니까, 정말 나이 먹는 것도 부담없이 먹어간다. 아무튼, 나이를 먹어가면서 열정적인 사람보다는 부담없이 편안한 사람에게 더 끌리는 나로서는 편안함에다 우아함까지 묻어 있는 ‘만옥이’ 누님. 딱이다. ‘만옥이’ 누님하고 안면 틀 기회가 생긴다면 “우리 점심 때 자장면이나 먹어요”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누님은 자장면을 먹어도 우아할 것 같다. 입술 주위에 검붉은 자장이 조금 묻어도, 그것조차도 매력일 것 같다.

김구라/개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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