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제 몸을 때린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가상하여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연습하는 것이 섀도복싱이다. 유리창을 노려보며 섀도복싱을 하는 남자. 이쪽에서 훅을 날리면 상대는 피하면서 어퍼컷을 친다. 잽 잽 원투 스트레이트. 창문에 그의 몸짓이 어룽진다. 남자는 자기 자신을 향해 슉슉,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그의 주먹들은 오직 스스로의 몸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명령, 복종, 의리, 복수, 피. ‘조직 사회’야 말로 엄격한 매뉴얼에 의해 지배 되는 곳이다. 선우는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보스를 위해 ‘칠년 동안 개처럼’ 일해 왔다. 개는 충직하고 신실하며 짖기와 핥기, 물어뜯기를 잘 하는 동물이다. 기업형 폭력조직의 이인자이자 호텔 스카이라운지의 매니저인 그는 충직하고 신실하게 짖고 핥고 물어뜯으며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 세계의 규칙 안에서 자신의 삶을 차근차근 다져왔을 것이다. 깽판부리는 양아치들을 다스리고, 보스의 젊은 애인을 미행하며, 침대 대신 소파에서 잠드는 그 남자. 부족한 것은 없지만, 달콤할 것도 없다. 이런 남자도 꿈을 꿀까? 쓰디쓴 에스프레소 속에 흔적 없이 녹아내린 각설탕처럼, 애틋한 꿈.
넘버투인 그의 꿈은 넘버원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뒤에도 그의 삶의 방식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시스템은 공고하고, 결정은 개인의 안위가 아니라 조직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내려진다. ‘조직’ 안에 있는 한 그는 그 세계의 규범을 벗어나는 행동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다. ‘내 것’을 지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치사하고 더럽더라도 머리를 조아리고, 잘못한 게 없을지라도 용서를 빌어야하는 순간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혹시, 그 남자의 은밀한 꿈은, 한번 ‘끝까지’ 가보는 것이 아닐까? 파멸의 기운을 예감하고서라도, 그 어떤 불행과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폼 나게 끝을 밀고 나가는 것. 바닥을 보는 것. 희수와 남자친구가 밀회하는 ‘현장’에서 그들을 극적으로 용서해주는 선우는 아주 잠깐 젊은 신(神)처럼 보인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소하지만, 그것은 그가 조직의 위계와 명령을 어기는 최초의 사건이다. 처음으로 선우는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몰락을 자처한다. ‘잘못했음’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은 파국뿐이다. 그는 가혹하게 추락하여, 비극의 통렬한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달콤한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카이라운지의 선우는 섀도복싱을 하고 있다. 잽 잽 원 투 스트레이트. 보이지 않는 상대가 자기 자신이라는 의미일까? 하지만 기억하라. 그 남자는 정말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의 다부진 주먹이 내리꽂히는 곳은 제 얼굴이 아니라 허공이다. 그것은 다만 섀도복싱일 뿐이고, 그는 아직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