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외설과 예술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2005-04-28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핑크 다큐의 밤’에서 만나는 짜릿한 일본다큐 2편
<아라키멘터리>

‘핑크 다큐의 밤’에서 상영되는, 일본에 관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꽤나 신기하다. <아라키멘터리>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미국의 트래비스 클로스로, 외국인의 관점에서 본 아라키의 세계를 관찰하고 있다. 해외에서 아라키의 사진이 알려진 것은, 주로 ‘결박’된 여성의 신체나 풍속업의 여성들을 찍은 것이었다. 다분히 이국취향의 혐의도 있다. 하지만 아라키의 사진이 단지 센세이셔널한 이미지만으로 승부하는 것은 아니다. <아라키멘터리>에서는 비욕과 기타노 다케시 등 예술가들의 언어를 빌려, 진짜 아라키의 세계를 조명한다. <아라키멘터리>를 보기 전에, 아라키와 지금은 사별한 부인과의 추억을 담은 <동경맑음>을 보고 가면 더욱 좋을 것이다.

<새디스틱 마조히스틱>은 <링>의 감독 나카다 히데오가 연출하여 관심을 끄는, 니카츠 로망 포르노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나카다 히데오는 니카츠에서 조감독 생활을 했고, 그 시절에 로망 포르노의 현장에도 참여했다. 나카다 히데오는 자신이 직접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상자 속의 여자>의 감독 코누마 마사루의 영화세계를 조명하면서, 로망 포르노란 무엇인지를 훑어낸다. 로망 포르노의 거장이라면 쿠마시로 다쓰미, 다나카 노보루, 소네 츄네이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왜 코누마 마사루일까. 나카다 히데오가 함께 작업했던 감독이기에, 당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코누마 마사루가 로망 포르노를 대표하는 감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18년간 오로지 로망 포르노 한 장르의 영화만 찍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망 포르노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분야인 S&M의 세계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로망 포르노의 역사와 함께 그 세계의 극단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로망 포르노 40주년을 기념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코누마 마사루가 선정된 이유다.

<새디스틱 마조히스틱>

로망 포르노가 시작된 것은 1971년의 일이다. TV의 등장으로 휘청한 일본의 메이저 스튜디오 니카츠는 70년대 들어 도산의 위기에 이르렀다. 니카츠는 전속이던 유명 감독과 배우들을 거의 포기하고, 영화 제작도 중단 상태에 이르렀다. 실질적인 파산이었다. 니카츠는 돌파구를 ‘에로’영화에서 찾았다. 60년대에 성행했던 싸구려 핑크영화보다는 3, 4배의 제작비를 들이고, 니카츠의 우수한 스탭과 촬영기재, 세트를 이용하여 고품격 에로영화를 만들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니카츠는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아 ‘로망 포르노’ 제작에 들어갔다. 이미 명성을 얻는 기성 감독들 다수는 에로영화가 저급하다며 연출을 거부했고, 스탭들도 가명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조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 등의 젊은 인재들이 빠르게 감독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니카츠는 메이저 중에서는 유일하게 저예산이지만 1주에 1편 꼴의 대량생산체제를 유지했다. 이렇게 출발한 에로영화들은 70년대를 휩쓸었고, 니카츠 로망 포르노는 일본 영화산업의 주류로 성장했다.

72년 만든 쿠마시로 다쓰미의 <이치조 사유리 젖은 욕정>은 성인영화 최초로 영화잡지 등에서 뽑은 각종 ‘베스트 텐’에 오르며, 로망 포르노의 거센 물결을 알렸다. 로망 포르노의 등장은 에로 영화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켰다. 에로영화가 저급하거나 지루하고 식상하다는 편견은, ‘에로’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로망 포르노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성을 중심에 놓고 인간과 사회, 역사와 우주까지 신랄하고 집요하게 파고든 로망 포르노는 수많은 거장과 걸작을 탄생시켰다. 구마시로 다쓰미, 다나카 노보루 등 성애영화의 거장들이 탄생했고 모리타 요시미쓰, 나카하라 준, 히가시 요이치, 구로사와 기요시, 수오 마사유키 등 80년대 일본영화의 뉴 웨이브를 이끈 젊은 감독들이 로망 포르노로 영화를 시작했다.

<새디스틱 마조히스틱>은 코누마 마사루의 영화를 통해 로망 포르노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당시의 프로듀서와 조감독, 그리고 로망 포르노의 스타였던 타니 나오미와 카자마쯔리 유키 등의 인터뷰를 통해 로망 포르노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년에 열린 일본영화 회고전 ‘사랑과 청춘 1965-1998’에서, 일본 문화청의 데라와키 겐 문화부장은 “야쿠자영화, SF, 시대극 등 다른 장르도 많았으나 동시대 젊은이들의 삶을 그대로 포착한 장르는 로망포르노와 청춘영화였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로망 포르노는 그저 성교 장면을 보여주기 위한, 성적 흥분만을 일궈내기 위한 장르가 아니었다. 코누마 영화의 한 스탭의 말을 빌리자면, 로망 포르노는 ‘인간 마음의 붉은 색과 검은 색‘을 보여주는 장르였다. <새디스틱 매조히스틱>은 로망 포르노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로망 포르노의 얼굴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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