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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광기어린 악역 연기의 진수
2005-05-02
글 : 김송호 (익스트림무비 스탭)

훌륭한 악역은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설득력있는 악역일수록 주인공을 더욱 강조해주고 작품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의 잭 니콜슨이 연기했던 잭 네이피어/조커 역은 작품을 돋보이게 한 악역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카리스마가 너무나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주인공이 시시해보일 정도였다. 배트맨이 검은 갑옷으로 몸과 얼굴을 가리고 기계적이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적을 처단했다면, 조커는 비록 악행을 저질렀지만 자신의 감정과 예술적 재능이 이끄는 본능에 충실했던 지극히 인간적인 악당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어둠 그 자체를 형상화했다고 할 수 있는 배트맨보다도 훨씬 어둡고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바로 조커가 보스인 칼 그리섬을 죽이고 조직을 접수하는 회의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조커는 자신에게 반대한 간부와 악수를 하는 척 하면서 손바닥에 연결된 고압전류로 감전시켜 태워 죽여버린다. 부하들이 나머지 간부들을 데리고 나간 뒤, 석탄처럼 새까맣게 타 버린 시체 앞에서 그가 읊는 독백은 소름이 끼친다. 사람의 살이 탄 매캐한 연기 속에서, 그는 시체의 넥타이를 정리해 주는 척 하다가 주먹으로 턱을 후려갈긴다.

"난 네 놈이 죽어서 기뻐! 기쁘다구!"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조커는 자기 대신 죽어준 누군가를 통해 살아있음을, 자신을 버린 세상을 위해 복수할 수 있음을 미친듯이 기뻐했던 것이다. 이미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통해 광인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바 있었던 잭 니콜슨의 귀기어린 명연기가 빛나는 순간이었으며, 영화 사상 굴지의 악역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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