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인간 대신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공룡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이후,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공룡을 형상화시켜왔다. 화석이나 복원된 골격과 같은 공룡 자체의 흔적은 물론, 그것을 소재로 한 그림, 모형, 장난감 등의 여러 가지 물건들은 사람들의 공룡에 대한 꾸준한 관심의 결과였다.
영화의 장점은 피사체를 눈앞에 직접,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룡 역시 영화의 초창기부터 일찌감치 ‘활동사진’이라는 매체 특유의 매력과 미지의 생물들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그와 동시에 공포)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매력적인 영화감으로 각광을 받았다. 영화 제작자들은 공룡을 화면에 부활시키기 위해 모형을 한 프레임씩 찍어 연결하거나, 아예 배우에게 공룡 옷을 입혀 카메라 앞에 세웠고, 기계 장치를 내장한 로봇에 가까운 모조품을 만들어 작동시키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왔다. 따라서 공룡 영화의 역사는 영화 기술의 역사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1920년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공룡 영화의 고전 <잃어버린 세계> 이후, 영화 제작자들은 당대의 가장 발전된 영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 고대의 생물들을 현재형으로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공룡의 혈액 속에 남아있던 유전자를 통해 공룡을 현대에 부활시킨다는 소재를 다룬 영화 <쥬라기 공원>은 공룡을 스크린에 표현하는 방법에 하나의 전환점을 제시한 작품이다. 이것은 1991년 <터미네이터 2>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시각효과의 혁명적인 결과물을 내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데, 그 2년 후에 공개된 <쥬라기 공원>은 <터미네이터 2>에서 선보였던 금속 재질의 사이보그로부터 더욱 발전하여 살아있는 생명체를 CG로 구현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영화에서 공룡의 모습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목은 공룡 영화는 물론 CG 시각효과 역사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장엄한 음악과 함께 하반신부터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브라키오사우루스는, 피부의 질감과 꿈틀거리는 근육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그 전까지 본적이 없었던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살아있는 공룡을 눈앞에서 처음으로 본 등장인물들의 놀라움으로 가득한 표정은, 바로 동시에 극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던 관객들의 표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등장인물과 관객의 감정이 하나가 된 그 장면에서, 단지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에 불과한 브라키오사우루스의 CG 이미지는 생명의 존재감 그 자체를 표현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