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필성 감독이 <남극일기>를 낳기까진 무려 6년이 걸렸다. 1999년, 무보급 남극 횡단에 도전했다 좌절한 허영호 대장의 다큐멘터리를 접한 뒤 임 감독의 뇌수에 수정된 <남극일기>가 극지(極地)에서 자신의 욕망과 대면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로 태어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거대한 외양을 처음으로 내보이는 <남극일기>를 맛보기에 앞서, 임 감독이 직접 쓴 고통의 촬영일지 일부를 뜯어와 싣는다.
‘Kiwi’-과일 아님. 뉴질랜드 스탭을 부르는 말.
“도대체 영화를 찍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무조건 안된다고 하는 키위들에게 한마디 했더니 통역을 맡았던 (정)원조가 말을 전하지 못하고 훌쩍인다. 6월25일, 마운틴 라이포드. 도달불능점에 다가서는 대원들의 심리적, 육체적 한계가 극에 달하는 듀피크 정상 장면을 찍기 위해 찜 해놓은 곳인데 마지막 헌팅때까지만 하더라도 완벽한 설산이었던 라이포드는 이젠 눈이 녹아 민둥산이 되버렸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징징거릴 수도 없는 일. 산 자락 안으로 파고 들어야 수가 보일 것 같은데, 이놈의 키위들이 장비를 이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력을 끌어올수도 없다면서 배째라는 식이다. 운동을 죽어라 싫어하는 나조차 나서 짐을 옮기겠다고 하는데도 무조건 불가라고 해서 한마디 했더니 원조는 차마 그 말을 전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원조를 대신해 나선 또다른 교포 스탭도 눈물을 보이고, 바통 받은 연출부까지 릴레이로 눈물을 떨군다. 임희철 프로듀서의 얼렁뚱땅 통역으로 상황을 수습하긴 했지만 키위들과 함께 해야 할 앞으로의 행군이 태산 같다.
‘Blizzard’-스타크래프트 제조회사로 오해하지 말것. 20m/s 이상, -12° 이하에 달하는 눈폭풍.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스노우 팜으로 옮겨 촬영을 계속하던 7월28일. 오전부터 안전 및 의료요원 롤프는 앵무새처럼 눈폭풍이 올 것이라고 조잘댄다. 스위스 출신의 롤프는 위급상황 예견에 뛰어나다는 정평을 듣고 있다지만 그의 말을 믿기에 하늘은 너무나 멀쩡하다. 뉴질랜드 스탭들까지 “절라 빨리”라는 말을 배울 정도로 강행군을 거듭했던 지난 한달 동안의 기억을 추스려봐도 눈폭풍이 올 것 같진 않다. 아니, 우린 눈보라가 몰아치고 시야가 흐려지는 화이트 아웃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돌리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마지막 경고를 던진 뒤 저지른 롤프의 행동은 한국 제작진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뉴질랜드 스탭들에게 철수를 종용한 롤프는 나나 정정훈 촬영감독의 허락없이 카메라를 해체하고 사라져버렸다. 내가 자신들을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괴물이란 말인가. 씩씩대는 내게 제작실장인 해리는 스탭들의 안전에 관한 권한이 롤프에게 있다는 말을 반복하지만, 나로선 그동안 어렵게 촬영을 진행해왔던 한 팀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급기야 난 라인 프로듀서인 브리짓에게 롤프의 공식적인 사과와 해명 없이는 그를 해고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내고야 만다.
Toilet-때론 사람보다 화장실이 중(重)하다?
하늘에서 이동식 화장실이 천사가 하강하듯 내려온다. 스노우 팜에서 헬기로 30분을 날아야 닿는 마운틴 가비에서의 촬영은 헬기 수용인원의 문제와 국유지라는 조건 때문에 정예 스탭 20명만이 촬영에 참여할 수 있다. 헬기가 이동식 화장실 대신 메이킹이나 스틸을 맡은 스탭들을 태우고 왔으면 좋았을텐데 싶지만 마음 뿐이다. 환경보호에 목숨 건 키위들에게 그런 부탁은 꺼내봤자 묻지 않아도 단번에 ‘노(NO)’다. 마운틴 가비는 남극 그 자체의 모습을 지닌 최적의 장소다. 3년 전 첫 헌팅 때부터 마음에 품었던 곳이다. 조건은 그러나 넉넉하지 않다. 대원들은 모두 사라지고 민재(유지태) 홀로 도달불능점에서 헤매는 마지막 장면을 담기 위해 3일 동안 40여컷을 몰아찍어야 한다. 주어진 기한은 모두 3일뿐이다. 가능할까 싶지만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소의 1/3에 해당하는 스탭만으로, 언제 어떻게 표정 바꿀지 모르는 날씨 걱정 하면서 찍는데 신들린 듯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유)지태는 어렵지 않게 감정선을 찾아내고, 정정훈 촬영감독을 비롯한 스탭들의 움직임도 섬세하고 기민하다. 자연 그대로, 모든 것이 필름에 기록되는 순간의 짜릿함이 전해져온다. 하루만에 모든 분량을 다 찍다니. 돌아오는 헬기 안에서 꿈이라도 꾼 것 같다. 어둑한 새벽 4시부터 해질녘까지, 변덕스런 날씨 참아내며 하루에도 서너번씩 촬영 세팅을 바꾸면 촬영해야 했던 날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무사>를 찍을 때 김성수 감독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수 십번 이상 헐크로 돌변했던 나 또한 온순해져 있다. 피곤에 곯아떨어진 연출부들을 보면서 내일 아무리 힘들어도 돌아가서 맥주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White Out-눈 표면의 반사광 등으로 인해 원근감이 없어지는 현상. 가끔 인간의 뇌에서도 발생함.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인가. 뉴질랜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어진 국내에서의 세트 촬영. 현실적이면서도 외계와 같은 공간의 느낌을 줘야 하는 남극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가 쉽지 않다. 양수리 제일 큰 세트 안에 100KW 이상의 거대한 조명을 설치해야 하고, 엄청난 양의 소금을 매일 깔아야 하고, 2차세계 대전 당시 가스실을 연상할만큼 스모그를 뿌려야 하고. 게다가 강풍기가 윙윙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지옥이 따로 없다. 누군가는 <남극일기>가 <무사>와 <유령>을 합쳐놓은 영화 같다며 한숨이다. 빠바박! 염분기 때문에 조명기가 터지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조명기 터지면 영화가 대박이라던데. 정말 그럴까? 세트 촬영을 진행하면서 아내인 성민 엄마와 함께 병원에 들렀더니 의사 선생님이 그런다. “당뇨네요”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당뇨. 며칠 전 수원 실내세트에서 밤샘 촬영할 때 콘티를 보고 있는데도 뭘 어떻게 찍어야 할 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더니 급기야 당뇨병 선고를 받은 것이다. 인간의 뇌에도 화이트 아웃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30대 중반이 안됐는데 병원 신세 져야 하는 자신이 한심하다. 병원을 나오면서 스탭들 생각하니 앞이 더 캄캄해진다. 예상했던 것보다 촬영기간이 늘어나 다음 작품 해야 하는데도 스탭들을 붙잡고 있는 형국이다.
Partner-제각각 따로인 듯 해도 항상 곁에 있어 따뜻한 온풍기.
구로자와 아끼라가 자서전에서 말했던 수호천사들이 바로 이들인지 모른다. 시나리오를 같이 쓴(한신 써준 것 제외하면 주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 틀어놓고서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정리했다) 봉준호, 모니터 요원이었던 정윤철 감독을 비롯해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감독 등이 문자를 날려온다. “잘돼? 이젠 그저 악으로 찍는겨!” 촬영에 들어간지 벌써 8개월이 지났다. 김지운 감독은 전화해서 “네가 서울이 남극으로 변할때까지 영화를 찍으려고 한다는 말이 돌고 있어” 하신다. 그래도 이들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내 확신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싶다. 6년전 <남극일기>의 투자가 난항에 부딪쳐 좌초 위기에 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응원군을 자임했던 이들이다. 하긴 가장 든든한 응원군은 (송)강호 형과 지태를 비롯한 배우들, 그리고 묵묵히 대장정에 동참해준 스탭들이었을 것이다. “그건 아닌데요” 촬영 당시 원하는 감정이 나오지 않으면 돌려 말하지 않고 곧바로 내뱉어 버리는 신인감독의 무모한 용기에 “저 뚱감독, 또 저러네” 하는 표정이던 강호 형(얼마 지나자 그는 내게 끙끙대며 돌려말하는 감독의 디렉팅 보다 순간 충격 요법이 더 낳은 것 같다고 해줬다). “뉴질랜드 방식, 한국 방식 그런게 뭐가 중요하냐. 우린 그저 좋은 영화 만들려고 여기 모인 것 아니냐”며 제작진을 다독이던 정정훈 촬영감독. 1백여명의 배우들과 스탭들의 얼굴이 남극의 오로라를 배경으로 한명씩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