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은 중고교 교사였다. 그래서 영화를 보더라도 다른 어떤 소재보다도 선생님이나 교육에 관한 작품에 우선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영화의 궁극적 지향이 무엇이든 간에 교사와 학생 간의 인간적 소통을 다룬 것이라면 내 경우는 무조건 감동의 일순위에 올랐다. 멀리 따지면 ‘명화극장’의 단골이었던 시드니 포이티어 주연의 1967년작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 있고, 가깝게는 키팅 선생을 시대의 영웅으로 만든 1989년 <죽은 시인의 사회>, 1995년의 <위험한 아이들>과 <홀랜드 오퍼스> 그리고 1999년의 <뮤직 오브 하트>를 잊을 수 없다. 이런 선생님 영화들은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출렁인다.
올해도 음악선생 클레망 마티유의 교육열정을 그린 프랑스영화 <코러스>가 더해졌다. 마티유가 대머리에 뚱뚱하고 지극히 평범한 얼굴의 소유자라는 점, 그 외모에 있어서 나와의 유사성은 한층 영화에 나를 깊숙이 잠기도록 해주었다. 선생님 영화에 전폭적 애정을 투사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이상하게도 그런 영화에서 유난히 음악의 여운이 짙다는 것이다.
<언제나 마음은 태양>에서 가수 루루가 부른 ‘투 서 위드 러브’는 골든 팝송이며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앤드류가 책상 위로 올라서 ‘캡틴 오 마이 캡틴!’하는 절정의 순간을 적신 모리스 자르의 음악은 가히 스코어 최고봉이다. 심지어 시시하고 밋밋했던 <위험한 아이들>에서도 래퍼 쿨리오의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는 빛을 발했다.
<위험한 아이들>은 거의 유일하게 여선생 주연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셸 파이퍼의 이미지가 교사와 어울림을 빚어내지 못해 두고두고 아쉬웠다. 극중 여선생님과 애정으로 접속할 절호의 찬스가 그만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 뒤 ‘왜 여자 선생님을 다룬 영화가 적은 것일까’ 하는 괜한 불만이 쌓여갔다.
우악스러운 잭 블랙이 주연인 <스쿨 오브 락>(2003년)은 드디어 영화가 내게 연인을 하사하는 반전의 장이었다. 물론 그 대상이 잭 블랙은 아니다. 아직 그럴 용기는 없다. 주인공은 그가 보결교사로 들어간 초등학교의 교장 멀린스 역의 조앤 쿠삭이다. 영화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잭 블랙 모노드라마나 다름없어 사실 그는 조연에 불과하지만, 조연을 좋아하는 것은 주연보다 남들에게 때론 괴팍할 수도 있는 취향을 들킬 염려가 적어 안심이다. 여기서 조앤 쿠삭은 전에 출연했던 영화들 <런어웨이 브라이드>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보여주지 못한 지극히 아늑한 표정을 보여준다. 그 표정만으로 나한테 영화는 이미 끝났다. 그는 잭 블랙의 엉뚱한 실험을 막아야 하는 위치지만 속내는 이해하고 끝내는 허락하며 교장으로서 ‘강’과 인간으로서 ‘약’을 동시에 그려낸다. 그런 퓨전 캐릭터가 흔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잭 블랙을 마음만 먹으면 순간에 날려 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그에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난 쾌재를 불렀다.
특히 호프집에서 둘이 맥주를 마시는 대목에서 이런데 처음이라면서도 잭 블랙이 틀어준 노래 스티비 닉스의 ‘에지 오브 세븐틴’에 맞춰 흥겨워하는 표정은 실로 압권. 아마도 락 팬들은 락의 승리를 맛보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겐 그 이전에 고매한 여성을 흔드는 평범한 남자의 승리였고 또한 나의 승리였다.
주변 사람들한테 조앤 쿠삭의 인상에 대해 물었더니 백이면 백 ‘존 쿠삭의 누나 말하는 거죠?’라는 단순사실을 들이대며 시큰둥한 반응들이다. 고평은커녕 동의를 못 얻은 것이 가슴 아프냐면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다행이다. 나만이 그녀를 독점적으로 바라보고 상상의 영토로 초대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