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못본 장면]
<세븐> 미공개 오프닝
2005-05-13
글 : 김송호 (익스트림무비 스탭)

관객들은 강하다. 그들은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중에 극장을 나가버리거나 가차 없이 리모콘을 휘둘러 TV를 꺼 버린다. 하지만 첫 장면이 근사하다면 관객들은 기대감을 접기보다는 ‘조금 더’를 속으로 외치며 난동을 부리는 타이밍을 늦추거나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첫 장면이라는 것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관객들을 짧은 시간 안에 영화에 몰입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가 그 영화의 성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많은 영화들이 자극적이고 동적인 첫 장면을 통해 불과 몇 분 만에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극장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기 위해 기를 쓴다.

그러한 의미에서 <세븐>의 첫 장면은 오히려 너무나 잔잔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지는 경우다. 조용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서머셋 형사(모건 프리먼)를 보여주면서 시작하는 이 장면은 관객들이 ‘이 영화엔 뭔가 있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DVD에만 수록된 <세븐>의 삭제 장면 가운데 미공개 오프닝이 있다. 어둠에서 서서히 밝게 페이드 인 하는 것은 우리가 극장에서 본 바와 같지만, 여기서는 창가의 커튼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어두컴컴한 실내다. 이 장면에서, 서머셋은 새 집을 고르고 있다. 살풍경하고 벽지가 벗겨져 내리는 집의 내부를 그는 천천히 둘러보다가 꽃이 그려진 벽지의 한 부분을 잭나이프로 도려낸다. “어디 문제라도...?” 라고 묻는 부동산 업자에게 서머셋은 “뭔가... 좀 이상하네요.” 라고 답한다. “손을 좀 보긴 해야 겠지만, 아주 평범한 집이랍니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오.”

약간은 선문답같은 이들의 대화와 어딘가 붕괴 또는 쇠락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풍기는 집은 <세븐>이 어떤 영화가 될 것인지를 아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도시 생활에 환멸을 느끼는 서머셋은 계속해서 도피를 꿈꾸고, 그것이 황폐한 집 안에서 그나마 달라 보이는 벽지의 꽃이 암시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영화를 다시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이러한 서술 방식은 <세븐>의 매력(?)이기도 하다.

선택하여 들을 수 있는 감독의 음성해설에서는 이 집 장면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 자체로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는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썼다면 과연 더 좋은 영화가 나왔을 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하지 못한다. 그만큼 관객의 반응을 고려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줘야만 하는 감독의 일이라는 건 쉽지가 않다.

참고로, 이 집 장면이 끝나면 너무나도 유명한 크레딧 시퀀스의 초안이 흐르고, 극장에서 본 오프닝이 편집 순서가 약간 뒤바뀐 채 이어진다. 스토리보드와 함께 멀티 앵글로 대조하여 감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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