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왔으되, 여름이 아니다. 10주 연속 입장수입과 관객 수가 2004년에 미치지 못해 울적했던 할리우드가, 여름 흥행 시즌의 개막작 <킹덤 오브 헤븐>마저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11주 연속 전년에 미달된 성적을 기록하자 웅성거리고 있다. 5월 첫주 1위로 데뷔한 <킹덤 오브 헤븐>의 미국 내 개봉 주말 수입은 2천만달러. 해외시장에서는 5600만달러를 벌며 선전했으나, 순제작비 1억4천만달러를 들인 영화로서는 실망스러운 흥행이다. 이로써 미국 관객은 <알렉산더> <킹 아더> <트로이>에 이어 서사극 블록버스터에 또 한번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영화 흥행 집계 전문회사 이그지비터 릴레이션에 따르면 5월6일 주말 박스오피스 톱 12위 영화들의 수입 총액은 7700만달러로, 최근 5년간 5월 초 성적 중에 최악의 흉작이다. 이에 자연스럽게 DVD와 게임 등 홈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융성이 극장의 위기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종말론적인 진단도 일부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업계지 <버라이어티>는 이같은 세간의 우려가 호들갑이라고 냉정히 일축했다. 반론의 근거는 비교 대상이 된 2004년 이즈음의 기록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난데없는 성공작에 힘입은 수치라는 것. 5월 초 기준 2005년 박스오피스 총수입은 26억달러로 작년 동기의 28억달러에 뒤지지만, 2004년의 수입 28억달러 가운데에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3억6700만달러가 포함돼 있다. 더구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실적은 수십년간 극장을 찾지 않았던 ‘예외적 관객’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서, 시장의 추세를 저울질하기에는 적당한 잣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같은 시기 미국 전 지역에서 넓게 개봉한 영화의 평균 흥행을 집계해보면 2005년 영화들은 편당 48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려 지난해 전미 개봉작의 4500만달러(<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빼면 3600만달러)를 앞질렀다고 <버라이어티>는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2005년 여름이 실망스런 출발을 보이고 있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다만 개별 영화들의 만족도 문제일 뿐 박스오피스의 거시적 위기를 논할 때는 아니라는 의미다. 전미 극장주연합의 존 피시안 회장도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0년간 총관객 수는 인구보다 높은 증가 추세다”라는 말로 극장 도태론에 근거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지금 할리우드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분위기를 쇄신할 홈런 한방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할리우드가 5월19일 개봉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가 타석에 들어서기를 어느 때보다 조바심내며 기다리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