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칸영화제를 둘러싼 ‘외곽’ 분위기는 이상할 정도로 평온하다. 축제를 알리는 영화제 포스터와 함께 거의 매번 크루아제트 거리에 등장했던 5월의 정치적 구호가 올해는 보이지 않는다. 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파업을 외치는 격렬함도 찾아보기 힘들다. 행사저지와 보이콧의 대상으로 정치적 몸살을 앓았던 칸은 적어도 올해만큼은 무난한 시작을 보였다. 오히려 영화제쪽이 나선 정치적 구명운동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영화제 주상영 건물인 팔레 드 페스티벌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세 명의 사진. 지난 1월5일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된 프랑스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 기자 플로랑스 오브나의 구명을 위해 영화제가 배려한 것이다. 그녀의 통역자인 후세인 하눈과 다른 곳에서 납치된 스페인 기자 잉그리드 베탕쿠르의 모습도 같이 걸려 있다.
개막작 <레밍>의 감독 도미니크 몰은 플로랑스 오브나와 후세인 하눈의 사진을 가슴에 붙이고 레드 카펫을 밟아 구명 운동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라크-쿠르드 출신 감독 히네르 살림의 <킬로미터 제로>를 개막일 상영작에 포함시킨 것이 어떤 제스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개막이 선포되고, 스크린이 걸리는 그 순간부터 여기는 오직 영화를 둘러싼 모든 곳이 된다. 일년 동안 칸에서 열리는 모든 국제행사 수익액의 7분의 1인 110밀리언유로(약 1430억원)를 단 12일 만에 시 정부에 안겨주는 거대한 규모의 상업적 메카. 전세계의 기자들을 한꺼번에 불러모으는 엄청난 매스컴 시장. 현존하는 최고의 거장들이 순순히 초청에 응하는 영화예술 척도의 가늠장. 영화가 하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종횡으로 통합하는 이곳 칸에 5월11일 드디어 레드 카펫이 깔렸다.
조용한 개막식, 뜨거운 경쟁작 라인업
개막식 행사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일찌감치 장사진을 치고 스타 감독과 스타 배우를 보기 위해 기다렸던 취재진과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결과였다. 에미르 쿠스투리차, 샐마 헤이엑, 하비에르 바르뎀, 오우삼 등 심사위원단을 비롯하여 카트린 드뇌브, 샤를롯 갱스브르, 샬롯 램플링 등 프랑스 주요 배우들이 자리를 빛냈지만, 나머지 경쟁부문 초청작 관련 감독과 배우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심사위원장 에미르 쿠스투리차는 예의 그 기이한 말재주로 “마침내 제가 대장(심사위원장)이 됐네요. 오늘밤 제 이름은 영화입니다”라고 소개하면서 개막장의 분위기를 달구었다. 한편, 이례적으로 개막작이자 경쟁작으로 선정된 <레밍>은 프랑스에서 제작된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과 아르누/장 마리 로리에의 <황금 그리기 또는 사랑 나누기>와 함께 이번 경쟁작 중 프랑스영화를 대표하는 첫 신호탄이었으나 그다지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우리에게) 눈에 띄는 개막일 풍경은 한국영화 김기덕의 <활>이다. 수십명의 ‘대기자’들은 끝내 닫히는 상영관 문을 보며 아쉬움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270석 규모의 작은 소극장이기는 했지만, 그의 인기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온화한 정치적 분위기, 썰렁한 개막식 풍경에 비해 경쟁부문 초청작들에 관한 이야기는 예년 어느 해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대가들의 여행”(<리베라시옹>), “대가들의 귀환”(<르몽드>) 혹은 예술감독 티에리 프레모의 표현처럼 “레알 마드리드 같은 스타계”라는 말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떠돌고 있다. 영미권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 역시 “이번 영화제의 경쟁 라인업은 크루아제트 룰(칸 패밀리를 우대하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을 엄청나게 강조한다. 그들 중 몇명은 여섯번이나 일곱 번째 정도의 귀환인 셈”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종전의 수치를 경신한 전체 85개국 1325편(전년 대비 16.2% 증가)의 출품작들 중에서 선택된 영화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저 근사한 제목짓기를 위해서 나온 말만은 아니다. 말 그대로 거장들이 돌아온 것이다.
구스 반 산트부터 허우샤오시엔까지 거장들의 행진
이런 말이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이미 황금종려상을 가져간 경력이 있는 감독의 신작이 네편이나 포진되어 있다. 구스 반 산트의 커트 코베인 생애를 소재로 한 <라스트 데이즈>, 라스 폰 트리에의 미국 3부작 중 두 번째 <만달레이>, <로제타>로 이름을 알린 다르덴 형제의 <아이> 그리고 영원한 칸 고참 빔 벤더스의 성찰적인 영화 <두드리지마>. 만약 <씬 시티>의 일부 시퀀스를 연출한 쿠엔틴 타란티노까지 포함한다면 다섯명이 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황금종려상을 두 번째 받는 감독은 누가 될까를 놓고 벌써부터 저울질을 하기도 한다. 황금종려상 수상자가 아니더라도 <최호적시광>의 허우샤오시엔, <망가진 꽃들>의 짐 자무시, <진실이 있는 곳>의 아톰 에고이얀, <히든>의 미카엘 하네케, <폭력의 역사>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등도 이미 주요 경쟁부문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감독들이다. 게다가 <리베라시옹>이 표현한 것처럼 “칸에 의한, 칸에서의 승진을 혜택으로 입은” 감독들도 무시할 수 없다. <천국의 전쟁>의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한번 태어난 이상 숨을 곳은 없다>의 마르코 툴리오, <극장전>의 홍상수 등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경향은 2003년에 6명, 2004년에 12명의 감독이 처음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아마도 지난해 수상작 선정 결과와 그 이후의 일부 부정적 평가에 대한 영화제의 방향 선회일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화씨 9/11>은 영화적 완성도와 상관없이 정치적 명분 혹은 그것을 위한 센세이셔널리즘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올해는 그런 민감한 정치성으로 밀어붙이는 영화가 없다. 무엇보다 예술감독 티에리 프레모가 실세가 되어 이끌었던 지난해 선정결과에 대한 반성이 들어있는 듯하다. 복안으로 거장들의 작품, 그것도 칸영화제와 밀접한 혈맹을 맺고 있는 감독들의 신작으로 빼곡히 경쟁작을 채워넣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홍상수의 <극장전>이 극적으로 막차를 타고 21번째 경쟁작으로 참여하게 된 것도 크게 다른 맥락은 아니다.
심사위원장 쿠스투리차, 타란티노와 얼마나 다를 것인가
<리베라시옹>은 “이번 선정은 지난해처럼 현실과 발을 맞추었다기보다 픽션에 중점을 맞추었다. 영화제가 지난해의 선정과 황금종려상 수상 결과를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지난해의 황금종려상은 정치의 포로 특히 얼마 남겨 두지 않았던 미국 대선의 포로였다. 올해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현실을 풍자하는 애니메이션은 없다. 진정으로 작가들에게 다시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는 지난 몇년 중에서 칸이 (가장) 잘한 일이다”라고 적는다. 이 말처럼, 칸 혈맹에 대한 우대를 발판으로 거장들에게 기대고 있는 면면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선정된 작품들의 면면에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에미르 쿠스투리차는 수상작 선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미적 기준이다”라고 못박았다. 그 말은 지난해 쿠엔틴 타란티노도 했던 말이다. 그렇다면 58회 칸영화제는 정치와 개인적 취향에 상관없이 미학의 기준이 힘을 발휘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달리 말해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미적 기준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미적 기준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들리는 말에 의하면 심사위원으로 에미르 쿠스투리차가 결정되면서 몇몇 심사위원 위촉자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그 자리를 거절했다는 후문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올해의 칸은 영화의 미학적 심미안이 화두가 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양복과 드레스로 격식을 차린 영화인들과 슬리퍼에 웃통을 벗고 개를 안은 채 사진기로 무장하고 그들을 보는 대중. 개막식의 교차하는 한 풍경은 격식화된 행사와 노골적인 대중적 시선이 교묘하게 얽혀 축제를 이루는 칸영화제의 일면을 드러낸다. 거기에서 영화의 미학은 어디쯤 자리하게 될 것인가?
개막작 <레밍> 감독 도미니크 몰 인터뷰
“나는 히치콕을 숭배하는 사람 중 하나”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도미니크 몰은 촉망받는 프랑스 젊은 감독 중 한명이다. 이번에 출품한 영화 <레밍>은 칸에 온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 <해리, 그가 돕기 위해 여기 있다>(Harry, He Is Here to Help)에 출연했던 배우 로랑 뤼카가 다시 주인공을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샬롯 램플링과 샤를롯 갱스부르도 출연했다. 평안한 젊은 부부의 집에 직장 사장의 부부가 저녁식사를 하러 오고, 갑자기 스칸디나비아에만 서식한다는 쥐의 한 종류인 레밍이 집 안에서 발견되면서 기이한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현실과 환상 어디쯤으로 이야기가 끌려들어가 스릴러가 된다. <레밍>은 도미니크 몰의 작품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인 동시에 프랑스영화의 한 경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례적으로 경쟁작으로 개막작에 선정됐다.
-2000년에 <해리…>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칸에서는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상을 못 받은 것에 원한은 없는가.
=(웃음) 전혀. 내게 중요한 것은 전세계에서 온 미디어와 언론의 반응이다. 다른 영화들과 경쟁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여기서 소개된 것만으로도 기쁘다.
-전체적으로 어둡다. 하지만 마지막 신처럼 아주 평온한 장면들도 있다.
=마지막 신은 영화를 끝내기 위한 괄호 같은 것이다. 목가적인 풍경 속의 부부를 보여주지만 마지막에는 여주인공의 사진으로 끝이 난다. 또한 이 장면은 앞부분의 악몽 같은 신들에 악센트를 부여한다. 이제 그들은 안전한 상태에 놓여 있지만 아직 뭔가가 남아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부엌에서 레밍들이 몰려나오는 장면은 히치콕의 <새>를 연상시킨다. 히치콕에게 영향받은 것이 있나.
=히치콕은 여자를 싫어했지만 나는 아니다. (웃음) 나는 그를 숭배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영화학교에서 그의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신이 이 영화에서 히치콕과 나와의 유사성을 느꼈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에는 캘리포니아가 배경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프랑스의 한 지방(Bel Air)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부부의 집이 있는 동네는 미국의 교외 주택가와 유사하다.
=어느 정도의 중립성을 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남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면 건물의 모양으로도 어딘인지를 금방 알게 된다. 이런 일이 어디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어디라도 상관없는 장소를 택하려 했다. 그래서 툴루즈를 배경으로 했지만 거기서 촬영하지는 않았다. 인물들의 성도 영국이나 미국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