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결코 사로잡을 수 없는 야성의 관능, 안젤리나 졸리
2005-05-19
글 : 오정연

호화로운 드레스가 아닌 무시무시한 문신으로 몸을 감싼 은막의 스타를 떠올려보라. 화려한 보석보다는 흑표범을 액세서리 삼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라고 말하는 아리따운 여배우는 어떤가. 작품마다 함께 출연하는 남자들과 염문설을 뿌리면서도 입양한 네살배기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당당한 이 여자. 언제나 예측불허로 자신의 욕망을 따르지만,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서 망설임 없이 돌진하는 안젤리나 졸리. 이 우아한 비행의 주인공은 추락을 모르는 눈부신 날개를 지녔고, 땅에 발붙인 우리는 스크린 안과 밖을 누비는 그 행보에 어김없이 매혹당하곤 했다.

물론 평범한 우리는, 그 단호한 아름다움에 두려움과 비난, 오해로 응수하기도 한다. “안젤리나의 입은 남편들을 빨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남자킬러(man-eater) 안젤리나, 부주의한 남편들과 단기 작업에 들어가다”. 신작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 함께 출연한 브래드 피트와의 염문설로 연일 타블로이드 신문을 장식하고 있는 안젤리나 졸리를 향한 악의 섞인 표현들이다. 재밌는 것은 제니퍼 애니스톤과 피트의 오랜 결혼생활을 마감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이들 부부 중 그 누구도 아닌 졸리가 꼽힌다는 사실. 이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고, 진위를 알 수 없기에 더욱 흥미진진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연애행각보다도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뱀과 함께 살면서 아들을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희생도 불사하는 위협적인 어머니 올림피아스(<알렉산더>)에 대한 본인의 설명으로 짐작건대, 이른바 ‘나쁜 여자’의 낙인은 졸리에게 별다른 상처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그런 여자에게 끌린다. 그는 만인의 연인이 아니고 다소 음침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의 모습을 존중한다.”

일찌감치 모두의 사랑을 받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한 직선코스를 택하는 그녀들. 이것이 그간 졸리가 이끌렸던 영화 속 인물들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완벽한 여전사(<툼레이더>)부터, 거침없이 하늘을 누비지만 알 수 없는 과거를 간직한 애꾸눈 사령관(<월드 오브 투모로우>)까지, 하다못해 그가 목소리를 빌려준 물고기조차 바보스런 남자주인공을 유혹하는 위험한 요녀(<샤크>)였다. “내가 택하는 모든 역할들이 나에겐 치료요법”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한 남자를 향한 사랑에 목을 매거나, 끊임없이 이용당한 뒤 버림받는 비운의 주인공 따위는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선택이다. 평범한 이름의 대명사격인 ‘스미스’라도, 졸리에게 붙여진다면 예사롭지 않다. 개봉을 앞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는, 남은 건 권태밖에 없는 듯 보이는 스미스 부부, 그러나 알고보면 냉혹한 킬러로 화려한 이중생활을 즐기던 부부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게 되는 내용의 로맨틱 액션 스릴러. 영화에 대한 그의 해석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영화의) 모든 것들이 결혼에 대한 은유다. 사람들은 흔히 배우자에게 ‘죽여버리겠어’(웃음)라든가 ‘당신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어’라고 말하지 않나. 부부는 종종 그렇게 극단적이 된다.”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어 보이는 졸리의 완벽한 이미지는 끝없는 난민구호활동가와 독특한 모성으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자신의 비행기를 타고 전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는 비행사의 모습을 통해 좀더 입체적으로 마무리된다. 할리우드 스타의 화려한 삶과 자선 혹은 난민구호활동을 보란 듯이 병행하는 그는, 한때 유엔 친선대사로 온갖 내전지역을 활보했다. 최근에는 서아프리카 내전의 생존자를 만나기 위해 시에라리온으로 여행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런가 하면 졸리는 현재, 두 번째 남편 빌리 밥 손튼과 함께 입양한 캄보디아 출신의 아들 매독스를 홀로 양육하고 있다. “아이가 생기고 난 뒤부터는 매년 더 나은 크리스마스를 궁리하게 됐다. 지난해에는 아이와 함께 피라미드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나는 매년 아이를 새로운 어딘가로 데려갈 생각이다.” 올해는 어떤 크리스마스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그의 고민은, 그가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기이한 엄마인지를 보여준다. 익숙한 무언가로 정의될 수 없고, 평가와 재단을 거부하는 그 모습은 세상 어떤 그물에도 포획되지 않는 야생동물 같다. 배우로서 몇번의 부침을 겪더라도 혹은 그렇고 그런 염문설로 지독한 입방아에 오르내리더라도, 심지어 장성한 아들이 그의 품을 떠나더라도 그는 고개를 꺾지 않을 것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를 빌리자면, ‘야생동물들은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는 법’이다.

사진제공 이십세기 폭스사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