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일 영화의 제작현장을 보고 싶었다. 숨차 지칠 때까지 끌고다니다 덩그렇게 남겨두고 떠나버리는 그의 하드보일드 액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피와 뼈> DVD에 수록된 메이킹 필름에서 드디어 그 현장을 보았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영화만큼 열정적이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성격이 불같다는 평을 듣는 그가 확성기를 던지고 급기야 스탭을 때리는 장면까지 담겨 있으며, 주연을 맡은 기타노 다케시는 그런 분위기에선 연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다. 최양일 영화의 아우라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1923년부터 1984년에 이르는 연대기 <피와 뼈>는 욕망에 충실했던 남자의 황량한 마음으로 향한다. <피와 뼈>를 쓰고 연출하고 연기한 자들은 야만의 본질을 꿰뚫어보면서 그것이 진정 야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도록 했다. 그 결과물은 노는 양이 참 같잖은 영화들과 달리 진짜 폭력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악당은 반드시 죽어야 하기에 주인공 김준평의 죽음은 시작부터 예고되지만, 이 야만스러운 인간에게 이상할 정도로 연민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피와 뼈>의 힘은 김준평에게 일종의 악마적인 숭고함을 부여하는 데서 나온다. 김준평이란 이름의 야만이 폭력이란 수단을 통해 주변인들을 희생시키는 과정은 제의와 같아서, 그의 투쟁은 단순한 폭력이 아닌 일종의 성스러움을 이끌어내게 된다. 우리는 턱을 덜덜 떨면서 그의 죽음을 뚫어져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야수가 죽음을 맞이한 뒤에도 안도의 감정이 생기질 않는다. 게다가 이곳이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하는 곳이라면, 그는 언제고 우리 옆에 불쑥 나타날 것 아닌가. 그의 죽음이 결코 슬픔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되며, 부활의 염이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원작자인 양석일은 아버지에 대해 ‘증오는 없다. 애정이 있다. 하지만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자연스럽게 잊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존재임은 분명하다’라고 기억했다. 김준평을 바라보는 우리의 복잡한 심정도 마찬가지다. 최양일은 묵직한 드라마 <피와 뼈>의 전후에 나른하고 사랑스러운 <형무소 안에서>와 <퀼>을 연출했다. 지친 건지, 짧은 휴식인 건지, 아니면 변화의 조짐인지, 궁금한 게 다시 생겼다.
지적받아 마땅한 일부 자막의 오류 외엔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DVD다. 부록으론 메이킹 필름, 배우 인터뷰, 스탭을 중심으로 만든 밀착 다큐, 방한 기록 등이 제공된다. 한국에서 첫 출시되는 최양일 영화의 DVD로 합격점을 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