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히치콕 전성기를 열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2000-04-04
글 : 홍성남 (평론가)

인물들이 스크린의 평면을 뚫고 나오는 듯한 환영을 주는 3-D 테크놀로지는, 1897년에까지 거슬러갈 만큼 오랜 발전의 역사를 가진 것이었지만, 그 혁신의 절정기는 주지하다시피 50년대 초·중반이었다. 그것은 관객 수가 줄고 텔레비전의 위협이 등장하던 당시 관객을 영화관으로 다시 끌어 모으려는, 일종의 이미지 향상의 시도였던 것이다. 모든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손을 댔던 이 ‘획기적인’ 테크놀로지는 그러나 단지 진기한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그 유행은 대략 52년에서 54년까지 3년도 채 지속되지 않는 일시적인 것으로 그쳤다. 3-D라는 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과거의 역사 속에서나 언급되는 범작들이었지만, 아마도 앨프리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거장의 손길은 테크놀로지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것일까? 히치콕의 이 영화는 당시 가장 성공을 거둔 3-D 영화 가운데 한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완성도만을 놓고 봤을 때도 수작임에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다이얼 M을 돌려라>는 거짓말, 기만, 위협, 살인 등의 모티브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전형적인 ‘히치콕 영화’다. 토니라는 인물이 이 이야기의 치명적인 음모의 주동자. 부인인 마곳이 미국인 극작가 마크와 외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부인을 살해해 그녀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계획을 세운다. 그 실행의 일 단계는 자기 대신 살인을 대행할 사람을 물색하는 것. 고등학교 동창인 스완이 곤혹스런 비밀을 감추고 있음을 알아낸 토니는 비밀 누설과 사례금을 미끼로 스완을 살인 거사에 끌어들인다. 이제 치밀하게 짜인 토니의 사전 계획은 단지 실행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곳을 살해하려던 스완이 오히려 마곳이 집어든 가위에 찔려 죽게 되면서 사건은 예상 밖의 진로를 밟아나간다.

히치콕의 카메오 출연이 언제 어떤 식으로 나올지 눈여겨보는 것이 그의 영화에 잔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웬만한 영화팬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 다이어트 광고에 얼굴을 잠깐 내민 <라이프 보트>(1944)의 경우와 유사하게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히치콕의 얼굴은 토니가 보여주는 동창 모임 사진 속에 등장한다. 이건 아마도 이 두 영화 모두, 히치콕이 잠깐이라도 모습을 보여줄 틈이 없을 정도로, 전적으로 협소한 공간 속에서만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일 듯 싶다. 과연 <다이얼 M을 돌려라>의 행위 공간은 <로프>(1948)와 비슷하게 토니의 저택 내부로 거의 한정되어 있다. 그 단일 공간 안에서 이미 살인 계획이 알려진 사건이 진행된다는 것은 다분히 연극적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한 자칫하면 애당초 흥미를 상실케 할 위험마저 있다. 하지만 히치콕은 치밀한 플롯의 짜임새와 정교한 프레이밍으로 그런 잠재적인 위험들을 돌파해 가는 묘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프레데릭 노트의 동명 희곡을 영화화한 이 미스테리 실내극은 36일이란 짧은 기간에 촬영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히치콕 자신은 이렇듯 속성으로 찍은 이 영화에 대해 별로 할 얘기가 없다고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재충전을 할 양으로 쉽게 만들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다이얼 M을 돌려라>가 히치콕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이 영화의 성공이 1954년작 <이창>으로 시작하는 그의 전성기로 이월할 여유를 주었고 그레이스 켈리라는 히치콕의 이상적인 블론드와의 첫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배우 그레이스 켈리

우아하다면 그녀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매력의 대명사 그레이스 켈리(1929∼1982)는 참으로 영화계의 공주라는 별칭을 전혀 무색하게 만들지 않는 그런 여배우다. 이건 그녀가 스크린에서 발산하는 영화 속 이미지라는 측면에서도, 그리고 실제로 모나코 국왕의 부인이었다는 점에서도 타당한 것이다.

내적인 정열과 외적인 차가움 사이의 패러독스를 체현한 켈리는 또한 앨프리드 히치콕이 선호한 이상적인 금발 미인이기도 했다. 켈리는 히치콕과 세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다이얼 M을 돌려라>이다. 이어 그해 그녀는 <이창>에서 제임스 스튜어트의 상대역을, 그리고 다음해에는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 1955)에서 캐리 그랜드와 짝을 이뤄 출연했다. 결혼 뒤 은막에서 은퇴했던 켈리는 62년에 히치콕의 <마니>(1964)에 주연을 맡으면서 할리우드로 돌아올 것이라고 공표했다. 하지만 모나코의 국민들은 공주가 도둑 역을 맡는 것도, 그리고 숀 코너리와 로맨스에 빠지는 역을 연기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결국 나중에 켈리는 그 프로젝트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고 결코 다시는 연기 세계로 돌아오지 못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브로드웨이에 먼저 발을 디딘 켈리가 첫 출연한 영화는 <14시간>(1951). 이 단역을 시작으로 그녀는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1952), 존 포드의 <모감보>(1953)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뒤 히치콕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그녀의 다른 대표작들로는 <상류 사회>(1956) <백조>(1956) 등이 있다. 82년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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