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쉬리>가 일본에서 대히트한 두세 가지 이유
2000-03-21
글 : 데루오카 소조 (영화평론가)
일본평론가가 본 <쉬리>

가까운 나라, 미지의 감성

올해 1월22일 일본에서도 개봉한 <쉬리>는, 한국영화를 일본에서 개봉하는 상식적인 방식(일단 도쿄의 1개관에서 상영하고, 그 다음에 다른 주요 도시에서 1개관씩 공개)을 뒤집으면서 전국 동시공개, 즉, 할리우드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개봉하여, 관객동원에서도 같은 시기 할리우드영화들을 앞서는 등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성공은, 일본에 앞서서 지난해 11월에 공개된 홍콩에서도 실현됐다.

<쉬리>가 파격적인 대성공을 거둔 두곳의 외국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쉬리>보다 먼저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개봉했다는 것이다. 반면,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개봉하지 않았던 대만(타이베이영화제에서는 상영됐다)의 경우, <쉬리>가 일본이나 홍콩처럼 기록적인 대히트를 하지 못했다. 또한 홍콩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 이전에 개봉했던 강제규 감독의 데뷔작 <은행나무 침대>는 그다지 히트하지 못했다. 적어도 일본에서 <쉬리>에 앞서 <8월의 크리스마스>가 공개됐다는 점은 큰 의의가 있다.

그것은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일본인에게, 이제껏 알려져 있지 않았던 새로운 영화왕국의 존재와 그 감성의 유사함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영화는 옛날부터 임권택, 이장호 감독의 작품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이 일본에서 공개되긴 했다. 또한 최대규모의 행사로 96년에 개최된 ‘한국영화제 1946∼1996’이 있었다. 그것은 전후 50년 동안의 한국영화 역사를 약 80편의 작품으로 회고한 충실한 기획이었으나, 거기서 소개된 최신 극영화는 박종원 감독, 안성기 주연의 <영원한 제국>이었다.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제외하면, 60년 이전에 태어난 감독의 작품들만으로 프로그램이 채워져, 상영작 그 어느 것에도 한석규나 심은하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98년, 우리는 갑자기 <8월의 크리스마스>를 알게 됐다(개봉은 99년 여름이었지만, 그전에 ‘아시아 포커스 후쿠오카영화제 1998’에서 상영됐다). 동시에 거기서 주연을 한 한석규와 심은하가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명실공히 톱 배우로서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국영화제’가 열린 96년부터 불과 2년. 그 사이 한국영화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혁명이라도 일어난 듯한 상황의 격변에, 사람들은 한국영화의 현재에 대해서 흥미를 많이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격변을 느낀 것은, 감독이나 스타의 급격한 세대교체에 대해서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상으로 작품 자체의 격변을 느낀 것이다. 이제까지 일본의 많은 사람이 품고 있던 한국영화에 대한 이미지는, 격렬한 한, 슬픔, 투쟁심, 정 등의 표현, 그리고 에로틱한 성 등이었다. 그리고 그런 격한 감정이나 에로스에 대해서 사람들은 때로는 거리감,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훌륭하게도 그런 것이 없다. 뭐야, 한국인의 감각이 우리와 거의 같잖아. 그것은 일본 관객으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신선한 발견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일본영화 중에서도 가장 일본적이라고 말해지는 오즈 야스지로 작품에 견주어서 평가했던 것이다(한편 홍콩에서는 한국판 <러브레터>라고 형용됐다).

우리의 바로 이웃에, 우리와 가장 가까운 감성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것을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충격. 그리고 위화감, 거리감만이 이미지로서 고정되어온 오랜 세월에 대한 반성. 그런 것들이 한국영화의 현재를 새로이 알고자 하는 욕망을 사람들에게 급격하게 불러일으킨 것이다. 일본에서 <쉬리>가 대히트한 배경에 있는 것은, 작품 그 자체의 힘과 더불어, 이 친근한 미지의 감성의 오늘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망을 일본 관객이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8월의 크리스마스> 공개와 거의 동시에, 처음으로 강제규, 허진호 감독 등 60년대 세대에 초점을 맞춘 일본어 서적이 출판됐다. 책 제목은 <21세기를 지향하는 코리안 필름>이다. 또한 그것과 같은 시기에, 60년대 세대에 초점을 맞춘 소규모 영화제가 개최됐다. 그 영화제는 ‘Neo Korea’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오랜 기간 ‘한국영화’라고 불려온 것들에, 지금 굳이 ‘한국’이 아니라 ‘Korea’라는 명칭이 사용되게 된 것에서도, 일본인에게 한국의 신세대 영화가 과거 한국영화의 이미지와 얼마나 다른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Neo Korea’에서 상영된 60년대생 감독들 작품은 5∼6편이었는데, 상영작들 가운데 <강원도의 힘>과 <조용한 가족> 두편에는 수족관이나 어항에서 길러지고 있는 물고기가 인상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로 등장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한석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물고기 가게에 가며 수족관에 담긴 물고기가 등장한다. <쉬리>는 제목부터가 물고기 이름이며 수족관 속의 물고기가 미스터리를 푸는 결정적인 실마리가 된다. 이처럼 60년대 세대의 새로운 감성의 상징, 그 궁극의 성과로서, <쉬리>가 대히트를 이뤄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번역 강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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