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면 뜰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새로 얻은 아줌마는, 요즘 영화만 봤다 하면 그걸 바로 세속철학으로 가공해서 팔아먹고 있다. 근데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장바닥에서 근육을 불렸다면, 아줌마 철학의 헬스클럽은 설거지통 앞이다. ‘반칙왕과 21세기’라는 오늘 강의와 관련해서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은, 그러므로 설거지통한테 가서 물어봐야 한다.
자화자찬은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아줌마답게 누구와는 달리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아줌마 극장경 1장 1절. 인간은 누구나 레슬링 선수다. 자궁 밖은 곧바로 사각의 링이다. 여기서 사각은 四角이 아니라 死角이다. 벗어나면 죽음뿐인, 그 안에 있어도 언제까지나 사각사각 다가오는 죽음의 발자국소리를 들어야 하는, 자신이 링 위에 오르기 전부터 게임의 콘티가 거지반 짜인, 아무리 묘기를 부려도 수익은 저승사자 같은 흥행사의 몫으로 돌아가는, 그 링 위에서 대부분의 우리는 정통파로 출발했다가 반칙왕으로 늙어간다. 몰랑몰랑하던 생가죽은 울트라타이거마스크표 인두껍으로 변하고, 기를 쓰며 반칙으로 버티다 마스크가 찢겨 서글픈 정체를 드러낸 채 게임종료의 순간을 맞는다. 유비호라는 이름의 냉혹한 운명에 헤드록을 걸어보지만 번번이 백드롭당하고, 져주어야 할 순간에 덤벼들었다가는 온통 깨지고 멍든 채 들것에 실려나가야만 한다.
딴 얘긴지 모르지만, 남의 사생활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아줌마는, 엿보기 엿듣기를 통해 다년간 수집한 사례를 연구한 결과, 부부의 침실조차도 반칙이 난무하는 살벌한 사각의 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암컷은 정우성 또는 이정재를 꿈꾸고 수컷은 김희선 또는 이영애를 꿈꾸며, 그 암컷이 그 암컷이 아니고 그 수컷이 그 수컷이 아니기를 빌며, 날마다 엎치락뒤치락 고통스럽게 헤드록하고 백드롭하는 암컷 수컷의 침실 레슬링이야말로 진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격투기이며, 희대의 쇼 아니냐, 마누라 옆에서 딸딸이 치는 <아메리칸 뷰티>의 케빈 스페이시가 인간말종이라고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 거냐 이런 얘기다.
다시 본론으로 가서, 대부분의 우리는 장칠삼 체육관 수강생들이다. 장칠삼을 더해보라. 단풍과 홍싸리, 사꾸라 이걸 합치면 합계의 끝수가 빵, 즉 ‘섰다’ 족보의 망통이 된다. 인생합계의 끝수가 ‘빵’인 망통인생의 선수들을 배출하는 망통체육관에서 가르칠 거라곤 반칙밖에 없는 거다. 똥침 놓고 고무줄 튕겨서 적의 낯짝 갈기고, 가짜 포크로 마빡 찌르고, 쓰레빠 짝으로 때리고, 얼굴에 밀가루뿌리고, 간지럼태우고 그러다가 져주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 거다. 여기가 오늘 지상강좌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인데, 반칙 중에서도 가장 익히기 어려운 기술은, 바로 ‘제때 져주는’ 기술이라는 거다. 반칙왕 임대호도 결국 영화 끝날 때까지 이 기술만은 익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주갈 바란다. 이길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덤벼드는, 이 치명적 아마추어리즘이야말로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의 우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콘티대로만 했더라면 서푼어치 몸값이나마 챙길 수 있었던 우리의 임대호는, 결정적인 순간에 콘티를 망각함으로써 별 볼 일 없는 맨 얼굴을 들키고 말았던 거다. 두식이만 해도 그렇지, 적당한 지점에서 부지점장의 각본대로 져주었더라면 룸살롱 가라오케 앞에서 몸매 끝내주는 처녀와 부루스도 즐기고, 안주머니에서 안주머니로 공간 이동하는 흰봉투의 수신자도 될 수 있었던 거 아니겠냐, 도대체 덤벼들어서 얻은 게 뭐냐. 괜히 앰한 전화통이나 박살내고 화분이나 깨먹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그래서 결국은 영화 밖으로까지 쫓겨나지 않았느냐 말이다.
가만 있자. 여기서 아줌마 철학이 좀 헷갈리는데, 임대호는 그래서 임대호고 두식이는 그래서 두식이였던가? 영화 속 콘티가 아니라 영화의 콘티가 따로 있었던 거고, 임대호나 두식은 그 각본에 충실했던 건가? 뛰는 콘티 위에 나는 콘티. 이래서 철학공부는 설거지통 앞이 아니라 하버드에서 해야 되는 거구나. 고백하고 말아버리자. 아줌마는 <반칙왕>을 보고나서, 깨달음보다는, 짝사랑의 중병을 얻었다.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씨 두 사람을 싸잡아 사랑하게 되고 만 것이다.
그런 속맘 감추고 시침떼고 별점 매길 시간이 돌아왔다. <반칙왕>은 별 다섯, 아줌마는 별꼴이 반쪽.
(송강호씨. 이 글은 아줌마가 사랑하는 자기를 위해 준비한 거야. 내 꿈꿔! 다음번엔 그네에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