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 찍다 탄생한 커플들
2005-06-20
글 : 한미미 (자유기고가)
일석이조의 참맛을 아는 선남선녀들

영화 찍고 때로 연애하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난 주연을 맡은 남녀 배우에게 반드시 하룻밤을 같이 보내라고 한다. 화학작용은 그만큼 중요하다”라고, 블록버스터 전문인 어느 할리우드 감독은 말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알아서들 짜릿하게 눈 맞아 뜨거운 사랑으로 촬영장을 불태운 커플들이 있으니, 바로 이들. 일도 하고 연애도 하고, 참 얄밉고도 부럽지 않은가.

브래드 피트 & 안젤리나 졸리

from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2005)

애정지수 ★★★★

그렇다, 사랑은 봄날 가버리듯 변하고 성실한 사랑은 보답받지 못한다. 제니퍼 애니스턴과 함께 할리우드 최고의 잉꼬커플로 자리매김했던 그 남자, 영화에서 수없이 여배우들과 러브신을 연출해도 우리가 그는 괜찮을 것이라 믿고 또 믿었던 그 젠틀하고 핸섬한 남자 브래드 피트도 어쩔 수 없었다. 썰면 세 접시 나올 것 같은 입술과 보기만 해도 숨막혀 죽을 듯 풍만한 보디라인을 소유한 안젤리나 졸리 앞에서는. 올해 초, 피트와 애니스턴 커플이 7년의 연애와 4년 반의 결혼생활을 끝내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을 때 브래드가 찍고 있는 영화 제목을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이고…, 이해는 되는데ㅠ_ㅠ’ 생각했을 것이다. 스파이게임을 가미한 <장미의 전쟁>이라고 할 만한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는 부부관계에서 일어날 만할 갈등과 진실을 현란한 액션으로 포장해낸 즐거운 블록버스터. 이 영화에 부부로 등장하는 피트와 졸리는, 영화에서만큼이나 촬영장에서도 멋진 화학작용을 이뤄낸 모양이다. 물론, 이제는 서로 과거의 사람이 되어버린 피트 부부는 그들의 결별 원인에 대해 졸리 때문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지만, 물증이 없을 뿐이지 심증은 농후하다. 피트가 졸리와 폰섹스를 나누다가 애니스턴에게 걸렸다는 둥, 촬영장을 주시하던 누군가가 그들 둘의 관계를 애니스턴에게 보고했다는 둥 갖가지 설이 난무했고, 피트 부부는 예의바르게 공식 입장을 들고 나왔다. “브래드가 아이를 원했는데 제니퍼는 아이를 갖지 않은 채 일만 하고 싶어했고, 그게 문제였다.”

진실이 어떻든 이제 사랑의 한 국면은 지나갔다. 한 번의 사랑이 끝났고 이제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커플은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로 낙찰되었다. 이혼 후 처녀 때 성을 돌려받고 싶어한다는 제니퍼에 관한 기사들이 흘러나오든 말든, 다른 한편에선 피트와 졸리 커플의 닭살행각에 관한 기사들- 그들이 최근 어느 호텔에서 너무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눈 나머지 안전사고로 오인한 호텔측에서 경비원을 불러야 했다든지 하는- 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가슴 아프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서 그들은 세상 누구도 따를 수 없이 눈부시고 찬란하며 섹시하게 빛을 발한다. 어찌하랴, 그것이 사랑의 불공평한 아름다움인 것을.

클라크 게이블 & 캐롤 롬바드

from <그녀의 남자는 없어> (1932)

애정지수 ★★★★★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찍은 이 영화에서, 게이블은 사기 도박꾼을, 롬바드는 외로움에 지쳐 그의 사기행각을 알고도 그를 만나는 도서관 여직원을 연기했다. 특이한 건 그들이 공연하는 동안에는 서로 소 닭 보듯 했다는 것. 하지만 이후의 애정행각을 보면, 영화가 그들의 사랑이 불붙는 데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은 건 아닌 것 같다. 이 영화를 찍은 지 4년 뒤인 1936년, 둘은 어느 파티에서 만나 서로 강하게 이끌렸지만 각자 자존심이 너무 센 관계로 바로 그날 대판 싸우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피로한 상태로 눈을 뜬 게이블은 자신의 호텔 방 안을 날아다니는 한 떼의 비둘기들을 발견하고 그만 눈이 하트로 변해버리고 말았으니, 여자가 먼저 행동해선 안 된다는 고리타분한 연애의 방정식을 집어던지고 호텔 직원에게 부탁해 비둘기들을 사다가 게이블의 방에 풀어놓게 한 롬바드의 대담함이 그를 사로잡고 만 것이다. 이때부터 그들은 본격적으로 ‘닭살 러브러브 모드’에 돌입한다. 게이블이 스피디한 스포츠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롬바드는 그에게 최신형 포드 스포츠카를 선물했고, 사냥이 취미였던 게이블은 여행에서 잡아온 새끼 퓨마를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다. 게이블이 댄스신이 있는 영화를 찍을 때면 그녀는 매일 촬영장에 나가 손수 그의 댄스 연습 상대가 되어주었고, 롬바드가 카우걸 의상을 입어야 했을 때는 게이블이 조랑말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결혼한 뒤 농장에서 닭을 키우고 시원찮은 오렌지들을 길러내며 사랑을 속삭였던 그들의 연애엔 언제나 환한 웃음과 악의없는 유머가 따라다녔다. 여기서 교훈이 있다면? 하나, 첫눈에 반하지 않아도 언제나 한 번의 기회는 더 있다. 둘, 행복한 연애에는 유머가 있어야 한다. 셋, 물론 돈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서로 ‘Pa’와 ‘Ma’라고 부르며 감히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행복을 누리던 그들에게도 비극이 찾아왔으니, 롬바드가 결혼 3년째인 33살 되던 해에 비행기 사고로 그만 세상을 떠난 것. 게이블은 결코 그녀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그 뒤 재혼했지만 끝까지 그녀를 잊지 못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내는 눈물을 머금고 그의 시신을 롬바드의 묘지 옆에 묻어주어야 했다.

러셀 크로 & 멕 라이언

from <프루프 오브 라이프> (2000)

애정지수 ★★

그녀는 언제까지나 소녀 같을 것만 같았던 귀여운 여배우였다. 10년 넘게 아기자기한 결혼생활을 지속해오던 성실한 남편도 있었다. 그는 길들지 않은 못된 야생마처럼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던 바람둥이였다. 할리우드에서 건드린 여자만 해도 이미 한 다스가 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둘을 세트장에 데려다놓고 수많은 군중 속에서 손 붙잡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했더니, 그들은 어느새 사랑에 빠져버렸다. 당시만 해도 테일러 핵포드 감독이 “두 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러워 보였으며 영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였을 뿐”이었다고 오히려 당혹스러워할 만큼 두 사람의 진도는 멈출 줄 모르고 빠르게 뻗어나갔다. 몇 마디의 축복과 몇 마디의 저주, 그리고 수많은 루머들이 오간 뒤 멕은 결국 착한 남편 데니스 퀘이드와 이혼하고 러셀과 정식으로 커플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결코 오래가지 못했으니,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크로의 바람기와 다혈질은 곧 그를 한 다스나 되는 새로운 여자들에게로 차례차례 이끌었다. 뒤늦게 한때의 실수를 깨달은 라이언이 전 남편 퀘이드에게 재결합 의사를 밝혔으나, 이미 기차는 떠나버렸다. 퀘이드는 2004년 자신보다 15살이나 어린 꽃다운 신부를 맞아 새 인생을 시작했고, 크로 또한 호주의 가수 겸 배우 대니얼 스펜서와 결혼해 믿거나 말거나 착실한 유부남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엘비스 프레슬리 & 앤 마거릿

from <비바 라스베가스 > (1964)

애정지수 ★★★

사랑에 빠져 주변사람들이건 커리어건 다 잊은 채 맹목적으로 관계에 몰입하고 팔자까지 고치는 커플들에 비하면 이들은 조금은 현실감각이 있었다고 할까? 조지 시드니 감독이 촬영장에서 서로 처음으로 인사시켰을 때, 그는 위험하게 허리를 흔들어대며 로큰롤을 불러대던 28살의 혈기왕성한 젊은이였고 그녀는 갓 22살의 꽃다운 나이였다.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그들은 서로 빠져들었다. 지켜본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카펫이 깔린 방에서 나란히 몸을 쭉 뻗고 누운 채 연기연습을 한다는 핑계(?)로 닭살스러운 대화를 주고받곤 했다고. 프레슬리가 특유의 들개처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당신은 날 미치게 해”라고 말하면, 앤 마거릿이 그의 목소리를 흉내내 “당신 속엔 내가 숨어 있어요”라고 화답했다나. 앤 마거릿은 후에 “그건 저항할 수 없는 전기와도 같은 힘”이었다고 이 로맨스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사랑의 강도와는 관계없이 끝이 보였는데, 프레슬리에게는 이미 약혼할 프리실라라는 어린 아가씨가 있었던 것. 촬영이 끝나자 그들은 헤어졌고, 프레슬리는 프리실라와, 앤 마거릿은 배우 로저 스미스와 결혼했다. 앤 마거릿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자신의 자서전에서 “엘비스는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내 행복, 내 슬픔이었으며 나는 결코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캐서린 헵번 & 스펜서 트레이시

from <우먼 오브 더 이어> (1942)

애정지수 ★★★★

그들은 모두 9편의 영화를 함께 찍었고, 27년간 밀고 당기고 쓰다듬고 할퀴며 질기디 질긴 관계를 이어나갔다. 남자처럼 옷 입기를 즐기고 대담한 말투를 즐겨 쓰던 헵번이 <우먼 오브 더 이어> 첫 시나리오 리딩을 위한 미팅에서 트레이시에게 다음과 같이 일침을 놓은 것은 유명하다. “트레이시 씨, 당신 상대역을 하기엔 내 키가 너무 큰 것 같아 걱정이에요.” 그러자 트레이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걱정 마시오, 미스 헵번. 내가 당신을 내 키에 딱 맞게 줄여놓을 테니까.” 촬영과 동시에 불붙기 시작한 그들의 로맨스는 그러나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알코올의존증과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게다가 헵번과 열애 중이면서도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아내와 이혼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스크린 안에서나 밖에서나 서로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심하게 싸우고 서로 상처 입혔으며, 늘 따로 살았지만 절대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였다. 1967년 그들의 마지막 공연작 <게스 후스 커밍 투 디너><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 촬영을 끝내고 나서 얼마 뒤 트레이시가 심장발작으로 죽었을 때, 그의 시신을 발견한 건 바로 그녀였다. 그러나 25년 넘게 애정어린 관계를 지속했으면서도, 헵번은 그의 유가족에 대한 예의를 지켜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라이언 필립 & 리즈 위더스푼

from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1999)

애정지수 ★★★★

이 청춘영화에는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꽤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당시만 해도 같이 출연한 사라 미셸 겔러와 비교하면 예쁜 척하고 가만히 있어도 모자랄 판국으로만 보였던 ‘촌뜨기’ 리즈 위더스푼이 라이언 필립 앞에서 혀를 내밀고는 영구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 어이없고도 귀여운 모습에 그는 그만 사랑을 느꼈고, 그때까지의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이 순수한 아가씨에게 순정을 바치기로 결심한 뒤…, 그러니까 이 장면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상황이었던 것이다. 1998년, 이 영화를 촬영하기 직전 두 사람은 위더스푼의 생일파티에서 처음으로 만났고, 크랭크인하면서 사랑이 불붙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들은 서로 운명의 상대로 점찍었고, 불과 1년 만에 결혼,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건강한 첫딸을 출산함으로써 많은 이들로 하여금 “요즘 어린 것들 무섭다”고 혀를 내두르게 하며 당시로선 충격적인 로맨스를 선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필립이 바람기 가득한 방탕한 청춘이리라 예상했지만, 결혼 후 이렇다 할 스캔들 하나 없이 둘째아이까지 낳고 지금가지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르는 것인 듯. 이후 위더스푼이 <금발이 너무해> 등으로 흥행배우의 반열에 오른 반면, 필립은 활동이 부진해 잠시 이혼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여전히 잉꼬부부로 스크린 속 풋풋한 사랑을 지켜가고 있는 드문 케이스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 리처드 버튼

from <클레오파트라> (1963)

애정지수 ★★★★★

‘네가 있어도, 네가 없어도 난 살 수 없어’라고 읊조리는 U2의 <With or without You>의 가사는 바로 이들을 위한 게 아닐까. 영화사상 가장 훌륭한 배우이기도 했던 이들 두 사람의 관계는 22년 동안 지속됐다. 한 번 결혼하고 이혼, 10년 뒤 다시 한 번 결혼하고 또 이혼하면서 뜨겁고 지독한 애증을 이어간 것이다. 두 사람을 이어준 역사적인 영화는 1963년, 당대 최고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클레오파트라>. 도도하고 신비로운 클레오파트라와 강인하면서도 로맨틱한 영웅 안토니우스로 촬영장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에게 각자 배우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뜨겁고 관능적이었던 이 사랑 앞에서 별다른 문제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남자가 본능을 다해 꿈꿀 수 있는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이다. 그녀는 너무나 매력적인 연인이자 정부이며, 그녀와의 밤들은 영원히 이어지는 원나이트 스탠드다.” 버튼은 일기장에 숨을 헐떡이며 이렇게 적었다. 그들은 둘 다 알코올에 빠져 있었고 서로 거칠게 집착했다. 그는 그녀에게 술의 맛을 알게 해주었고 그녀는 그에게 명품의 세계를 가르쳐주었다. 그의 인생에는 3명의 아내가 더 있었고, 그녀의 인생엔 5명의 남편들이 더 있었지만 그들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결코 분리될 수 없었다. “테일러의 남편과 버튼의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도 그들은 테이블 밑으로 손을 잡고 있었다”는 사람들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말이다. 1984년, 리처드 버튼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아내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문상을 금지했다.

사진제공 REX 이 기사는 씨네21과 CGV가 만드는 영화잡지 <ME> 제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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