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킬러들의 수다>의 막내, 아름다운 청년 원빈
2001-07-19
글 : 최수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노란 천하장사 소시지를 보자마자 빨간 비닐끈을 잡아당긴다. 맥주광고를 찍으러 멕시코에 갔다왔다더니 촬영현장에서 보았을 때보다 얼굴이 많이 그을린 원빈이다. 생기가 넘치는, 예술의 전당에서 촬영이 있던 날의, 휑한 눈길에 굳어 있던 그가 아니다. 가볍게 삐죽거리는 머리가 꼭 미소짓는 그의 입술 같다. “아, 그날은 제가 첫 촬영을 하던 때였어요.”마지막 보충촬영 한번과 내레이션 녹음만이 남은 시점, `코난`같은 피부색을 한 원빈은 `영화`라는 것에 대해, `배우`라는 것에 대해 제법 할말이 많다.

TV는, 원빈의 인큐베이터였다. 강원도 정선 여량 산골에서 자라나 고등학교 때 비로소 도시생활을 시작한, 한때는 자동차정비사가 되려 했던 어린 청년, TV는 불과 5년 사이에 이 청년을 한명의 스타로 만들어냈다. <꼭지>에서 걸핏하면 싸움을 하는 거진 명태가 다방 마담에게 마음을 바칠 때, <가을동화>에서 재벌아들 태석이 사랑하기에 사랑을 친구에게 양보할 때, 원빈은 그때마다 많은 이들의 눈길과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TV님 죄송합니다.” 라는 한 광고의 멘트는 그렇기 때문에 “TV님 감사합니다.” 로 다시 말해질 수 있다. 자기를 키워주고 띄워준 그 견고한 브라운관 속에서, 그런데 막 원빈은 걸어 나올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뛰어난 마스크`와 `풋풋한 감성`을 안팎으로 지니고, 좀더 자유롭게 원빈이 걸어들어가는 곳은 넉넉한 스크린의 품이다.

첫 영화 <킬러들의 수다>는 원빈에게 두 가지를 원했다. 네명의 킬러 중 막내인 하연의 연기, 그리고 배우들이 촬영을 다 마친 뒤 그는 녹음실에서 혼자 영화의 화자가 돼야 한다. 그것도 상황에 안 맞는 이야기로 영화의 묘미를 살리는. 첫 영화의 카메라 속에 원빈은 어떤 표정을 담았을까. 장진 감독이 그려내는 킬러들은 어딘지 다 순수하지만, 그중 하연은 막내답게 귀여운 구석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공효진이 분하는 여고생 여일과 서로 딴 얘기를 하며 우는 장면은 원빈이 제일 쉽게 떠올리는 이야기 한 토막. “대본에 적혀 있는 대로 했어요. 의도적으로 귀엽게 하려고 하지 않고요.” 킬러지만 터프하기보단 순진한 하연을 원빈은 “감수성이 많이 달라” 연기하기 어려웠단다. “뭐가 다르냐고요? 말로는 설명이 안돼요. 몸에서 표현되는 그런 거죠. 나중에 영화를 보시면 알거예요” 하면서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게 될 것” 이라고 자꾸 예고편을 튼다.

“영화 한편 한다고 영화배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기분은 정말 좋아요. 5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정작 하고 싶었던 건 영화였거든요. 고등학교 대 <테러리스트>를 보고 액션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첫 영화를 찍은 소감을 물으니 준비했다는 듯 `내 인생의 영화`를 이야기 한다. <테러리스트>는 형제 형사의 이야기. 우연히도 원빈은 <킬러들의 수다>에서 신현준이 연기하는 상연과 함께 형제 킬러를 이룬다. 하지만 액션은 거의 없다. 왜? 하연은 `작업`시 건물 전기시설 담당이기 때문이다.

“추구하는 배우 스타일이요? 원빈이 많이 보이는 배우는 싫어요. (두팔로 X자를 만들어 보이며) 로버트 드 니로나 알 파치노처럼 뭘 하든 드 니로 같고 알 파치노 같은 그런 배우는 싫다고요. 영화마다 다 다른 인물이 보이는, 인물쪽으로 접근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첫 영화를 막 찍었을 뿐이지만, 연기관이 또렷하다. 그래서일까. 스물다섯, 소년처럼 또렷하고 투명한 이 배우의 스크린 데뷔는 분명히 `안녕`할 것 같다. 두 번째 세 번째 영화를 할 때 다시 만나면 그의 표정은 “영화님 감사합니다”를 말하고 있을 것이다.

의상협찬 폴 스미스, CP COMPANY, 테크노 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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