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배트맨> <엑스맨> <헐크>… 만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와 TV시리즈들이 이미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려져 있다. 수없이 많은 시리즈와 속편들 속에 또 다른 영화가 필요할까. 이런 회의 속에서 제작된 <판타스틱4>는 감독이나 배우들이 대부분 무명에 가깝기 때문에 더욱더 오리지널 만화 팬들에게 의혹의 눈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시사회 뒤 만화 팬들은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7월8일 미 전국에서 개봉되는 이 영화의 관건은 40년이나 된 만화 시리즈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접하지 못한 관객이 얼만큼 호응을 해줄 것인가가 아닐까.
100% 여름 시즌용 팝콘 영화
<판타스틱4>의 주인공인 과학자 리드 리처드(요안 그루퍼드)는 인간의 유전 코드(genetic code)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대학 때부터 라이벌 관계에 있는 사업가 빅터 본 둠(줄리언 맥마흔)의 재정후원으로 우주탐사를 계획한다. 이 프로젝트의 팀원들은 리처드와 둠 외에도 리처드의 옛 애인이자 현재 둠의 회사에서 리서치를 담당하는 수 스톰(제시카 알바), 그녀의 동생이자 최고의 파일럿인 조니 스톰(크리스 에반스), 리처드의 절친한 친구이자 역시 파일럿인 벤 그림(마이클 치클리스) 등이다.
그러나 리처드의 사소한 계산 오차로 우주탐사대원들이 탄 우주정거장은 엄청난 우주광선(cosmic storm)과 충돌하게 되고, 이들의 유전자는 영원히 돌연변이로 바뀌어버린다. 리처드는 손바닥을 늘려 문틈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 등 온몸을 고무처럼 늘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무한능력 판타스틱’으로, 수는 투명인간의 능력과 함께 보호막으로 외부의 공격과 위험을 막을 수 있는 ‘투명본능 인비저블’, 조니는 몸 전체를 화염으로 휩싸고 놀라운 속도로 날아다닐 수 있는 ‘불의 전사 파이어’, 벤은 오렌지색 바위 같은 근육과 엄청난 힘을 가진 ‘막강파워 씽’으로 각각 변신하게 된다. 이들의 능력이 외부에 알려지자 미디어는 이들을 ‘판타스틱4’라고 부르며, 유명인사처럼 대접한다. 자신의 변화를 모두에게 숨긴 둠은 온몸이 금속으로 바뀌면서 자기장을 이용해 전기를 조정할 수 있는 ‘닥터 둠’으로 변신하지만, 이 능력을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 사용하고 그리하여 ‘판타스틱4’와 ‘닥터 둠’의 대결이 시작된다.
감독도 배우도 무명… 하지만 캐릭터로 승부한다
요즘 잡지 가판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섹시스타 제시카 알바를 제외하고, <판타스틱4>에는 감독을 비롯해 대부분의 배우들이 무명이다. 34살의 팀 스토리 감독은 <택시 더 맥시멈>과 <우리 동네 이발소에 무슨 일이>(Barbershop) 등 흑인관객을 타깃으로 한 영화를 연출했지만 이 영화들은 백인관객까지 사로잡지는 못했다.
<판타스틱4>의 주인공 요안 그루퍼드는 영국 미니시리즈 <호레이시오 혼블로어>(Horatio Hornblower)로 유럽에서 여성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이 프로그램은 미국에서도 케이블채널에서 방영돼 에미상을 받았다(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 유럽 출신 여기자들의 작은 탄성이 여기저기서 속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그의 이름까지 기억하는 팬들은 아직은 많지 않다. <셀룰러> <퍼펙트 스코어> <낫 어나더 틴 무비> 등으로 청소년팬들을 확보한 크리스 에반스는 스크린에서 하이틴 스타가 아닌 연기자로 자리잡지 못한 상태이며, 마이클 치클리스와 줄리언 맥마흔은 케이블채널 <F/X>의 TV시리즈 <더 쉴드>와 <닙/턱>에 각각 출연해 인기를 모았으나, 역시 영화쪽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하기에는 ‘초보’와 다름없다.
하지만 스토리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폭스사에서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연출 전권을 준 것이다. 특히 캐스팅에 있어서 캐릭터에 맞는 원하는 배우로 구하라는 말은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알바와 에반스는 이미 상당한 팬이 있는 배우지만 그루퍼드와 치클리스, 맥마흔 등은 모두 연기력 하나만으로 캐스팅을 한 경우. 그루퍼드는 “오디션 프로세스가 쉽지는 않았지만, 나를 믿어준 감독과 다른 관계자들 덕분에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가까이하자니 너무 힘든 블루 스크린 촬영
<판타스틱4>에는 800여개의 특수효과 장면이 사용됐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뉴욕의 브루클린 브리지 액션신으로 ‘판타스틱4’의 능력이 처음으로 미디어와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중요한 장면. 캐나다 밴쿠버에서 촬영된 이 작품에서 어떻게 뉴욕의 다리를 찍었을까. 스토리 감독은 밴쿠버에 브루클린 브리지의 일부분을 세트로 제작했다고 한다. 일부라지만 볼트와 나사까지 세부 사항을 그대로 만든 높이 250피트(76.2m)와 너비 34피트(10.36m) 크기의 어마어마한 세트였다고. 공중 촬영한 실제 브루클린 브리지의 모습과 합성시켜 화면을 만들었다.
이외에도 에반스가 연기한 ‘불의 전사 파이어’는 온몸이 불길에 휩싸이는 특수효과를 사용했는데, 초기에는 너무 자세하게 CGI를 사용해 캐릭터의 피부가 실제로 불에 타는 것처럼 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하지만 너무 자세히 보여지면 어린이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는 의견 때문에 “CGI 테크닉을 덜 사용한 케이스”라고 스토리 감독은 귀띔해줬다.
인터뷰 중 배우들이 말하는 촬영 중의 어려움은 한결같았다. CGI 장면이 많다보니 세트나 상대배우가 없는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 특히 그루퍼드는 “내 캐릭터가 처음으로 팔을 고무처럼 늘려 와인병을 잡는 장면이 있는데, 블루 스크린 앞에서 ‘X’ 마크까지 타이밍에 맞춰 손을 가져가고 시선을 주는 데 신경을 쓰느라 연기를 못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막강파워 씽’을 연기한 치클리스는 특수효과는 물론 몸 전체와 입, 귀까지 커버하는 메이크업 때문에 촬영 중 정신과 치료도 받았을 정도. 그는 당시 느낌을 인터뷰에서 밝혀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마블 프렌차이즈에서 슈퍼히어로를 연기한다는 데 기분이 들떴던 그는 처음 비교적 솔직하게 5시간 반에 걸쳐 메이크업을 완성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정신적인 충격을 경험했다고. 그는 “메이크업을 하려면 평균 3시간에서 5시간이 걸렸고, 제거하는 데에도 1시간30분이 걸렸다”며, “메이크업 뒤에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물컵조차 손으로 들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LA의 한 정신과 의사로부터 전화로 정규적인 상담을 받은 치클리스는 “신체가 메이크업으로 속박돼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나 간단한 명상 등으로 잊어버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또 보스턴 출신인 치클리스는 “지난해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보스턴 레드삭스가 아니였으면 아마 촬영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판타스틱4>의 개봉을 앞둔 폭스사는 이미 배우, 감독과 2, 3편 제작 계약도 완료한 상태다. 이외에도 제시카 알바는 또 다른 액션영화 <인투 더 블루>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치클리스는 루시 리우와 함께 스릴러 <라이즈>에 출연했고, 에반스는 다이앤 레인, 도널드 서덜런드 등과 함께 <피어스 피플>에 출연했으며, 올 가을에는 런던에서 대니 보일 감독의 신작 <선샤인>에서 킬리언 머피, 양자경 등과 함께 촬영에 들어간다. 이들에게 <판타스틱4>는 조금 더 나은 배역을 얻고, 더 나은 감독과 일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바보가 아닌 이상 ‘마블 프렌차이즈’를 거절할 배우는 없을 것”이라는 에반스는 “나는 배역이야 어떻든 좋은 감독들과 함께 일할 수 있으면 된다. <판타스틱4>는 그런 기회를 내게 주었고, 덕분에 가을에는 평소 존경하던 보일 감독과도 일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사진 속의 섹시스타? 실제 난 다르다”
제시카 알바 인터뷰
제시카 알바(24)는 지금 미국 최고의 자연미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최근 멋진 사진과 함께 나온 <롤링스톤>의 커버 스토리 영향도 크다. 하지만 알바의 <씬 시티> <판타스틱4> <인투 더 블루>로 이어지는 연이은 영화 출연과 남성 잡지들의 ‘섹시스타’ 인기 순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그녀의 인기를 뒷받침해준다. 인터뷰 현장에 몸 전체를 가릴 만한 바바리 코트를 입고 들어선 알바는 기자들에게 웃으며 “저 미친 거 아니에요. 이 호텔 진짜 춥네. 그렇죠?”라며 너스레를 떤다.
-<판타스틱4>란 만화를 알고 있었나.
=전혀 몰랐다. 스크립을 받은 뒤에야 ‘이런 만화도 있구나’ 하고 알았다. 지금까지 액션영화를 많이 하고, 다른 액션영화도 많이 봤다. 대부분의 여성 액션 캐릭터들이 터프하고 바이커족이거나 지나치게 성적으로만 묘사되기 일쑤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오는 ‘수 스톰’은 지적이면서도 세련되고, 강하면서도 모성애를 가진 3차원적인 캐릭터다. 그래서 원작을 모르면서도 스크립만으로 출연을 결심했다. 오디션을 볼 때 감독(팀 스토리)에게 “나를 캐스팅하지 않겠지만, 나라면 수 스톰을 이렇게 연기할 것”이라며 한참 장황하게 말했던 것이 배역을 맡게 된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의상이 상당히 멋있던데, 배역을 위해 특별히 몸매 관리를 했는지.
=17살 때부터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촬영 때에는 트레이너를 두고 매일 45분씩 운동을 한다. 특별히 몸매 관리가 아니라 촬영 중 아프지 않기 위해서다.
-최근 <롤링스톤>과의 인터뷰도 그렇고 인기가 대단하다. 어릴 때에도 인기가 좋았는지.
=아버지가 공군이라 늘 전학을 다녔다. 키도 다른 아이들보다는 한뼘 정도는 더 크고, 살도 쪄서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4∼5살 적부터 친구라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하지만 12살부터 연기를 시작하면서, 진짜 자신을 발견한 것 같다. 촬영장에서만큼 편안함을 느낀 곳이 없었다. 고등학교도 촬영 틈틈이 개인교습을 받으며 나왔는데, 전혀 후회는 없다.
-당신은 지금 ‘핀업 걸’이다. 자신을 섹시하다고 생각하는지.
=저번에 <GQ> 커버에는 좀더 노출된 사진이 나갔는데, 가판에 나가기 전에 아버지한테 전화를 해서 “별로 좋아하실 것 같지 않은 사진”이라고 미리 말씀 드리면서, 전화하시고 싶을 때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이틀 동안 연락을 안 하시더라. (웃음) <롤링스톤> 표지 촬영… 그거 다 헤어 & 메이크업 전문가들이 만들어놓은 거다. 실제 나는 그렇지 않다. 12살 때부터 연기를 해서 그런지, 인기에 대해서 그렇게 연연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좋지만, 난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수퍼파워를 가질 수 있다면, 어떤 힘을 갖고 싶나.
=어릴 때부터 무척 지각을 자주 했다. 정해진 시간에 준비를 끝내는 것도 힘들었고. (웃음). 그래서 시간을 정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꽤 실용적인 사람이지?
“CGI가 발전할 때까지 44년을 기다린 영화다”
팀 스토리 인터뷰
원작 만화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감독 팀 스토리. 야구모자에 안경을 쓰고 인터뷰 테이블에 앉은 그는 며칠 전에 마지막 편집을 마쳐서 그런지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영화 얘기가 시작되자 피곤한 기색이 없어지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판타스틱4>가 영화화되기까지 44년이나 걸렸다. 이유는.
=캐릭터를 보라. 온몸이 불로 뒤덮이고, 고무처럼 몸을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였다 하고… 현대 최첨단 CGI 기술이 아니면 가능하겠는가?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의상하나 입고 해결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기다렸다고 말해야겠지.
-몸이 늘어나는 캐릭터 ‘무한능력 판타스틱’은 지난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의 캐릭터와 비슷한데.
=사실 영화 준비를 하다가 <인크레더블> 때문에 걱정했다. 그런데 직접 봤더니 크게 걱정되지 않더라. 우선 애니메이션과 라이브 액션 영화는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타스틱4> 캐릭터들은 40여년이 된 오리지널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카피했다는 말이 나오기 힘들 것이다.
-블록버스터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없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과거 나는 <택시 더 맥시멈>과 <우리 동네 이발소에 무슨 일이> 등 흑인 주연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이 영화를 맡게 됐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웃음) 최근에 인디영화 출신의 감독을 대형 액션영화의 연출가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래서 폭스사도 모험을 한 것 같다. 이렇게 규모가 큰 액션영화를 만들어보진 못했지만, <판타스틱4> 만화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마블 코믹스의 스탠 리도 촬영장에 왔는데, ‘스크립이 참 좋다’며 ‘소신껏 만들어보라’고 말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