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지진희
2005-07-12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반듯한 이 남자가 날라리?

제목만 들어도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드는 독특한 제목의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으로 배우 지진희(34)가 3년만에 스크린에 돌아온다. 신인 이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은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통상적인 코미디 장르에 담을 수 없는 기묘한 긴장감과 유머감각을 지닌 영화. 지진희에 따르면 “정말 웃기는 데 누구도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가려운 곳을 콕 집어 긁어주는” 작품이다.

좀 ‘놀았던’ 과거 지닌 만화가로 “시나리오 보고 눈 번쩍 뜨였죠”

이른바 <빨간 마후라>에 등장할 법한 중학생들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해 과거를 묻고 살아가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아슬아슬, 불안한 상황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그가 연기하는 석규는 ‘심하게’ 놀았던 형 덕에 날라리 중딩이었으나 악몽같은 사고 뒤 고향을 떠나 제법 인정받는 만화가로 성장한 인물이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인물이지만 숨겨놓은 불량기, 실없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형사로 등장했던 영화 데뷔작 <에이치>나 그동안 출연했던 드라마에서 쌓아놓은 반듯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점잖게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갑자기 목줄을 번쩍 끌어올리거나 아이들이 키스하는 교실 문을 두드리고 도망가는 엉뚱함이 나와 비슷해요. 모범생 같은 인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하의 말종도 아니죠. 누구나 한두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경험과 상처를 가진 인물이에요.” 그동안 받았던 시나리오들이 “충무로에서 유행하는 내용이나 스타일이 많아 별 매력을 못 느꼈다”던 그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예측 가능한 상황이나 대사로 이어진 영화는 별로 재미없잖아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시나리오를 보니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천국보다 낯선>이나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를 볼 때처럼 뻘줌한 느낌이면서도 웃음이 삐져나오는 거예요. 감독님 처음 만나러 갈 때부터 석규로 보이게 준비를 해갔죠. 물론 티는 안나게. 쑥스럽잖아요.” 지진희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처럼 지씨가 ‘양복에 넥타이 매고 나올 줄’로 알았던 감독의 의심은 첫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풀렸고 그는 석규 역을 낚았다.

6월초 촬영을 시작해 충북 제천에서 야외 촬영 분량을 거의 마친 상태다. 신인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던 <에이치>때와 달리 주목과 기대라는 모래주머니를 양쪽 다리에 달고 카메라 앞에 서는 부담이 클 것 같은데 그는 “전보다 훨씬 편하다”고 한다. “일단 감독님과 믿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딱딱 맞구요, 사실 양복을 입어도 짠하게 때깔이 나는 것보다는 약간 헐렁한 듯하게 입는 게 더 편해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이처럼 헐렁한 양복같은 느낌이에요. 장르영화의 정형화된 즐거움 대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순간의 묘한 긴장감을 전달하는 리얼리티가 살아있어서 좋죠.” 일하면서 언제나 장점만 생각한다는 낙천적 성격도 이 작품과 궁합이 딱 맞아 떨어졌다.

“서른 살에 연기를 시작하면서 진로를 바꾼 셈인데 물론 늦은 출발이라는 심적 부담도 크죠. 그렇지만 내가 가졌던 다른 직업처럼 연기자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최선을 다할 수 있고 또 발전할 수 있겠죠.” 오는 8월 촬영을 마치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11월 관객들에게 은밀하게 다가갈 예정이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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