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모기떼 따위가 우리의 촬영을 막을 순 없지, <야수와 미녀> 촬영현장
2005-07-18
글 : 김수경
사진 : 이혜정
류승범·신민아 주연의 <야수와 미녀> 촬영현장

“모기가 4천 마리는 될 거예요. 약 뿌려도 20분만 지나면 소용없어요.” 모기약을 손수 뿌려주며 류승범이 건네는 경고다. 전주시 인후동 아중지역의 <야수와 미녀> 22회차 촬영현장. 2차선 차도 한쪽을 막고 선 두대의 크레인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그 아래로는 모텔과 술집의 불빛들이 반짝거린다. 강둑과 기찻길 사이에 자리잡은 현장은 모기들의 서식지로는 최상, 밤촬영지로는 최악이다. 어린 시절 쫓아다니던 석유냄새가 물씬나는 하얀색 모기약이 뿌옇게 현장을 감싼다. 테스트 중이던 크레인의 강우기가 움찔거린다. 중간 호스에서 물이 새고, 촬영이 약간 지체된다.

<야수와 미녀>의 주인공 구동건(류승범)에게는 시각장애인 여자친구 해주(신민아)가 있다. 그녀가 눈을 뜨면서 동건에게는 인생의 최대 위기가 닥친다. 눈을 뜬 ‘미녀’ 해주는 동건을 찾아다니지만, 소심한 ‘야수’ 동건은 그녀 앞에 쉬이 나설 수가 없다. “이번에는 정말 보듬고 만지는 정통멜로를 하고 싶다”던 류승범의 바람은 이번에도 좌절되었다. 설정상 대부분 류승범과 안길강이 짝이 되고, 신민아와 김강우가 한조가 되는 상황이니까.

강우기에서 비가 뿌려지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된다. <주먹이 운다>의 교도소 콤비인 구동건과 도식(안길강)이 가로수 옆에 나란히 선다. 차를 타고 떠나는 해주와 준하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동건과 그를 놀리는 도식. 마이크에 수건을 두번이나 감는 붐맨. 이상욱 녹음기사는 “차량이 꾸준히 지나는 점과 우비나 비닐 때문에 생기는 주변 소음 탓”이라고 설명했다. ‘떡과 홍콩’으로 요약되는 도식의 애드리브에 모니터 주위는 웃음바다. 이계벽 감독은 애드리브에 여배우가 충격받을까봐 염려하기도 했다. 초반에는 잠잠하던 류승범의 리액션도 갈수록 다양한 몸동작과 표정으로 호흡을 맞춘다. 두 배우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도록 비가 내린 뒤에 OK가 떨어졌다. 살수차 이동 때문에 앵글을 바꿀 때마다 시간이 평소의 두배는 걸린다.

다음은 해주가 근무하는 재즈바 ‘스윙’ 앞에서 해주와 탁준하(김강우)가 만나는 장면. 재즈바 외벽에는 고전적인 느낌의 살롱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2500만원 예산이 소요된 벽화는 “눈을 뜨기 전후에 해주가 보는 이미지의 변화에 중요한 기점이 된다”고 김유정 미술팀장은 설명했다. 해주가 눈뜨기 전 상상하는 세상은 대체로 차가운 색, 뜬 뒤에는 따뜻한 색으로 배열된다. 빗속에서 말끔한 양복차림의 탁준하가 나타나고, 빨간 드레스의 해주에게 다가서자 멜로물 분위기가 물씬 살아난다. 모기떼의 극성은 여전하지만, 차를 세우고 숨을 죽인 구경꾼들은 쉽게 떠나지 못한다. 짧은 여름밤도 끝을 향해간다. <야수와 미녀>는 늦가을이 깊어가는 11월에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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