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분홍신> 편집감독 신민경
2005-07-18
글 : 김수경
사진 : 오계옥
“야구공 떨어지는 것만 100번 본 적도 있죠”

2003년 <싱글즈>로 데뷔, 2004년 <범죄의 재구성>과 <슈퍼스타 감사용>. 2005년에는 <레드아이>를 시작으로 <태풍태양> <댄서의 순정> <분홍신>을 쏟아냈다. 그리고 지금은 따끈따끈한 <광식이 동생 광태>가 대기 중. 서른살인 신민경 편집기사가 걸어온 길이다. 3년차 편집기사가 여덟편을 작업한 것도 대단하지만 그는 이미 대학 졸업영화제에서 13편의 영화 중 7편을 매만진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예술고등학교를 지원하면서 연극영화를 전공했다. “사진, 영화, 방송 같은 것이 더 낫겠다”라는 열린 사고방식의 부모님 덕이었다. 당시 <죄와 벌>을 각색한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영화전공으로 진학한 대학에서 “모든 것을 혼자서 다해야 하는 연출”이라는 역할에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반면 “한정된 소스와 시간으로 그 한계를 극복하는 편집”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신 기사는 대학 2학년 때 <유리>로 인연이 된 이경자 기사를 찾아갔다. 300편이 넘는 영화의 편집 경력, 유현목 감독 스크립터로 시작하여 <지구를 지켜라!>를 편집한 이경자 기사는 “사용법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혼자 영사기를 만지고 순서편집을 하는 조그만 여자아이”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신 기사는 학교와 편집실을 오가며 6년의 긴 대학생활을 보낸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의대냐? 돈은 의대보다 더 들긴 하는구나”라는 핀잔을 남겼단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분홍신>에서도 그가 추구하는 편집의 세계는 명확하다. “과거사는 최소한의 이미지로 보였으면 했다”는 그의 의견은 “과거에도 최소한의 드라마”를 추구했던 김용균 감독과의 조율이 필요했다. 결국 분홍신에 얽힌 사연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 대칭적으로 분산되었다. 그의 출세작 <범죄의 재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민경표 편집은 “대사가 지나간 자리에 여백을 남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 대사 중간을 끊어내어 분절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이것은 관객에게 그의 편집이 할리우드 스타일이라는 인상을 준다. 마틴 스코시즈 영화의 편집을 최고로 여기는 신 기사는 아직도 <글래디에이터>나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보면 자기식 표현으로 “절망한다”고. “한신만 봐도 꽉 끼어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떠오른다. 정말 빈틈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에게도 갈등의 순간은 있었다. 졸업 직후 아무도 찾질 않아서 “입봉도 못하고 끝나나”하는 생각에 한동안 뮤직비디오, CF, 예고편 작업 등으로 갈증을 달랬다. 그러던 중 <중독>의 현장편집을 하면서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갔다. 일찍 일을 시작한 그는 작업에 관한 한 매우 집요하다. 어느 감독이랑 제일 많이 싸웠느냐고 묻자, “싸움닭이라 작업할 때마다 매번 싸운다”고 답한다. 이제까지 작업한 감독 중에 “나보다 더 덜 지치는 사람은 최동훈 감독 뿐”이라고 귀띔했다. “처음이라 실수도 많고,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는 입봉작 <싱글즈>에서는 좀더 효율적인 편집을 위해, 현장편집과 편집을 동시에 맡기도 했다. 가장 아끼는 작품을 선택해달라고 무리하게 주문했다. “남들은 뭐라 해도 자랑스러운 내 자식”이라고 표현한 <태풍태양>. 인라인스케이팅 장면으로 인해 무려 2000컷이 넘어가는 물리적 상황이라 “공을 많이 들였고, 가장 정이 많이 간다”고 그는 말했다. 엄청난 촬영분량의 <슈퍼스타 감사용>의 촬영본을 처음 보던 날은 “야구공이 떨어지는 것만 100번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신 기사는 술도 안 마시고 쇼핑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500편을 모은 DVD를 꺼내보는 일이 주된 소일거리라고.

영화를 전공했지만 그는 “학교에서 영화를 배우기보다는 혼자 영화를 보며 영화를 배웠다”고 한다. “학창 시절 끝까지 읽었던 영화이론 서적이 단 한권도 없다”는 신민경 기사는 외려 지금에 와서 “좀더 체계적인 학업에 대한 갈증도 있다”고 덧붙였다. “책임지지 않는 한 그것에 다가가지 않는다”라는 원칙으로 살아가는 이 젊은 ‘필름의 재단사’에게 다음에 맡겨질 ‘옷감’은 안판석 감독의 데뷔작인 <국경의 남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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