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다시 <시민 케인>을 이야기해야 한다. 감독들에게 <시민 케인>은 저주다. 엄마의 불편한 첫 이미지와 그녀가 꼬마에게 끼친 영향, 막대한 유산에 더해 스스로도 거대한 부를 축적한 남자, 도전과 성취에 대한 집착과 현란한 사생활 뒤에 감춰진 비밀, 중년 남자로 분한 의욕 넘치는 젊은 배우, 눈과 머리가 따라잡기 힘든 영화적 성과 등, <시민 케인>은 마틴 스코시즈의 <에비에이터>를 벗어나기 힘든 무게로 억눌렀을 법하다.
사실 <에비에이터>가 <시민 케인>을 그 무엇보다 닮은 부분은 ‘드라마 없는 드라마’에 있다. <에비에이터>가 보편적인 감동을 주지 못했다고 본다면 첫째 이유는 거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스코시즈가 아무리 동정과 성찰로 한 인간의 진실과 인간미에 접근하려 해도 하워드 휴스는 현실 속의 인물로 자리 잡지 못한다. 찰스 포스터 케인의 그림자가 하워드 휴스의 얼굴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세상과 유리된 존재였기에 엿보기 이상이 되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설득력을 갖추기엔 허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런데 케인이 영화의 시작점인 과거를 기억하면서 숨을 멈춘 것과 반대로 <에비에이터>의 휴스는 미래를 끊임없이 되뇌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것은 <에비에이터>가 <시민 케인>처럼 미래에 평가받았으면 하는 스코시즈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올해 아카데미의 영광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문제적 영화로 남을 작품은 <에비에이터>일지 모른다. 스코시즈가 휴스의 얼굴 너머에서 본 무엇과 영화에 숨겨둔 은밀한 매력을 꿰뚫기엔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DVD다. 극장용 프린트보다 훨씬 화려한 색감은 영화의 본모습에 근접한 것으로 짐작된다. 혹시 붉은색 표현과 (그간 스코시즈의 영화와 달리) 과다하게 인위적인 색감에 어색할 수 있겠으나 전체적인 화질과 음질엔 부족함이 없다. 영화 전반에 대한 충실한 설명을 들려주는 음성해설은 감독과 편집자 델마 슌메이커, 제작자 마이클 만(처음 연출제의를 받았던 사람은 만이었다)의 것을 이어붙인 터라 정작 재미는 덜한 편이다.
15개 부록의 재생 시간은 어림잡아 세 시간에 이른다. 히스토리 채널에서 제작한 하워드 휴스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휴스에 관한 부록 3가지, 메이킹 필름과 의상, 분장, 미술, 음악, 특수효과 등 분야별 제작 영상 6가지, 그 외 삭제장면, 관객과의 대화, 강박관념에 관한 토론, 루퍼스 웨인라이트 가족의 노래장면, 예고편, 포토 갤러리 등 그 구성이 영화만큼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