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뒤척이며 옆으로 누워 본다. 그래도 그리 편하지 않다. 가장 편한 상태로 생각나는 영화에 관해 써 보라는 권유에 따라 이리저리 자세를 다시 잡아보지만 생각나는 영화가 없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내 인생의 영화랄 게 뭐있나. 본 영화도 많지 않은데…. 쉽게 생각해보지만 그게 그리 만만치 않다. 다시 정좌해서 물도 한컵…. 그럼 질문의 내용을 바꿔야겠다. 잘 만든 영화가 뭐지? 아니 인상깊었던 영화는 뭐지? 아니 재미있었던 영화는 뭐지? 좋은 영화가 뭐였더라?
왜 그런지 타르코프스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냥 단어일 뿐인 이름…. <노스탤지어>의 김이 많이 나던 그 온천물…. 그 옆에 어슬렁거리던 개도 있었지, 시를 어떻게 번역할 수 있냐고 화내던 그 남자…. 그 대사를 나는 번역해서 보고 있었다. 그 남자의 고향은 어디지? 그러다 문득 <브레이킹 더 웨이브>가 생각났고 다른 곳에서 온 그 남자, 그 남자가 다치고 배에 천연덕스럽게 올라타던 그 여자의 화장, 진짜로 진한 화장이었다. 그 여자가 사랑하던 그 남자를 죽였으면 어땠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시 해보다가 빌딩에서 멋지게 떨어지던 <공각기동대>의 힘있는 여자가 생각났다. 그리고 <증오>에서 힘을 찾아 거리를 쏘다니던 젊은이가 생각났고, <메이드 인 홍콩>에서 힘있게 벽돌 치던 그 소년이 떠올랐다. 왜 그런지 젊은 친구들이 나오거나 더 어린 꼬마가 나오거나 어쨌든 특정 성장 시기를 다룬 영화는 다 재미있다. 영화로 만들 글을 쓰려면 10대들의 얘기만 생각나는 것도 그래서인가?
그런데 그건 내 과거 성장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시간도 없고 살 돈도 없는 지금의 나, 그들과 똑같다. 혹 그들에게 멋모르는 힘이 있다면 그건 어려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힘은 불안함에서 오는 거다. 나도 불안한가. 불안하다. 그럼 나도 힘이 있겠군. 다시 영화들이 생각난다. 힘으로 점점 몸이 불어나는 일본 만화 영화 <아키라>의 소년이 떠올랐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그 힘…. 문제는 우리에게 힘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거다. 그건 능력이 아니라 여유다. <아키라> 하니까 단지 이름이 같은 구로자와 아키라가 생각나고 <꿈>에서 산에 있던 여우들…. 그걸 본 소년이 떠오른다. 최고의 싸움 영화 <랜드 앤 프리덤>에서는 지역자치를 토론하던 아저씨들과 멀리 남의 나라에서 구식총으로 쏘고 달리던 그 남자가 있었고, <집시의 시간>에서는 닭을 날리던 소년과 날아다니는 신부도 있었지, <감각의 제국>에서는 남자 배 위에서 연주하던 여자가 있었고, 달리던 <쥴 앤 짐>도 있고, 절룩거리면서도 더 달리던 <나쁜 피>의 그 남자도 있다…. 참으로 영화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영화 속에 있다는 이유로 흠모의 대상이다. 그 외 몇몇의 인상적인 영화들을 계속 생각해보지만 그래도 왠지 찝찝하다. 다시 일어나 몸을 비틀어보며 질문을 바꿔본다. 내가 처음 좋아했던 영화는 뭐지? 갑자기 머리가 텅 비며…. 그게 언제더라? 생각이 잘 안 나는 건 시간이 지나서 만은 아닐 텐데… 언젠가부터 좋아한다는 범주로 영화를 나누어보지 않았나보다.
사실 목숨을 걸고 절규해야 <박하사탕>의 기차가 첫사랑을 향해 뒤로 떠난다. 하지만 그 영화를 마음이 미어지도록 본 사람으로서 존경과 억지와 애교로 기차를 돌려본다면 첫사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내가 첫사랑으로부터 많이 멀어져 있나? 사랑이 어찌 지성과 상관있겠냐는 유명한 사람의 말처럼 좋아하는 영화는 그것에 대해 연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일 테다. 내가 소위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 영화를 지켜보느라 그것도 눈을 부라리고 지켜보느라 혹 영화에 치여온 것은 아닐까. 가뜩이나 잘 잊어버리는 내가 처음 좋아했던 영화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를 너무 좋아했고 졸업하면 영화를 하고 싶다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입에 거품을 물고 어떤 영화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흥분하면 진짜로 입에서 거품이 나온다. 물론 난 그 거품을 매번 신뢰했고 그 대상에 같이 빠지기를 즐겼다. 한국영화를 별로 볼 게 없어. 그러던 그 친구가 <우묵배미의 사랑>을 이야기하자 난 좀 의외였다. 그거 한국영화 아니냐? 너 한국영화 안 보잖아. 그러자 그 친구는 이젠 아니라고 했다. 한국영화가 달라졌다며 그 영화가 왜 좋은지 내게 떠들기 시작했다. 빨리 보러가야 해. 그래서 우리는 극장에 갔고 그게 내가 극장에서 처음 본 한국영화가 되었다. 물론 그 친구 말처럼 나도 좋아했고 우리는 한동안 그 영화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한국영화 안 본다는 게 자신의 지적 허영심에서 나온 거라며 반성했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진짜로 잘못했다고 빌었다. 이제 한국영화는 다 볼 거라고 했다. 난 그 친구 말이 맞는 것 같았고 그냥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우묵배미의 사랑>은 내게 약속된 첫사랑이 되었다.
그뒤로 우리는 주변 친구들에게 그 영화의 비닐하우스 장면이며 양말 빨던 장면이며 부인에게 얻어맞던 장면이며 각 장면들의 의미를 설명하고 영화 속 그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인가 피력했다. 결국 우리 주변 모두가 그 영화를 보았다. 사실 주변에게 뭐라 설명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때의 분위기…. 뭔가 새로운 영화를 본 듯한 흥분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리 오래되지도 않아서 어렴풋해지는 걸 보면 그 뒤로 내게 많은 변화와 굴곡들이 있었나보다. 생각지도 않던 나는 지금은 영화를 만들고 있고 그 친구는 사라졌다. 아주 멀리 사라졌다. 이제 한 영화를 마치고 난 뒤 처음 좋아했던 영화를 찾아보는 과정이 그때 그 친구를 떠올리는 그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내게 참 좋은 영화다. 그때 그 친구 생각도 나게 하고….
(다시 <우묵배미의 사랑>을 빌려 볼까 하다가, <거짓말>을 보고 첫사랑으로 <우묵배미의 사랑>을 떠올리려고 <거짓말> 보러 가렵니다.)